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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편집장 Jun 14. 2021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

김광석,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세대의 구분을 필요로 하는 음악은 아닐 테지만, 굳이 구분하자면 나는 김광석의 세대는 아니다. 그러나 어쿠스틱 기타를 배우다 보면 기타 교본으로라도 알게 될 수밖에 없는 뮤지션. 그다지 좋아하는 장르가 아니어도 기본 소양으로 알고 있어야 했던 너바나 혹은 건즈앤로지즈처럼, 음악에 관한 꿈을 지닌 이들에겐 하나의 카테고리이기도 했다.


   창틈에 기다리던 새벽이 오면

   어제보다 커진 내 방 안에

 

   김광석의 노래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학과 철학의 경계를 흐리며 다가오는, 그 자체로 문학이고 철학인 가사. 새벽빛이 밝히는 공간의 크기로 묘사한 시간의 흐름은, 흡사 바슐라르의 미학. 정작 바슐라르는 저렇게 표현 못하는... 궁극적으로는 저런 글이 쓰고 싶어서, 매일 같이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일상의 언어들로 풀어놓은 구체성이 선사하는 풍요로움. 비교적 접근성이 좋은 악기인 어쿠스틱 기타와 같은 비일상성으로 써내려간 문학인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삶 구석구석에 나뒹구는 언어들은, 결코 하루키가 아니고 바슐라르가 아니니까. ‘심쿵해’와 ‘세젤예’는 더 더욱 아니고... 각자의 서른을 지나치면서도, 모든 세대가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서 조우하는 이유는, 그런 평범함 속에서 찾아낸 특별함 때문이 아닐까?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되레 다시 떠올리며 기억의 유통기한을 늘려가는 이유. 혹여 그 사람이 다시 돌아올까 봐. 이렇게 잊어가다 보면 그때 내가 다시 사랑할 수 없을까 봐. 그 체념과 미련 사이에서...


   하얗게 밝아온 유리창에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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