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도덕경>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다. 그러나 그걸 기억하는 어른들은 별로 없다."
<어린 왕자>의 서문에 적혀 있는 구절. 이 어른을 위한 동화의 스토리텔링은 우리가 잊어버린 시절에 관한, 그리고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알레고리다. B612에서 온 소년은 왜 '왕자'의 지위였을까? 이는 우리의 어린 시절을 상기해보면 쉽게 이해가 되는 대목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어느 별에서 온 왕자 혹은 공주가 아닐까를 상상해보기도 했던 그 시절엔, 아빠와 엄마가 우리를 부르는 호칭이 왕자님 혹은 공주님이기도 했으니...
맹자 가라사대,
大人者 不失其赤子之心者也 (대인자 불실기적자지심자야)
큰 인물이란 어린아이의 마음을 잃지 않는 자이다.
<도덕경>에도 적혀 있길,
專氣致柔,能嬰兒乎 (전기치유 능영아호)
기운을 부드럽게 하여 어린아이와 같아질 수 있겠는가?
사상의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이의 메타포는 특정 가치체계로 굳어지지 않은 사유의 순수성과 유연성을 의미한다. 아이들은 항상 '왜?'라고 묻는다. 마주치는 현상마다에 질문을 던진다. 어른들은 질문을 잘 던지지 않는다. 잘 모르는 것들에까지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 자신이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실상 그들이 맹신하는 '경험'이란 데이터도, 기존의 기억을 다시 겪는 해석에 불과하다. 많은 것들을 경험한 게 아니다. 과거에 겪은 일정 경험을, 자신을 스쳐가는 모든 현재에 투영하고 있는 것뿐이다.
"우연이 내게 오도록 내버려두라! 그것은 어린 아이처럼 순결하다."
동심을 자기 철학의 궁극처로 삼았던 니체에게, 아이는 무한한 가능성을 잠재하고 있는 상태이다. 어떤 변화와 발생에도 열려 있는 시간대이기에... 이미 무엇이 되어 있는 고착의 상태가 아닌, 무엇으로도 될 수 있는, 미래를 향해 열어 놓은 권능이다.
- <어린 왕자, 우리가 잃어버린 이야기>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