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관우의 시뮬라크르 - 극장의 우상

연암 박지원, <영처고서>

by 철학으로의 초대
popular-chinese-god-guan-yu-tin-hau-temple-ya-ma-tei-yau-kowloon-jan-hong-kong-103686704.jpg

서양 정신사에서 천국과 지옥 개념은 단테의 『신곡』 이후에 정립된다. 실상 문학이 종교에 영향을 미친 것. 철학에서 말하는 ‘시뮬라크르’의 사례이기도 하다. 보드리야르는 가상이 이미 우리의 일상 속에 들어와 있음을 지적한다. 가상일망정 그것으로 정립되는 질서체계라는 게 있다. 또한 그 명분으로 억압되는 자연성들이 있다. 니체가 이걸 따져 물은 거다.


중국의 도교 전통에서는 관우를 신으로 모시는 사당을 짓는 경우들이 있었는데, 이도 역사보다는 문학의 흔적이다. 임진왜란 시기에 명나라 장수들에 의해 조선에 유입되니, 한동안 민간에서 관우숭배사상이 유행했다는 사실은 조선의 문학으로도 고증되 는 역사다.


박지원의 「영처고서」에는 관우의 신상(神像)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 있다. 그저 모상에 불과하지만, 믿는 자들에겐 정말 그 우상의 아우라로부터 성령을 체험하기도 하는, 그 자체로 신이었다. 그에 비해 관우에 대한 이해가 없는 어린 아이들에게 관우의 사당은 놀이터일 뿐이다. 그곳에 존재하는 아이들의 신은 그저 놀이개로서의 관우다.

c12db425c85d68bc702f22c7e91dc7c4.jpg

연암의 성향을 감안해 본다면, 이 일화로 지적하고 있는 바가 누구의 관우에 관한 것이겠는가? 관운장을 휘감은 가상으로부터 고된 현실을 위로받고자 하는 자들은, 실상 그 외관이 유비여도 장비여도 상관없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는 심지어 당나귀여도 상관없었다. 자신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인간계를 초월해 있는 존재들이 필요했다. 그에 비해 아이들의 순수함은 그 초월의 존재를 현실계로 끌어당긴다.


연암의 포커스가 종교를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베이컨의 극장의 우상으로 비유하면 적당할까? 그저 네이밍만으로 숭배되어지는 권위에 대한 지적으로, 조선의 지식인들로부터 문인의 문법이 아니라는 비평을 받고 있던 이덕무에 관한 변호다. 작가가 그저 저 자신의 문법을 지키면 그만인 일이지, 신앙처럼 받들어야 할 모범이 따로 있는가에 대해 따져 묻고 있는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퇴계와 율곡 - 이기논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