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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편집장 Oct 18. 2022

미셸 푸코, <말과 사물> - 바벨의 언어

명리학, 사주팔자

... 점술(占術)은 인식과 경쟁하는 형태가 아니라 인식 자체와 일체를 이룬다. 그런데 해석되는 기호는 감춰진 것과 유사한 정도에 따라서만 감춰진 것을 가리키고 누구나 표지에 의거하여 행동할 때에는 언제나 이와 동시에 표지에 의해 은밀히 지시되는 것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 그래서 머리나 눈, 심장이나 간(肝)을 연상시키는 식물은 연상된 기관에 효능이 있고, 동물을 가리키는 표지에 동물은 반응하게 된다. ... - 미셸 푸코, <말과 사물>, 이규현 역, 민음사, p66~67 -


... 고대인들의 담론이 우리에게 귀중한 기호의 가치를 지니는 것은 이 담론이 시초부터 끊임없이 스며든 빛에 의해 본질적으로 사물 자체에 들어맞고 사물에 대해 거울을 형성하고 사물과 경합하기 때문에, 영원한 진리에 대한 이 담론의 관계는 자연의 비밀에 대한 기호의 관계와 같으며, (이 담론은 말이 해독될 수 있는 표지이다.) 이 담론은 드러나는 사물에 대해 변함없는 친화력을 갖는다. 그러므로 이 담론에 대해 그 권위의 근거를 찾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 - 같은 책, p68~69 -

  세기의 철학자가 점술 운운하니 이상할 테지만, 푸코는 지금 16세기를 예로 들고 있다. 소쉬르의 언어학을 기반으로 하는 철학들에서는 기표와 기의의 조합은 우연적인 것이다. 그러나 푸코는 벤야민적인 입장, 즉 바벨의 언어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명리학에서 丙과 丁을 火라고 말하는 것은, 자연의 물상 중에서 그것이 가장 가깝다는 거지, 그것이 곧 불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니까 불의 속성을 지닌 에너지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丙을 태양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불의 함수에 태양이 속하는 거지, 태양이 곧 불인 것도 아니잖아. 때문에 火가 부족한 사람들은 빨간옷을 입고 다니라는 둥의 이야기가 비판을 받는 거고... 


  丙이란 글자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언어는 丙 그 자체라는 거야. 이 담론이 시작되었을 당시의 사람들이 지녔었을 자연과 언어에 대한 감각으로 해석이 되어야 하는 것. 그러나 시대가 변했으니 지금에 그 감각이 가능하냐의 문제, 또한 당대의 감각으로 지금을 해석하는 게 가능한가의 문제 등등. 그렇다 보니 이 글자 조합은 이렇게 해석해야 된다는 지식이 편의성인 동시에 권력이기도 했던 거지. 당장에 절실한 사람들에게 빨간옷 입고 다니라고 하면, 의심은 하면서도 그거라도 해보지 않겠어?


  그 자체로 미심쩍어 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저런 처방전까지 명리의 이미지로 굳어버렸으니... 그래도 깨인 역술가들이 스승의 이론조차 반박하는 반성들을 내놓고 있는 시대이긴 하다만...


  푸코의 논의도 지금의 시대로 흘러오면서 예전에 말이 지니고 있던 자연성이 사라지며 점점 ‘말과 사물’의 괴리감이 커지고 있다는 거야. 흔히들 자연과 가장 가까운 언어가 ‘시(詩)적 언어’라고 하잖아. 그러나 문단이라는 권력집단이 형성되면서 시작(詩作) 관한 담론과 시를 평가하는 매뉴얼들이 생겨났다. 언어는 더 이상 사물과의 은유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에 관한 언어의 성격으로 변한다는 거야. 이 전제가 포스트 모던 세대가 공유하고 있던 ‘해체’로까지 이어지는 거지.


  발터 벤야민이 ‘바벨의 언어’에 대해 이야기하는 페이지들. 철학자가 왜 이런 신비주의에 대해 이야기를 할까, 예전에는 조금 의심스러웠거든. 명리학을 공부하면서는 이게 무슨 의미인지가 조금 이해되는 거야. 푸코의 <말과 사물>도 다른 의미로 다시 읽힌다. 그런 거 보면 세상에 필요 없는 학문은 없다는... 물론 푸코와 벤야민을 다시 이해하겠노라 건드린 명리학은 아니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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