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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편집장 Dec 01. 2022

영화 <토이 스토리>의 한 장면 - 스피노자의 철학

정치, 신앙, 사랑

  영화 <토이스토리>의 한 장면, 인형뽑기 기계 속에 갇혀 있는 인형들은 자신을 바깥세상으로 인도해 줄 세발갈고리를 신으로 믿고 살아간다. 갈고리의 선택이 자신의 순서에 닿기를 기도하는 것만이, 답답한 기계통 속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나 천국이라고 믿고 있던 곳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장난감 분해가 취미인 악동이었다.


  스피노자는 삼각형에게 신이 있다면 그 모습은 삼각형일 것이라고 말한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인간은 자신이 지닌 지평의 수준에 준하는 신을 소유한다는 의미. 단지 그 우상이 세발갈고리가 아닐 뿐, 그 인형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신념으로 살아가는 인간들도 부지기수인 이 사바세계. 스피노자의 비판은 인간에 의해 정치적 성격을 지니게 된 종교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왜 대중들은 그 정치 신학에 예속되길 원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스피노자의 결론을 지금의 시대상으로 번안해 보자면, 신학이 경제로 바뀌어 할 게다. 대중은 자신들의 수준에 준하는 정치경제를 소유한다.

  주인공병에 걸려 있는 듯한, 들뢰즈의 비유로는 ‘편집증’적 나르시시즘. 물론 자기 인생의 주인공은 자신이라는 마음이야 누구나가 지니고 살겠지만서도... 그러면 먼저 주인공으로서의 덕목도 지녀야 하는 것 아닐까? 도대체 이 드라마의 장르가 뭐길래 그렇게 유치하게들 구시는지. 그래서 얻은 건 무엇이고, 어떤 결론을 향해 가고 있는지. 백날 책을 읽으면 뭐해? 이토록 삶에 서툰 것을... 그러고 보면 독서 수준이 반드시 삶의 수준과 비례하는 것도 아니라는 거.


  스피노자의 어록을 빌리자면, 인간은 누구나 자기 능력만큼 신을 만난다. 대중은 자신들의 수준만큼 정치를 향유한다. 개인의 삶도 그렇지 않겠어? 인간은 자기 수준만큼의 세계를 만난다. 사랑 역시도, 자기 수준만큼의 사랑을 하는 것. 삶과 사랑에도 자격이란 게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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