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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편집장 Dec 03. 2022

영화 <시네마 천국>의 한 장면 - 공주와 병사 이야기

불운이 우리를 비껴가지 않는 이유

  공주를 사랑하는 병사가 있었다. 공주와의 신분 차이가 걱정이었지만, 어느 날 용기를 내어 공주에게 자신의 힘든 사랑을 고백했다. 공주는 정말로 자신을 사랑하다면 그 증거를 보여 달라고 말한다. 자신의 방으로부터 잘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100일 동안을 꼼짝도 하지 않은 채로 기다려 준다면, 병사의 사랑을 받아주겠다고 약속한다. 병사는 공주의 방 창가 앞에서 100일을 세기 시작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로….


  99일이 되던 날 밤에, 병사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병사는 사랑에 대한 열망 하나로 99일을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열망은 언제나 절망과 그 방향성이 같다. 만약에 애초부터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었던, 아쉬운 것 모르고 자라난 철없는 왕족의 장난이었다면, 병사는 그 절망을 견뎌낼 수 없었을 것이다. 99일째 되는 밤에, 병사는 공주가 자신을 기다렸을 것이라는 환상을 품고 떠나갔다.

  영화 「시네마 천국」에 등장하는 공주와 병사의 이야기에 스친, 어느 지나간 날에 묻어 두고 온 이야기. 한번 고백이라도 해볼 걸, 왜 그렇게 망설이고 주저하기만 하다가 끝이 났을까? 혹시나 고백 뒤에서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거절이 두려워, 그 사람 역시 나를 마음에 두고 있었을 것이라는 위안을 안고 돌아섰던 것일까?


  혼자만의 사랑이 힘든 이유는, 나 혼자서 상대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보다도, 그 역시 나를 마음에 두고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 때문은 아닐까? 내 착각이고 미련이었을지언정, 닫지도 놓지도 못하는 그 일말의 가능성으로 인해…. 그러나 상대방의 거절로 그 가능성마저 사라지게 하고 싶지 않은 다른 열망과의 사이에서 끝내 고백으로는 이어지지 못한, 언제고 이루어진 적 없는, 나만의 슬픔으로 묻혀 버린 이야기를 ‘지나간 사랑’으로 기억한다.


- 민이언, 디페랑스, <불운이 우리를 비껴가지 않는 이유>, '사랑 후에 남들 것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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