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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편집장 Oct 18. 2022

미셸 푸코, <말과 사물> -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그림일까? 거울일까?

... 그림의 오른쪽 끝에는 매우 명확한 원근법에 따라 창문이 그려져 있고, 그곳으로부터 빛이 들어와 그림을 비추고 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창문의 구멍뿐이고, 그래서 창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빛의 흐름은 겹쳐지나 서로 환원될 수 없는 두 인접 공간으로, 즉 캔버스에 의해 재현되는 입체적 공간(다시 말해서 화가의 작업실 또는 그가 작업대를 세워 놓은 거실)과 함께 캔버스의 표면으로, 그리고 이 표면 앞에서 관람자가 차지하는 실제의 입체적 공간(또는 모델의 비실제적 자리)으로 동시에 퍼져 나간다. ... - 미셸 푸코, <말과 사물>, 이규현 역, 민음사, p28 -


... 이 창문은 그림의 다른 쪽 끝에 놓여져 있는 비가시적인 캔버스와 균형을 이루고 있다. 비가시적 캔버스가 관람자의 눈에 뒷면만을 보이면서 비가시적 캔버스를 재현하는 그림과 맞대어 접혀 있고, 전형적인 이미지가 빛나고 있는 장소, 다시 말해 우리로서는 접근이 불가능한 장소를 캔버스의 비가시적 표면이 그림의 표면과 캔버스의 가시적 이면의 중첩에 의해 형성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순수한 통로인 하나의 공간을 새로 확립하는데, 이 공간은 다른 공간이 감추어지는 만큼이나 뚜렷하고, 다른 공간이 고립되는 만큼(왜냐하면 아무도, 심지어 화가조차도 그곳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화가, 그림 속 인물들, 모델, 관람자가 공통적으로 속하는 곳이다. 오른쪽으로는 모든 재현을 가시적이게 만드는 빛의 순수한 부피가 비가시적 창문을 통해 넘쳐 들어오고, 왼쪽으로는 너무나 가시적인 뒷면의 다른 쪽에서 재현을 교묘히 모면하면서 지탱하는 표면이 펼쳐진다. ... - 같은 책, p29 -


   박민규 작가의 소설 표지로도 유명한, 미학 쪽에서는 푸코의 해석으로도 유명한, 물론 미술사에서는 그 자체로 너무 유명한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퀴즈 하나. 밑줄 친 문장은 무슨 의미일까? 나는 이 책 두 번째 읽는 건데, 두 번 째에도 각주를 보고서야 이해했다. 그림의 오른쪽 끝에 보면 빛이 들어오고 있는, 원근법으로 늘어선 길쭉한 창문들이 있잖아. 창문으로 빛이 쏟아지면 눈이 부셔서 창문 바깥의 풍경은 보이지 않겠지. 그런데 그 빛이 스미는 만큼으로 공간들이 보여지게 되는 거고... 


   이해하고 나니, 멋진 문장이지 않아? 철학의 글들이 지닌 매력이 이런 거다. 처음에 뭔 말인지 몰라도, 익숙해지면 저런 문체를 욕망하게 되면서 글이 어려워지는 거. 그런데 일단 책이 안 팔려 보면 그 욕망을 내려놓는다. 이런 문장은 푸코 정도의 브랜드나 되어야 시장에서 ‘모닝빵처럼 팔려나간’ 신화적 판매고를 올릴 수 있다는... 하여 내게선 기약없는 나중으로 미루어진 욕망.


   그림의 중앙에, 공간적으로 보면 뒤편에 배치된, 두 사람의 실루엣이 보이는 액자. 저게 그림일까? 거울일까? 푸코의 설명은 창문과 관련이 있다. 푸코도 처음에는 방 안 가득 걸려 있는 그림 중의 하나인 듯 설명하다가, 그것이 거울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드는 반전으로 단락을 바꾼다. 다른 그림들에 비해 빛을 머금고 있는 듯한 느낌이지. 그러니까 그림 속의 화가가 바라보고 있는, 빛을 받고 있는 서 있는 모델이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이라는 것.


https://blog.naver.com/kemsan/22202591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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