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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편집장 Nov 21. 2022

미셸 푸코, <말과 사물> - 자크 라캉, 대학의 담론

니체, 차라투스트라

Lucio fanti 작품

16세기 말엽까지 서양 문화에서 닮음의 역할은 지식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텍스트에 대한 주석과 해석을 대부분 이끄는 것은 바로 닮음이다. 닮음에 의해 상징 작용이 체계화되었고 가시적이거나 비가시적인 사물의 인식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사물을 나타내는 기법(技法)의 방향이 결정되었다. ...


이제 우리는 닮음이 지식에 속하지 않게 되고 적어도 부분적으로나마 인식의 지평에서 사라지게 되는 시기에 어느 정도 주의를 집중할 필요가 있다. 16세기 말엽과 17세기 초엽에 유사성은 어떻게 사유되었을까? 어떻게 유사성은 지식의 형상들을 체계적으로 배치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서로 닮은 사물들의 수가 무한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적어도 사물들이 어떤 양상에 따라 서로 유사할 수 있었는지 확증할 수 있을까? ... - 미셸 푸코, <말과 사물>, 이규현 역, 민음사 p45 -


  이젠 그 유행도 지났지만, 여전히 철학계에서는 라캉에게서 수학했다는 누군가를 정통으로 여기는 담론이 있다. 그러나 라캉이 지적한 ‘대학의 담론’을 감안해 본다면, 누가 누가 더 자신에게 가까운가를 따지고 있는 후학들을 라캉이 정통으로 인정했을까? 불초(不肖, 닮지 못함)라는 겸손의 단어, 개중에서 라캉의 역량에 가까운 이들이 되레 그 ‘닮음’에 대한 강박에서 자유롭진 않을까?


  니체가 말했듯 모든 게 해석이다.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자신을 스승 삼지 말라고 했을 정도로, 어떠한 기득권의 명분도 인정하지 않았다. 물론 어느 정도의 토대 위에서나 그도 해석일 수가 있지. ‘내 생각은 이렇다’로만 해석의 조건일 수는 없고... 그러나 ‘니체의 권위자인 누구 누구가 이렇게 말했다’도 니체적이지는 않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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