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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편집장 Jun 14. 2021

빅뱅에 관한 추억

지드래곤의 <무제(無題)>

   교직에 발을 들였던 초창기, 학생들 사이에서는 동방신기 식으로 교사들에게 별칭을 지어주는 게 유행이었다. 가령 버럭 윤철, 답답 소연 등등. 내 이름 앞에 붙는 건 ‘까칠’이었다.

   “어우, 지지배 지랄도...”

   여학생들 사이에서의 내 유행어. 내가 저 말을 자주 했단다. 여고생들의 맥락없는 애교나 장난을 잘 안 받아주는 편이었거든. 내가 그런다고 이 생기발랄한 여고생들이 가만 있나? 그러다 보니 저 말까지 나오는 거지. 나도 처음부터 그랬겠어? 1년차 때 어찌나 휘둘렸던지, 2년차 때부터 생긴 별명. 


   그 시절에 동방신기와 빅뱅, 원더걸스, 슈퍼주니어, 소녀시대가 잇달아 데뷔를 했다. 아주 오래 전, 어른들이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을 이해 못 했었는지, 그 심정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돌아보면 끝물일지언정 그때도 아직은 20대였는데, 취업에 대한 걱정을 짊어진 몇 년을 거치면서 요즘 가요에 대한 관심으로부터는 꽤나 멀어져 있었던, 내 자신의 노회함에 대한 각성이 찾아든 시기이기도...


   그때 가산디지털역의 아울렛 매장에 들를 일이 있었다. 매장 건물 앞 좌판에서 3만원에 팔길래 ‘충동구매’를 한 리바이스 후드 점퍼를, 상태가 양호해서 아직까지도 버리지 않고 있다. 이젠 내게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교직 시절의 추억이기도 한... 그 다음 주에 입고 출근을 했더니, 학생들이 그게 ‘빅뱅’ 스타일이란 사실을 알려줘서, 그게 뭔지도 잘 모르면서, 한 동안은 그 점퍼를 자주 입고 다니며 어린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었던... 

   동일시 현상이었을까? 차이에로의 이상이었을까? 그때부터 빅뱅은 조금 좋아했다. <붉은 노을>을 리메이크 한 이후로는 더 더욱. 특히나 지드래곤은... 나보다 어린 친구 존경하기 쉽지 않잖아. 이 친구는 존경해.


   그에겐 김광석의 <서른 즈음>이 어울릴 것 같지는 않았는데, 그도 나이를 먹는다. 이 <무제>라는 노래는, 이승철에게 갈 곡을 지드래곤이 부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아니 다음 생에도 너를 만나’라는 이 부분은 내 또래 이상의 세대들에게도 유효한 감성이지 않나? 요즘 아이돌에게서는 이런 언어가 잘 안 쓰이잖아.

   어릴 때는 정말 저렇게 사랑하기도 하잖아. 정말 그 사람 아니면 죽고 못 살 정도로... 몇 번의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는 의심이 들어차기 시작한다. 또 조금의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까지 죽을 일은 아닐 거라며 제법 잘 견뎌내기도 하고... 실상 크고 작은 상처 위에서 다시 사랑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고, 다시는 그런 사랑을 할 수 없을 것 같고, 되레 그래서 가벼운 만남도 가능할 수 있었고, 딱 그만큼만의 사랑밖에 가능하지 않아서 별로 아프지 않을 수도 있었고... 그러면서 사랑에 대한 자신의 경험으로 박제된 사랑을 정의하려 들기도 하고... 그런데 나이 들어서, 그때 그 시절의 감정을 다시 한 번 겪을 때가 있거든. 그제서야 사랑에 관한 내 오만을 새삼 깨닫고, 다시 아프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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