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르노와 보드리야르
... 20세기 초에는 도교가 새로운 세계의 종교적 기반이 될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다. 21세기 초 도교는 여전히 서양을 위한 길을 제공하고 있다. 큰 지혜를 찾고자 하는 우리를 안내하고 불안한 정신적 사치를 차분하게 버릴 방법을 가르치는 길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순례자들에게 비어 있는 성스러운 경전은 모든 언어를 넘어서는 심오한 철학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서 우리 자신과 우리 세계에 대해 진정 원하는 진릴를 발견하고자 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이 길을 페터 슬로터다이크가 명명한 ‘유럽도교(Eurotaoism)’라는 새로운 융합으로 향한다고 본다. 거기서 동양의 지혜는 다시금 유용한 모던적(혹은 포스트모던적) 옷을 짜는 실이 된다. 어떤 이들에게는 이것이 우리 자신의 ‘심오한 난센스’를 새기고 싶어하는 양피지로 보일지 모른다. 또는 서양 소비자의 만족할 줄 모르는 환상을 채워 주는 단순한 문화적 지배의 산물이거나, 심지어 포스트모던 식민주의의 새 물결로서 또 다른 형식의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다.
- <서양, 도교를 만나다>, J.J. Clarke, 조현숙 역, 예문서원, p391~392
일찍이 아도르노가 소비사회가 이끄는 대중들의 취미 생활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 한 예로 드는 게 캠핑족의 캠핑상품이다. 우리나라는 요즘에 들어와서 그렇지? 보드리야르는 현대인이 그런 이미지를 소비한다고 말한 거고...
물론 정신문화와 예술 그 자체를 향유하고 싶어하는 이들도 있지만, 또한 이미지적 측면이란 게 없지 않은 경우도 있잖아. 한문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분들 중에는 <논어> 보다는 <도덕경>을 집어 드는 경우가 꽤 있을 게다. 뭔가 더 있어 보이잖아.
그런데 또 그렇게 시작하는 거지 뭐. 그러다가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기도 하고... 나도 서양철학에 호기심을 느낀 한문전공자였다기 보단, 다른 필명으로 출간한 제자백가 관련한 첫 책을 조금 더 있어 보이게 쓰려고 니체를 집었다가 아예 대학원 논문 주제로 삼은 경우. 니체를 건드리면 서양철학사 전반을 다 훑어야 된다는 결론에 다다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