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제스처
나름 소통의 가치를 중시하는 교장들은, 가끔씩 회식 자리에서 불만사항을 기탄없이 그리고 가감없이 말해보라고들 한다. 물론 그 ‘기탄없이’를 곧이곧대로 듣는 것도 않지만, 또 이런 경우에 교사들은 대개 나름의 가감을 거쳐 할 말을 다 하는 편이다. 말 하라고 했으면 삐지지나 말던가. 회식 분위기 열라 싸해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리고 이때부터는 ‘랑그’를 겉도는 ‘빠롤’의 향연이다.
교장은 관리자로서 그럴 수밖에 없는 변명을 잇대지만, 실상 ‘말하란다고 진짜 말하냐?’를 묻고 있는 것이다. 교장 기분이 심상치 않다 싶어 애써 에둘러 말하는 쪽은, ‘니가 말하라며?’를 되묻고 있는 것이다. 나처럼 개념 없는 캐릭터들은, 속으로 ‘저것들 또 저래, 어차피 저럴 거면서’하며, 그냥 그날의 술과 안주에 충실하고자 한다. 꼰대적 성향이 다분한 상사들은 정말 아랫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싶어서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소통의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저 자신의 똘레랑스에 전념할 뿐이다. 사회생활하면서 내 나름대로 터득한 꼰대에 대처하는 자세는, 그냥 흘려듣는 것이었다. 어차피 말 안 통한다.
작가의 숨은 의도를 찾아내라는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해야 하는 한국의 문학교육에 대해, 윗사람이 모호하게 말했을 때 그 뜻을 알아내는 게 생존에 정말 중요했던 우리의 풍토가 반영된 것이 아닌가 싶다던 김영하 작가의 말. 그런데 그런 중의적 어법을 사용할 정도의 문학적 센스라도 갖춘 지평은 꼰대일 리 없다. 꼰대들은 대개 직설적으로 분명하게 말을 한다. 나중에야 그런 뜻이 아니었다는 왜곡된 기억을 근거로 들이밀 뿐이다.
그래서 아랫사람은 그 분명함에 숨어 있는 의도, 혹은 그 분명함이 걸고 있는 해석의 변화율을, 그 동안의 경험을 미루어 알아서 판단해야 한다. 뻔히 예상되는 피곤함과 불편함 앞에서는, 그냥 기분이나 맞춰주면서 욕이나 덜 먹을 보고서로 작성해 올리는 게 자기도 속편하다. 이런 조직이 탄력적으로 운영될 리 만무하다. 때문에 꼰대들은 자신이 꽤나 유능하고 현명한 줄 안다. 그리고 걸핏하면 이어지는 꼴 같지 않은 훈계.
“것 봐. 내 말대로 하니까 되잖아!”
글쎄, 도대체 뭐가 되었다는 건지?
- <순수꼰대비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