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치의 문제
... 서양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지식의 깊은 층위에 어떤 실제적인 불연속도 끌어들이지 않았고, 충만하고 확고하고 안락하고 일시적으로는(전성기 동안에는) 진정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으로 인식론적 배치의 내부에 어렵지 않게 자리를 잡았다. 서양의 인식론적 배치는 마르크스주의를 열렬히 받아들였으며,(마르크스주의에 자리를 마련해 준 것은 바로 이 배치이기도 하다.) 반대급부로 마르크스주의는 이 배치에 전적으로 토대를 두고 있던 만큼, 이 배치를 어지럽힐 의도가 전혀 없었고, 무엇보다 이 배치를 변화시킬 힘이 조금도 없었다. ... - 미셀 푸코, <말과 사물>, 이규현 역, 민음사, p364
한 마디로, 때를 잘 만났다는 거지. 2번의 세계 대전을 치른 유럽은 자본주의의 수혜보다는 폐해를 더 고민하는 분위기로 흘러간다. 그리고 자본사회가 부추기는 인간의 욕망에 대해서도 고찰하며, 마르크스의 경제학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으로 풀어내기 시작한다. 사르트르가 마르크스는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했을 만큼, 당대 지식인들에게는 기본 소양이었던 것. 프로이트의 추종자들의 빗나간 충정처럼 그 정도의 문제가 있었을 뿐이고... 실상 이 흐름이, 아직은 철학사의 가장 마지막 페이지인 지젝과 바디우에게까지 이어진 거다.
푸코에 따르면 권력은 소유되는 게 아니라 행사되는 것이다.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상을 가도 정승이 죽으면 안 간다는 말이 있잖아. 그 권력이란 게 그 사람의 속성이 아니라는 거지. 그 사회 속에서 그의 자리한, 그를 어떤 역학 관계 속에 놓이게 한 배치의 문제라는 거야. <말과 사물>의 한결같은 주제처럼, 언표와 그 사물 자체의 속성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거지.
케인즈는 <자본론>을 인문서 정도의 의미로 받아들인다. 그렇듯 마르크스의 이론이 그 자체로 절대적이었다기 보단 그 시대가 원하는 분위기도 형성되어 있었다는 거지. 그래서 ‘마르크스의 유령’이란 말이 나왔던 거고...
푸코는 마르크스만 언급하는 게 아니라, 많은 경제학자들과 그 이론들을 인용한다. 포스트 모던의 철학들이 어려운 이유는, 그 시절의 철학자들은 다른 영역의 전문가만큼이나 전문성을 지닌 지식으로 자기 철학을 풀어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들뢰즈를 좋아한다고 말하긴 하지만, 그가 수학에 관해 써놓은 페이지들은 여전히 이해를 못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