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도 Sep 16. 2016

지방에서의 학교를 다니며
배운 것들

배우는 훈련이 개인을 성장하게 만든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참 특이했던 아이였다.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던 초등학생

초등학교 때에는 정말로 학교 내에서 싸움을 많이 하는 아이였다. 고집 이세고 한번 뒤틀린 친구관계는 잘 풀어내지 못했다. 


 초등학교 때에는 반장을 2번 정도 했었는데 아마 이때부터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확신이 있다면) 리더가 되고 싶어 하기를 원했던 아이였다. 지금도 익숙한 환경과 사람들 사이에서는 리더나 관리자가 되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초등학교 때는 공부를 꽤나 잘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반에서 1등이라는 성적표를 받은 적이 있는데, 아직도 그때의 기분을 잊지 못한다. 아마 많은 공부를 잘하는 (혹은 잘했었던) 학생들은 다들 물리적으로 표현하기 힘든 그런 느낌과 보상을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어린 나의 눈에도 슬슬 학구열이라는 것들이 포착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주로 어머님들을 보면서였다. "누구는 어떤 학원을 다닌다더라." "어디서 과외를 받는다더라."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이 정도는 선행학습을 하고 가야 한다더라." 하는 말들은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쉽게 오고 가는 말일 것이다. 나 역시 이런 말들에서는 벗어나지 못했지만 딱히 학원을 다니거나 과외를 받지는 않았다. 또한 많은 중-고등학교 진학 시에 일어나는 공부할 수 있는 좋은 분위기를 가진 중학교를 진학하기 위해 일부 학생들은 위장전입을 하여 중학교 배정을 받는 일들도 있었다. 나는 가장 가까운 중학교에 진학했었는데 운이 좋았던 것인지 지금 생각해보면 학구열도 가장 높았고 분위기도 괜찮은 편이었다. 




중학생이 되어 배운 첫 번째 원칙.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첫 번째로 본시험인 1학년 1학기 중간고사에서 전교 81등이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나는 크게 개의치 않았지만 초등학교 때와 비교해서 부모님은 어느 정도의 실망감을 느끼셨던 것 같다. 그래서 영어학원과 종합학원 등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사실 강요는 아니었고 나도 일정 부분의 필요성을 느꼈다. 중학생들은 학원에서 분명 배울 것들이 있다. 우선 단언컨대 학원에서 의무적으로 공부해야 하는 시간이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배운 점들은 바로 공부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었다. 스스로 터득하는 방법도 있지만, 일단 가르치는 사람이 어떻게 가르치는가, 어떤 부분이 중요한가, 그리고 어떻게 시간을 분배하여 공부를 하는지에 대해 배울 수 있다. 


신기하게도 지금 일을 하면서 배우는 것이 똑같다. 나는 대학교에서 프로젝트나 아티클 등을 꽤나 구조적으로 쓴 경험들은 있지만 회사에서 일을 한 적은 없다. 하지만 4년 동안 그런 연습들을 하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자신만의 방법론들을 만들고 그것을 다듬어 나갔다. 실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처음 해보는 일들을 접할 때 많은 사람들이 막막해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구조적인 사고' 혹은 '문제 해결 능력'에 대한 훈련이 꾸준히 된 사람이라면 상대적으로 정답에 가까운 방법론들을 실무에서 사용하게 되는 것 같다. 아직도 부족하지만 위와 같은 경험들과 사례를 찾으며 계속 공부하는 습관이 있다면 정석보다 더 나은 길을 찾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계속 나아지는 접근법은 과학에 기반한 많은 사례를 접하고 그것들을 공부하는 것인데 애초에 이런 것들에 대한 계획이나 사고가 없다면 그 사람은 성장하기가 힘들다. 특히 나처럼 실무경험이 없는 사람은 일을 하면서 무조건적으로 배울만한 사람(롤모델로 생각할 수 있는 시니어)이 항상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능력은 필수라고 생각을 한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배움은 끝이 없는 세상에서 이 배움에 대한 훈련은 빠를수록 좋은 것이 아닐까.


다시 학교 이야기로 돌아가 본다면 성적을 3년 동안 어찌어찌 입학 때와 비슷한 수준으로 맞추어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국내 일부 지역에서는 고등학교를 성적순으로 지원할 수 있는 비평준화 제도가 유지되고 있었는데 내가 사는 강릉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진학했던 강릉고등학교는 지금은 평준화가 되었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지역에서는 명문고로 알려진 학교였다. 그에 걸맞게 나는 입학생들 중 딱 중간 정도의 성적으로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고등학생 때 배운 두 번째 원칙.

고등학교 생활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허겁지겁 아침을 먹었다. 가끔은 샌드위치나 과일을 들고 학교 통학 버스에 탑승했다. 통학 버스에서 학교를 가는 길은 경포호수를 지나가는 길이라 매일 그 경치를 감상할 수 있었는데 실제로는 부족한 잠을 자느라 제대로 본 기억이 거의 없다. 7시 50분부터는 10분간 담임선생님의 조회가 시작되고 8시부터 바로 0교시가 시작되었다. 8시부터 무려 밤 11시 30분까지 학교에서 지냈고 그 이후에는 당연한 듯 학교 정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독서실 버스를 타고 독서실로 향했다. 이동하는 20-30분 동안은 친구들과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하고 다시 자정부터 새벽 2시 30분까지 이런저런 공부들을 했다.


지금 되돌아보면 나 자신이 불쌍하기도 하고 이 글을 쓰는 시간에도 나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을 학생들에게 연민의 감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어쨌든 이 3년의 인고의 생활 동안 배운 것은 중학교 때와는 조금 다르다. 다른 학교는 모르겠지만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에서는 친구들 간에 모르는 것들을 물어보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수학을 못하더라도 영어를 엄청나게 잘하던 친구들도 있었고 그 반대의 케이스도 물론 있었다. 


제일 먼저는 보이는 것에서 배웠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의 '수업을 듣는 태도', '시험기간에 공부 스케줄을 짜는 방법', '노트 필기법',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부터 시작할 수 있다. 직접적으로 보이는 부분들이다. 처음은 눈으로 보지만 그다음은 그 친구들의 사고방식이나 계획을 배우고 나의 상황에 맞게 접목시켜보았다. 두 번째로 배웠던 것은 바로 친구들의 집중력이었다. 야간 자율학습시간에 책과 싸우는가 싶을 정도로 엄청난 아우라를 풍기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런 집중력은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 집중력은 사실 많은 것들을 의미한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고등학생들이 3년 동안 절대적으로 비슷한 시간 동안 공부를 하고 있다. 하지만 당연히 성적은 모두가 다르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설명될 수 있는데 첫 번째가 공부 방법이고 두 번째가 집중력이다. 전자는 내가 중학교 때에 배웠던 '구조적인 사고'와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공부방법을 찾는 것이 차이를 만들어낸다. 집중력의 경우에는 높을수록 해당 시간에 더 많은 것들을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할 수 있게 하기 때문에 그 수준 자체로 차이를 만들어낸다. 


이 집중력 또한 내가 하는 일에 적용시켜본다면 꽤나 설득력 있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나는 스스로도 그렇고 같이 일하는 팀원들에게도 야근이나 딱 떨어지는 업무시간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가 바로 집중력 때문이다. 절대적인 시간으로 일을 많이 한다고 절대 생산성이 나아진다는 보장은 없다. 휴식과 더불어 가끔은 일과 조금 멀리 떨어져서 해당 업무를 바라보는 시간이 더 나은 생산성을 만들 수 있다. 이는 주어진 업무시간에 더 높은 집중력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실제로 구글의 70/20/10 이라던지 리모트 워크를 지향하는 많은 회사들은 실제로 더 높은 수준의 창의성과 생산력을 만들어내는 사례들이다.




결론적으로 나도 모르게 학창 시절에 배운 것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처음부터 잘 배우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2. 학교, 학원 그리고 친구들에게서 보고 배우는 경험은 더 좋은 방법론이나 접근법을 고안할 수 있게 하는 훈련이 되었다.

3. 집중력은 시간을 이길 수 있게 해준다.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 하나하나 경험하고 배운 것과 집중력이 지금까지도 논리적인 사고와 의사결정 그리고 효율적인 업무를 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만든다.

앞으로 이 두 가지 본질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더 좋은 방법론이나 접근법을 고안한다고 해서 그것이 꼭 좋은 결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방법론이 틀렸을 수도 있고 혹은 성과측정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지금부터 또다시 수많은 시행착오들을 겪고 더 많은 케이스를 보며 배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또 다른 배움을 기대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방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