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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퍼스, 한계상황 - 포월(抱越) 개념

<주역> - 궁즉통(窮卽通)

by 철학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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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퍼스의 ‘한계상황’ 개념을 『주역(周易)』의 한 구절로 대신하자면, ‘궁즉통(窮卽通)’이다. 닥치면 다 하게 된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을 있을지 모르지만, 하늘이 무너져야만 비로소 사력을 다해 솟아날 구멍을 찾게 되는 우리가 아니던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좌절과 절망은, 때론 사고의 비약(飛躍)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한다. 갑작스럽게 가로놓이는 인생의 장애물들은,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도 함께 지니고 다가온다. 그 전까지는 전혀 가늠해보지도 않았던, 그래서 시도조차 해보지도 않았던….


그래서 세상은 ‘위기는 곧 기회다’라고 말하는 것인지 모른다. 정작 위기에 빠져 있는 입장에서는 이 뻔하디 뻔한 위로의 문장이 썩 마음에 와 닿지는 않는다. 위기는 그저 위기이고,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정말 늦은 시기다. 그러나 위기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더 늦지 않으려 사력을 다하는 행위가 일어나며, 기회를 영접할 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이미 들어선 위기라면 뭐 어쩌겠는가? 저 명제를 참으로 만드는 것 이외에는 별 다른 해결책도 없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온통 어둠뿐이라면, 차라리 어둠을 받아들이고 어둠 속에서도 길을 찾을 수 있는 다른 감각을 계발하는 것이, 그저 주저앉아 울고 있는 것보다야 현명한 대처법일 것이다. 외면한답시고 눈을 감아봐야 더 짙은 어둠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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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실상 각자가 지닌 잠재적 능력치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여간해선 검증해 볼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뿐더러, 능동적으로 한계를 시험해보는 경우는 더더욱 없기 때문이다. 다른 실존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야스퍼스의 철학 역시 열린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다.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가 그은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초월성을 잠재하고 있다. ‘포월(抱越)’이라 명명되는 이 존재방식은, 맞닥뜨린 부정적 사태 앞에서 이루어내는 히어로적 각성을 의미한다. 호수의 물이 호수의 한계를 넘어 바다가 되고자 한다면, 호수가 넘쳐야 한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면 자신 안에서의 무언가가 넘쳐나야 한다. 그 포화를 가능케 하는 동기부여가 좌절과 절망 같은 ‘한계상황’이며,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과정 속에서 생각과 행위가 증가한다.


도저히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상황.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런 상황에 놓인 후에야 스스로에 대한 자각이 다가온다. 지금까지 해 온 방법론으로는 안 되는 상황이기에, 그동안 안 해 본 방법을 해보는 것이기도 하다. 돌아보면 이런 저런 방법은 다 해 본 듯 하면서도, 그 방법은 왜 여지껏 안 해 봤을까?


우리는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문제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익숙한 시간들에 전념한다. 그 익숙함으론 안 되니까, 낯선 방법으로의 도전을 감행해 보는 것. 익숙함이란 건 자신에게 효율인지는 몰라도, 문제의 입장에서 효율은 아니다. 관성으로는 먹혀들지 않는, 한계상황에 놓여 봐야 사유의 도약도 이루어진다. 물론 사람 나름이지만, 힘든 시기를 겪고 나야 겨우겨우 변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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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으로 내몰린 후에야 내가 지닌 내구성과 지구력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가능하다. 닥치면 다 한다는 말은, 닥치지 않은 시기에는 덜 하고 있었다는 말이기도 할 터. 나의 한계를 시험하는 지점에서 나의 최대치가 확인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것도 할 수 있고, 그렇게까지 버텨낼 수 있는 잠재성은 그런 상황에 놓이게 돼서나 발휘되는 것들이다.

벽과 벽 사이에 난 길로만 갈 줄 알던 이가, 사방이 벽으로 가로막힌 뒤에야 비로소 벽을 뛰어 넘고, 기어 넘고, 허물어 부술 생각을 한다. 왜 진즉에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조차도 벽으로 둘러싸인 후에나 하기 마련이다. 그전까지 그런 고민 자체가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가능성은 그렇듯 위기에 대한 대처방법으로 주어진다.

길이라고 믿었던 것이 사라지는 순간, 그전까지는 미처 가늠해보지 않았던 다른 길의 가능성도 발견된다. 또한 내가 그저 단 하나의 루트에 한정되어 걷고 있었다는 사실도 그제서야 깨닫게 된다. 걸음이 멈춰진 순간, 이전까지 가늠해 보지 않았던 역량들이 새로이 발견되기도 한다. 가로 놓인 후에야 높이를 뛰어넘을 수 있는 능력이 발견되고, 끊어진 후에야 내게 잠재되어 있던 넓이의 능력이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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