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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편집장 Mar 22. 2023

레비스트로스, <야생의 사고> - 카드게임의 비유

우연성과 유사성 

... 하부구조가 우선한다는 의미를 여기서 밝혀보기로 한다. 첫째, 인간은 카트놀이를 하는 사람과 같다. 그가 테이블에 앉아 꺼내 든 카드는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카드는 역사와 문명에 의해 주어진 것이다. 둘째로 어떤 카드가 손에 들어오는지는 게임을 하는 사람들 사이의 우연적 분배의 결과이며 카드놀이의 참여자들도 모르게 정해진다. 주어진 카드를 받아 쥘 따름이다. 사회는 카드놀이의 참여자들처럼 소수의 체계에 의해서 세계를 해석한다. 게임의 규칙처럼 모두에게 공통적인 것도 있고 책략처럼 개별적인 것도 있다. 그래서 아무리 같은 카드가 쥐어졌다 하더라도 누구나 똑같은 식의 게임을 하지 않는다. 물론 게임의 규칙이 그 한계를 정하고 있기는 하다. ... - 레비스트로스, <야생의 사고>, 안정남 역, 한길사, p164 -

  재미있는 비유지? 카드의 모양은 미리 정해져 있지만, 규칙은 어떤 게임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게임의 룰이 ‘블랙잭’이라면, 로열스트레이트플러시가 별 의미가 없다. 카드 사이에 흐르는 체계가 무엇이냐에 따라 카드 자체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소쉬르의 언어학으로 설명해 보자면, 기표(카드)와 기의(의미)의 대응 체계에는 미리 결정된 공리란 없다는 것. 


  마르크스의 철학에서도 하부구조가 관건, 경제구조가 각 계층의 사회문화를 결정한다. 즉 의식과 무의식의 양상을 규정짓는 토대라는 것. 문명과 같은 문화를 지니고 있진 않지만, 원시부족들이 향유하고 소유하는 나름의 문화를 결정짓는 하부구조가 있다. 부족마다 현상으로 드러나는 양상이 다를 뿐이지, 일관성을 갖추고 있는 체계가 발견된다. 


  살아가는 환경적 조건이 다르기에, 그 체계 안에서 그 체계를 해석해내는 저마다의 표현들은 다르다. 우리에게 돼지꿈은 행운을 의미하지만, 돼지고기를 금기시하는 중동지역에서도 같은 의미는 아닐 거 아니야. 그러나 자신들의 패러다임 안에서 필요했던 숭상과 금기가 설정되는 패턴은 비슷하다는 거지.

  이런 유사성에 관하여, 레비스트로스는 소쉬르를 십분 활용한다. 이를테면 우리의 은어 중에서도 ‘씹히다’는 표현은 저작운동(咀嚼運動)과는 크게 상관없으면서도 어떤 상황적 유사성은 납득이 되잖아. 기표는 기의를 한정하지 않는다. 기표 또한 기의에 묶이지 않는다. 이 대응은 우연적이다. ‘무시’의 의미를 꼭 ‘씹히다’로 받을 필연성이 발견되진 않는다. 그러나 그 기저에 흐르는 개연성, 구조적 조건들이 있다는 것.


  정신분석이 신화와 언어의 구조를 살피는 이유이기도 하다. 프로이트가 가장 애착을 가졌던 대표 저서가 <토템과 터부>였듯... 기표와 기의가 필연적 대응이 아니라는 것, 라캉이 상징계를 설명하는 원리이기도 하다. 명품이 열망의 대상인 게 아니다. 그런데 타자의 장(場)에서 설정된 구조적 산물로 대리만족을 하는 것. 꿈의 해석도 이런 논리, 꿈에 나타는 그것을 직유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 돼지꿈을 꾼다고 로또가 당첨되는 것도 아니잖아. 의식 체계에서는 소통의 도구일망정, 무의식의 시그널은 다른 것을 말하고 있다.

  명리학이 이런 원리이기도 해. 그 기표가 담지하고 있는 기의의 경우의 수는 많다. 또한 처한 조건에 따라 다른 현상으로 드러나는 것. 하여 같은 사주로도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 그러나 기저에 흐르고 있는 구조적 이미지는 비슷하다는 거야. 그러니 인생에 관한 방정식으로 이해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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