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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편집장 Oct 05. 2022

정재서, <이야기 동양신화> - 치우, 귀면와

붉은 악마

치우의 불굴의 투혼은 무속뿐만 아니라 민속에도 반영되었다. 고대 중국의 민간에서는 싸움 잘 하는 치우의 형상을 본뜬 각저희(角抵戱)라는 놀이가 유행하였는데 그것은 쇠뿔을 머리에 꽂은 두 사람이 힘 겨루기를 하는, 일종의 유희였다. 고구려 고분 각저총(角抵塚)에는 바로 이 각저희가 그려져 있어 고대 한국인의 치우에 대한 관심의 정도를 짐작해 볼 수 있다. - <이야기 동양신화>, 정재서, 김영사, p230 -


라이벌인 항우와의 힘겨운 전쟁을 통해 한(漢)왕조를 건설하였던 고조(高祖) 유방조차도 치우의 힘을 빌리기 위해 그에게 극진히 제사 지냈다고 한다. 치우는 또한 은나라 때에 도찰이라는 무서운 괴물의 모습으로 청동기에 새겨진 귀신이나 사악한 기운을 쫓아내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치우의 이러한 형상과 역할이 신라 시대의 도깨비 모습을 새긴 귀면와(鬼面瓦)에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기도 한다. - 같은 책, 김영사, p235 -


치우는 동방 지역의 신이었으므로 은이나 고대 한국 등 동이계 종족이 숭배하였던 신일 가능성이 크다. 치우를 도와주었던 풍백과 우사가 단군 신화에 등장하는 것만 보아도 그러한 점을 엿볼 수 있다. ... - 같은 책, p236 -

  그리스 신화에서는 제우스의 형제들이 이전 제네레이션인 타이탄족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면서 올림푸스의 권좌에 오른다. 중국 신화에서도 이전 제네레이션인 염제(炎帝)에게 황제(黃帝)가 승리하면서, 중국민족의 정통성으로 여겨지고 있다. 치우(蚩尤)는 염제의 후손였다고... 이를테면 타이탄족의 후예가 항상 제우스를 벼르고 있었던 것. 


  아테네인들의 선조는 이오니아 지방에서 이주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이오니아는 지금의 터키 서남부 지역. 또한 이 지역은 꽤 오래도록 아테네의 식민지였던 폴리스들이 저 나름대로의 역사를 써내려간 그리스 밖의 그리스였다. 서양철학사의 첫 페이지는 십중팔구 밀레투스 학파의 탈레스이다. 밀레투스 역시 지금의 터키 서남부 지역이다. 


  <일리아드>는 트로이를 함락하기 위해 출정한 그리스 연합군이 갈등을 빚는 사건은 아가멤논이 아폴론 신전의 신관의 딸을 전리품으로 삼는데서 빚어진다. 그러니까 트로이도 아폴론 신을 믿는 그리스 문화권이었다는 거지.

  

  그렇듯 에게해와 인접한 세계가 그리스 신화를 공유하고 있던 것. 그러니까 지금의 그리스와 터키의 경계로 구분할 게 아니지.  ‘페르시아’의 어원이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의 아들인 ‘페르세스’라는 설도 있으니, 그 이상으로 확대된 세계관이기도 하고... 


  마찬가지로 고대 극동에서도 공유하는 신화 코드가 있었던 것. 주몽의 어머니는 하백(河伯)의 딸이라고 전해지는데, 고대 문헌에서 河는 황하를 의미하는 고유명사다. 그러니까 지금의 국가 개념으로 이해할 게 아니라는 거지. 


  고대 중국은, 지금 영토에서 중앙 일부에 해당하는 지역이었고, 변방의 이민족을 그 방향에 따라 북적(北狄), 남만(南蠻), 서융(西戎), 동이(東夷)로 불렀다는 건 역사 시간에 배웠을 터. 지금도 산둥 지역에서는 치우에 대한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남아 있단다. 그 이외에도 지역에서도, 전쟁의 신으로 불리는 그를 숭배하는 신앙을 공유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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