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편집장 Mar 24. 2023

<어린 왕자>의 노을 - 지드래곤의 <붉은 노을>

해가 뜨고 해가 지네

  우리에게 과거란, 과거의 시간 모두를 포함하는 범주가 아니다. 유의미한 사건의 순간들에게만 기억의 용량을 배분한 결과이다. 순간순간 과거로 진입하고 있는 현재의 성질도 마찬가지다. 기억의 부표가 띄워지지 않는 그 모든 순간들이 망각의 경계 너머로 사라져간다.


  나이가 들면서 인생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이유는, 기억할만한 유의미한 사건이 줄어들기 때문이란다. 더군다나 더 이상 낯선 가치들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 어른의 시간은, 자신에게 익숙한 기억들만을 다시 현재로 반복할 뿐이다. 한 달과 1년의 얼개를 대강 알고 있다. 감지되는 변화라고는 그저 해가 뜨고 해가 진다는 사실이 전부다. 낮과 밤 사이에 펼쳐지는 잠깐의 붉은 노을, 하늘 끝으로 사그라드는 여린 빛 속에서 잠을 깨는 가로등. 실상 하루와 1년이 다를 게 없는 풍경이다. 

  누구든 깊은 슬픔에 잠기면 노을을 사랑하게 된다던 어린 왕자의 말에서, 그가 생각처럼 어리지 않다는 사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어린 왕자가 B612에서 마흔 세 번의 노을을 보았다는 어느 하루는, 그만큼 빨라진 삶의 속도에 관한 알레고리는 아니었을까? 세상 끝으로 져가는, 그러나 아직까지 낮을 포기하지 않고 타들어가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순간을 사랑한 건 아니었을까? 생텍쥐페리는 이 동화를 마흔 세 살에 발표한다. 그런 것 보면 지드래곤이 덧보탠 <붉은 노을>의 랩 가사는 꽤나 문학적이었다는…. 해가 뜨고, 해가 지네, 노을빛에 슬퍼지네.


- <어린왕자, 우리가 잃어버린 이야기> 중에서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