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소비와 소유
"소유, 그것도 더 많은 소유를 최고의 목적으로 삼고, 어떤 인물에 대해 얼마의 가치가 있다는 표현이 허용되는 문화 속에서 어떻게 소유와 존재간의 선택 따위가 가능할 것인가? 오히려 존재의 본질이 소유이며, 만일 인간이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으면 그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되어 질 것이다."
내가 있다.
내게 있다.
국어에서도 ‘있다’는 용법에 따라 在와 有의 의미로 구분되지만, 서구의 언어에서도 마찬가지 경우인가 보다. 프롬은 이것이 소유 지향의 사회로 변모하면서 더불어 변모한 문법이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 ‘너 자신에 대한 지식을 가지라’로 변하고 있다는... 언어는 그 시대와 사회의 정신을 반영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정신분석과 구조주의 철학이 언어의 메커니즘과 무의식의 상관을 연구했던 것이다.
그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이 그의 존재를 대변한다. <어린 왕자>에서 밝히고 있듯, 어른들은 ‘수’를 좋아하는 존재들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자면 화폐로 환산된 언어들이 곧 존재를 규정하고 해명하는 함수이다. 얼마짜리의 차, 몇 평의 집, 얼마의 연봉... 현대 소비사회에서 소유의 상징은 곧 소비의 능력이다. 우리는 소비의 행위를 통해 소유와 존재를 확인한다. 갑질이 그 비슷한 심리이기도 할 게다. 자신이 얼마나 더 지니고 있는지를 통해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그것 말고는 자기 존재를 해명할 수 없는 유치한 강박.
- <순간을 바라보는 방법>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