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자체, 상징계, 에피스테메
... 중상주의 시대에는 ‘귀금속’의 고리가 해체되고 부가 필요와 욕망의 대상으로 전개되며, 부를 표시하는 주화(鑄貨)의 작용에 의해 부가 나뉘고 서로 대체되며, 화폐와 부의 상호 관계가 유통과 교환의 형식으로 확립된다. ... 모든 부는 화폐로 환산될 수 있고, 따라서 유통되기 시작한다. 동일한 방식으로 어떤 자연물이건 특징을 부여받을 수 있었고 분류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모든 개체는 명명될 수 있었고 분명한 언어로 말해질 수 있었으며, 모든 재현은 의미될 수 있었고, 동일성과 차이의 체계에 포함되어 인식될 수 있었다. ... - 미셸 푸코, <말과 사물>, 이규현 역, 민음사, p256 -
... 누구나 금과 은을 추구하고 금과 은이 언제나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광산을 개발하고 금과 은을 탈취하고자 전쟁도 불사하는 것은 금과 은이 그 자체로는 지니고 있지 않는 유용성과 희소성을 금화와 은화의 주조로 인해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화폐의 가치는 결코 화폐를 구성하는 물질로부터가 아니라 군주의 초상이나 표지라는 형태에서 기인한다.” 금이 귀중한 것은 금이 화폐이기 때문이다.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 - 같은 책, p257 -
지금의 시대에 한국에서 금을 화폐로 쓴다면, 그 단위는 ‘원’일까? ‘돈’일까? 금 자체가 이미 상품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몇 돈의 금이 몇 원의 가치를 상징할 것인지, 금의 함유량을 따져야 한다.
그런데 금화가 처음 화폐로 쓰이던 시절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거야. 상품성이 아니라 화폐로서의 가치만 있었다는 것. 금화가 지닌 화폐 가치가 곧 금의 가치였다. 그러다가 저렴한 다른 금속으로 화폐가 대체되면서, 금과 은의 상품성이 분리된다. 이제 화폐로 금과 은의 가치를 매길 수 있게 된 것.
어디서 들을 걸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10원짜리 동전을 만들기 위해선, 10원 이상이 든단다. 그러니까 화폐의 가치는 질료의 함유량이 결정하는 게 아니다. 마르크스를 빌리자면 ‘믿음’이 전제 조건이다. 그 동전이 10원의 가치라는 믿음. 푸코는 화폐 자체와 화폐가 지닌 가치가, 말과 사물의 관계처럼, 일치가 되지 않는다는 설명을 하고 있는 거야. 금화와 은화가 통용되던 시절에는 비교적 일치가 되었던 거지.
그 연장에서, 화폐로 환산되는 사물의 가치가 사물 그 자체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야기. 가격이란 건 시장의 산물이니까. 화폐의 가치라는 것도 통화량에 따라 달라지고... 자본 사회는 그 화폐에 부여된 상징성, 즉 그 수(數)의 언어로 재현이 된 세계다. 사물 그 자체로서 에르메스의 원가가 얼마나 되겠어? 사물 그 자체와 언어로 재현된 세계 속의 그것은 일치하지 않는 거지.
푸코는 지금 칸트의 물자체와 라캉의 상징계 개념을 자신의 철학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걸 저렇게 설명하니, 당시로선 센세이션의 천재로 불렸을 만도 하지. <말과 사물>이 ‘모닝빵처럼 팔려나간’ 현상 또한 68혁명 세대들이 저런 철학의 담론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할 게다. 이런 공유의 코드, 메커니즘, 패러다임이 자아내는 복합적 균일성으로 한 세대의 지층이 만들어지고 다음 세대의 토대가 되는, 이게 에피스테메 개념이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