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부분과 전체>
닐스가 대답했다.
“전혀 그렇지 않아요. 관찰 내용을 고전물리학 개념으로 진술하는 것은 당연해요. 양자론의 모순이 바로 거기에 있지요. 양자론은 고전물리학과 차별되는 법칙을 말하면서, 관찰을 할 때, 즉 측정을 하거나 사진을 찍을 때는 주저 없이 고전적 개념들을 활용해요. 그렇게 해야만 해요. 우리의 결과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언어에 의존해야 하니까 말이에요. ... 이런 언어들이 부정확하며 제한된 활용 범위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이런 언어에 의존해야 해요. 이런 언어를 통해 현상을 최소한 간접적으로라도 파악할 수 있는 거예요.” -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부분과 전체>, 유영미 역, 서커스, p216 -
그때까지 우리는 여전히 옛 데모크리토스의 표상을 믿고 있었다. 한마디로 ‘맨 처음에 입자가 있었다’라는 표상이었다. 물질은 작은 단위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었고, 물질을 계속 쪼개어 가다 보면 마지막에 데모크리토스가 ‘원자’라 불렀던 최소 단위에 이른다고 믿었다. 그것을 이제는 ‘양성자’ 또는 ‘전자’ 등의 ‘소립자’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표상은 틀린 것인지도 몰랐다.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최소 단위는 없을지 모른다. 물질을 계속 쪼개어가다 보면 나중에는 더 이상 부분이 남지 않고 물질 속에 에너지가 변환된 것이며, 부분은 쪼개지기 전보다 더 작지 않을 것이다. ... - 같은 책, p222 -
닐스가 말했다.
“... 윌리엄 제임스는 우리가 듣는 말들이 명료한 의속 속에서는 그 주된 의미가 드러나지만, 의식이 명료하지 못할 때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게 되며, 다른 개념과 연결되고, 그 영향이 무의식으로까지 번져간다고 했어요. 일반적인 언어에서도 그러니, 시적 언어에서는 더 그렇지요. 자연과학 언어도 어느 정도는 그래요. 우리는 원자물리학에서 이전에 매우 정확하고 문제가 없어 보였던 개념들이 얼마나 한계가 있는 것인지를 자연을 통해 알게 되었잖아요. ... ” - 같은 책, p224 -
스피노자의 <에티카> 1부 공리 4, “결과에 대한 인식은 원인에 대한 인식에 의존하고 원인에 대한 인식을 함축한다.” 즉 전제가 이미 결론에 영향을 미친다는 거야. 개인적으로 자주 인용하는 문장인데, 그만큼 현대철학을 관통하는 한 주제이기도 하다. 하여 들뢰즈가 스피노자를 철학의 그리스도로 표현하기도... 철학사의 신약은 스피노자서부터라는...
물리학 공식이 자연의 섭리에 대한 정리(定理)일 수는 있어도, 그 자체로가 자연의 섭리라고 할 순 없잖아. 그 정리에서 덜어내진 현상들도 자연인 거니까. 인간의 언어가 아닌, 자연의 언어로 표현한다면 덜어낼 게 없겠지. 그러나 우리는 자연의 언어를 알 수 없다. 때문에 스피노자가 자연은 신의 속성으로 뻗어 나온 표현들이며, 우리는 신의 일부를 이해할 수 있을 뿐이라고... 그러니 스피노자의 철학을 범신론으로 설명하는 것도 언어적 곡해일 수 있다.
닐스 보어는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를 예로 든다. 양자론을 고전물리학의 개념으로 설명하는 건, 무의식에 관한 정신분석의 해석을 의식 차원의 언어로 설명하는 모순과 별반 차이가 없는 거지. 언어는 의식 차원에서의 소통 체계이다. 이미 하나의 패러다임을 선택해 그 패러다임에 준하는 이해와 증명이 뒤따른다. 이게 칸트의 물자체, 용수보살의 空, 노자의 道, 라캉의 실재계 담론이기도... 그 언어의 바깥을 결국 언어로 설명할 수밖에 없는 모순. 그런데 무의식의 싱크로율로 설명할 수 있을 무의식 차원의 소통 도구를 우리는 알 수 없으니까. 책에 실린 보어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상에 근접할 수는 있지만 도달할 수는 없다.’ 이것이 라캉의 결론이기도 하다.
두 번째 단락으로 인용한 하이젠베르크의 생각은... 나도 정확히는 모르는데, 아마 '끈이론'에서는 데모크리토스를 벗어난 에너지적 차원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이것도 정확하진 않고 스치듯 들은 이야기인데, 끈이론에서는 우주의 시작이 빅뱅이 아니라고... 다른 우주와 우주가 충돌하여 우리의 우주가 시작된 경우일 뿐이라고... 여튼 정확한 기억은 아니니, 혹여 지식으로 활용하실 분들은 자료조사를 더 해보시길.
그런데 그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고, 생명들에게는 생로병사의 시작과 끝이 명확하니까, 우주에도 시작과 끝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그 기점에 신이 있다고 믿고... 그럼 신의 존재도 시작과 끝이 있는 걸까? 그렇게 말하는 종교인은 없을 터. 시작과 끝이란 것도 어쩌면 인간계의 패러다임을 선택한 언어적 표상은 아닐까? 영원한 과정만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