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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 어록 - 모든 순간의 발생학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by 철학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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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되이 보내 버린 이 시간 안에 진실이 있다는 것을 마지막에 가서 우리가 깨닫는 것. 그것이 바로 배움의 본질적인 성과이다. … 우리의 게으른 삶이 바로 우리의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 전 생애가 하나의 천칙이다. - 들뢰즈


누구보다 프루스트를 사랑했던 들뢰즈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되찾은 시간’에 대한 소회를 적은 것이다. 쉽게 말해, 어떤 과거도 지금에 미치고 있는 모든 함수이며, 버려지는 시간은 없다는 이야기. 무의미하게 소모되고 있는 듯 했던 권태의 날들조차도, 결국엔 내 삶 안에서 어떤 의미를 잉태하고 있었던 시간이다.


들뢰즈를 좋아하는 성향이기도 하지만, 내겐 들뢰즈의 철학 자체가 그런 천칙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내가 출판사를 통해 써내리고 있는 모든 삶의 이야기들이 그런 경우다. 내가 음악과 관련한 원고를 쓰지 않았던들, 미야자키 하야오와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그림을 좋아하지 않았던들, 한문 전공자가 아니었던들, 철학으로 글을 쓰는 입장이 않았던들, ‘민’씨가 아니었던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좋아하지 않았던들, 가능하지 않았을 인연들. 나의 어떤 과거도 그 나름의 미래로 이어지는 유의미다.


언젠가는 써먹을 일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예전에 서머리 노트에 적어 놓았던 것들을 다시 뒤적거리다 보면, 도대체 이런 책은 언제 읽고 정리해 둔 것일까가 기억나지 않는 경우들도 많다. 그 잊혀진 기억들을 다시 꺼내어 ‘되찾은 시간’으로 각색을 한다. 머지않은 미래에 어떤 기획을 진행할 줄 알고 정리를 했던 것이겠는가.


때론 저걸 어디다 쓸 때가 있을까 싶어도 그냥 혹시나 해서 적어 놓았던 것들이, 나중에 문득 적소의 사용처가 떠오르는 경우들이 있다. 들뢰즈는 ‘발생’이란 말을 자주 사용한다. 들뢰즈의 철학 서사는 대개 이 전제로부터 뻗어 나가거나, 이 결론으로 수렴하거나이다. 우리의 인생은 모든 시간에 걸쳐 그런 발생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당장에 ‘아직’ 모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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