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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편집장 Jan 05. 2023

아도르노/호르크하이머, <계몽의 변증법>

신화와 계몽, 체계와 구조

... 계몽이 어떤 정신적 저항을 만나든 계몽은 이러한 저항을 통해 오히려 힘이 증가할 뿐이다. 그 이유는 계몽이 ‘신화’ 속에서조차 자기 자신을 재인식한다는 데 있다. 계몽에 대한 저항이 어떤 신화에 의지하든 그 신화가 저항을 위해서는 그 자신 논증적인 주장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해체적 합리성이라고 계몽을 비난하는 신화는 자신도 동일한 원리를 지니고 있음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계몽은 총체적인 것이다. ... - 아도르노/호르크하이머, <계몽의 변증법>, 김유동 역, 문학과 지성사, p25 -


... 자연을 파괴함으로써 자연의 감압을 분쇄하려는 모든 시도는 단지 더욱 깊이 자연의 강압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이것이 유럽 문명이 달려온 궤도이다. 계몽의 도구인 ‘추상화’가 추상화되는 대상에 대해 갖는 관계는, 운명 ― 계몽은 이 개념을 폐기시키지만 ― 이 대상에 대해 갖는 관계가 동일하다. 자연속에 있는 모든 것을 ‘반복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 평준화하는 ‘추상화’, 그리고 추상화가 봉사하는 ‘산업’의 지배 아래 마침내 ‘해방된 자’들은 헤겔이 계몽의 결과라고 지칭한 ‘군중’이 되었다. ... - 같은 책, p37

  이성적으로 깨인 시민들을 등장시킨 계몽주의는 얼핏 ‘신화’의 판타지와는 대척에 있을 듯 보이지만, 실상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 계몽의 시대를 거치면서 발달한 과학과 경제만 보더라도, 원리와 개념으로 체계를 세우면서 보편의 효율화를 극대화한 면도 있다. 인류학이나 정신분석에서 신화를 분석하는 건, 그 스토리텔링이 당대 사람들의 사고 체계가 반영되어 있다는 이유에서이다. 그 구조화를 통한 통시적 고찰로 현재를 해석해 내는 것.


  신화에서 괴물의 상징은 태생적 본능과 사회적 자아 사이에서 느끼는 정체성의 혼란이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오이디푸스에게 수수께끼를 냈던 스핑크스다.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도 연결되는 거지. 자연성의 에로스와 문명의 에고 사이에서 겪는 사회화. 수수께끼의 답이 ‘인간’이기도 했잖아. 해석의 아다리가 기가 막히게 들어맞기도 하지.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고찰은, 계몽이나 신화나 동일자로의 평균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거야. 여기서 배제되는 문제가 우연에 관한 것, 그리고 개인에 관한 것. 니체의 분위기가 느껴지지?


  니체는 신화 속의 타이탄을 자연의 우연성에 비유한다. 유럽의 역사는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이기도 했잖아. 올림포스의 신은 인류의 사유 체계를 투영한 인과성이다. 바다에서 만난 풍랑은 포세이돈의 분노라는 식이었으니까. 그렇듯 자연에 대한 과학적 이해가 부족했던 시대에는, 그 원인으로서의 신이기도 했던 것. 그러나 그 양상이 다를망정, 계몽도 마찬가지라는 거지.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원인에 대한 고민한 연역과 귀납의 사유니까. 이로써 실증주의 사조까지 비판을 하는 거.


  우리의 삶이란 게 어디 그러한가? 보편과 평균에서 벗어난 개인의 편차가 보다 실질적인 것이니까. 모든 사람에게 적용가능한 듯 말해지는 것들. 과학이야 정확한 증명을 한다 해도, 경제는 다소 애해하지. 인문의 영역에서는 더 더욱... 그러나 지금의 시대에도 강연자들은 보편적으로 적용가능한 이야기인 양 말하고, 군중들은 듣는다.

  얼마 전에 있었던 사주팔자 간명과 관련해 이야기하자면... 나도 족집게 도사처럼 맞추는 신통력은 아니고, 그냥 얼추 그 비슷한 상황에 대해 물으면, 사주풀이를 듣는 분이 구체적인 상황으로 대답을 한다. 그러면 나도 방향성이 잡히니까, 구체적으로 들어갈 수가 있는 거지. 그러니까 처음부터 선명한 게 아니라, 대화를 하다 보면 ‘아! 이게 그거구나!’ 하는 게 잡히는 거야.


  사주팔자의 간명이란 것도 결국엔 계몽과 신화가 지닌 일반론적인 성격의 이야기들이니까.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또 그렇게 다양하진 않거든. 그것들이 다가온 양상들이 각자 특별할 뿐이지. 사주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들이 사건으로 다가오는 경우의 수는 많으니까. 새해 신수를 듣는다고 해도 또 사건이란 게 예상한대로 대비한대로 다가오지 않거든. 생각지도 못한 우연성으로 다가오니 그것이 ‘사건’인 거고, 맞닥뜨리고 나서야 ‘아! 그게 이거였구나!’ 하면서 돌아볼 수도 있는 거니까.


  그러니 역술가들의 말은 참조만 하시고, 구체적인 양상은 직접 겪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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