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카이 마코토, <너의 이름은>
기억이 아름다울까, 사랑이 아름다울까? 물론 기억이다. 기억이 더 오래가기 때문에 더 아름답다. 사랑은 두 사람이 필요하지만, 기억은 혼자라도 상관없다. - 김연수, 『사랑이라니, 선영아 -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이름의 시대’, ‘말의 시대’, ‘사물의 시대’의 3부작으로 쓰려고 했을 정도로 이름에 강한 애착을 보였다고 한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주인공 마르셸이 좋아했던 ‘질베르트’의 이름이다. 프루스트에게 이름은 지칭의 목적 이상의 의미를 응축하고 있는 기호(sign)이다.
프루스트는 시니피앙이 시니피에 이상의 의미를 담아낸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그 동력은 바로 기억이며, 이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전체의 동력이기도 하다. 이름은 그 이름이 지칭하는 바 이상의 것을 기억하고 있다. 들뢰즈의 해설서 <프루스트와 기호들>은 이런 기호의 성질과 그 기호가 담고 있는 의미에 관한 이야기이고...
<너의 이름은>에서도 그 이름이 지니는 상징성은 기억 이상인 거잖아. 이승환 옹의 <세상에 뿌려진 사람만큼>의 가사를 빌리는 게 이해가 더 쉬울 것 같다. 그대의 얼굴과 그대의 이름과 그대의 얘기와 지나간 내 정든 날...
때로 홀로 불러보는 그 사람의 이름에 내 모든 사랑이 담겨 있기도 하고, 사랑에 대한 대답으로 이만한 것도 없지. 그냥 너. 그 이름의 자모조합만 떠올려도 애틋해 죽을 판인...
‘선영’이라는 이름이 어떤 세대의 표상과도 같은 경우, 결국 사랑이 지니는 인문학적 보편성의 경우이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