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변에 대한 고찰
왜 그런 날이 있지 않아?
별 것도 아닌데, 내장을 싹 비운 듯 쏟아낸 쾌변으로 인해 하루 컨디션이 너무 좋을 때.
제때 배출되지 못한 숙변이 피부 트러블을 일으키는 것이기도 하잖아. 정신분석에서 진단하는 문제도 기억과 관련되어 있다. 미움도 분노도 비워내고 밀어내야 하는데, 때론 쓸데없이 좋은 기억력이 붙들고 있는 기억들이 있다.
“부단한 고통을 주는 것들만이 기억으로 남는다.”
아직 윤리의 메커니즘이 정립되지 않은 초기의 인류에게는 죄가 죄로 성립되지 않았다. 당한 자는 그것이 왜 아프고 슬픈 일인지를 정확히 해명하지 못한다. 가한 자는 그 일로 인해 아파하고 슬퍼하는 이들을 보며 일종의 채무감을 지닌다. 그러다 공동체적 윤리가 발달하면서, 그 채무감을 잊지 말라는 의미로 형벌이 발명되었다는, 니체의 고찰.
당한 자에게는 언제고 되돌려주어야 한다는 채무감이기도 할 테지. 그 고통의 기억을 곱씹으며 훗날을 도모하는 것이기도 하고... 니체가 용서와 망각에 대한 찬양을 늘어놓긴 했으나, 나중에 정신병을 앓은 것 보면 정작 자신도 그렇게 하진 못한 것 같다.
용서라는 것도 그렇잖아. 여전히 사랑하는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이, 사랑의 크기만큼으로 파고 내려간 미움일 때나 여지가 있는 것. 그 이외에는,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는지 어떤지에 대해서도 관심은 없다. 이 나이가 되면 그런 게 세상이란 사실 정도는 받아들이게 된다. 반드시 그 수모를 되돌려 주겠다는 마음이 동력도 되지만 방해도 되는 법. 좋게 좋게 끝내는 것으로 내 품위라도 지켜내고자 하지만, 잊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