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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편집장 Oct 18. 2022

가라타니 고진, 풍경의 발견 - <슬램덩크>의 배경

가마쿠라 고교 앞 철길

  부산에 사시는 분들이야 다 아는 풍경이겠지만... 오래 전, 결혼식에 참석할 일이 있어서, 광안리 어딘가에서 담은 한 컷. 부산에 사는 후배 녀석이, 잘만 찍으면 <슬램덩크>의 배경지인 가마쿠라 고교 앞 철길과 비슷하다고 해서... 그런데 가마쿠라 분위기를 내기엔 바다는 너무 멀고, 아구찜이라는 글자는 너무 크고, 날씨마저 도와주지 않은... 


  그 몇 년 뒤에 그 녀석이랑 함께 가마쿠라로 떠난 여행. 27일간 연속으로 비가 내린 가마쿠라에 여행객의 발길이 끊겼다는 뉴스, 우리는 93%의 습도 속에서 그 27일과 28일째의 비 오는 날을 보내고 있는 몇 안 되는 이방인이었다. 내 인생이 이래! 그 단면이기도... 항상 뭔가 잘 안 맞아. 그런데 맑은 날에 가면, 중국인 관광객들 때문에 저런 고즈넉한 분위기의 사진은 못 찍는단다. 그런 점에서 보면 특별한 날에 담아둔 특별한 기억. 다시 돌아보면... 내 인생이 그랬다.


  <슬램덩크>를 좋아하지 않는 이들에게야, 막상 저기 가 보면 뭐가 있겠어? 주문진보다도 딱히 나을 게 없는 풍경. 난 외국어 전공자인데도, 외국에 나가서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근데 저기서는 딱 한 달 정도만 살아보고 싶다. 참, 그 만화 하나가 뭐라고... 


  가라타니 고진은 풍경의 묘사를 근대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있는 그대로를 그리는 것이라기 보단, 작가의 해석을 덧대는 ‘낯설게 하기’ 방식의 사실주의라는 거야. 신카이 마코토의 디테일이, 평범한 도쿄의 풍경을 ‘성지’로 격상시키기도 하잖아. 저기에서는 그냥 거리의 세븐 일레븐만 봐도 좋다. 세븐 일레븐 그 자체에 대한 인식이기야 하겠어? 그렇듯 재현의 문제는 해석을 경유하고 투영한다. 


  언제고 누군가와 함께 거닐면서 보여주고 싶은 풍경이 있지 않아? 그런데 그 누군가에게 저 풍경이 뭐 그렇게 대단할 게 있겠어. 그 사람 역시 <슬램덩크>의 팬이 아닌 이상에야... 그런데 그 사람 자체가 대단한 의미인 거지. 그 사람을 경유하고 투영해 풍경을 바라보는, 들뢰즈를 빌리자면, ‘노에마적 빈위이자 노에시스적 표현 가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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