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갈등과 제로섬 전투
슘페터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모든 사람들이 잘 먹고살게 해주는 이상적 시스템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왜 자본주의의 몰락을 예견했을까? 브라운스톤의 <부의 인문학>에 나온 내용을 보고 생각해보자.
‘자본주의 시스템은 기업가가 성공했을 때 어마어마한 부를 주고 실패했을 때 무시무시한 참담함과 파산의 고통을 준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큰 보상 때문에 재능 많은 사람이 앞다투어 뛰어 들어서 성공을 위해 노력하게 만드는 시스템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주인공은 기업가이며 소수의 엘리트가 사회 전체를 이끌어 나간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왜 망한다고 했을까?
소수의 성공한 사람은 다수의 대중에게 물질적 궁핍함이 아닌 심리적인 상대적 박탈감을 주고, 다수의 뒤처진 대중은 소수의 성공한 자에 대해서 질투심, 원한 그리고 분개심을 가지게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특히 시장경제에 대한 현장 경험도 없고 사업에 대한 직접적인 지식도 전혀 없이 오직 글과 말로만 먹고사는 좌파 지식인들이 뒤쳐지고 낙오한 대중을 선동할 것이라 주장했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낳은 불평등과 격차만 들이밀어 보여주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분배와 자본주의 시스템의 전복뿐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좌파 지식인들이 그렇게 비판에 앞장서고 선동하는 이유는 비판과 선동만이 그들의 존재 가치와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사회 풍토 속에서 자본주의 시스템의 주인공인 기업가는 좌파에게 대항하지 못할 것이고 조용히 사라질 것이라는 게 슘페터 자본주의 몰락 예언의 개요다. 기업가는 언론의 자유를 중시하기에 좌파의 선동과 비난의 자유도 제한할 수 없다고 믿고 그들과 맞붙어 싸우려 하지 않는다. 또 섣불리 항전을 했다가는 소수의 불리함으로 재산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투쟁을 포기한다. 1인 1표의 정치제도가 자본주의 시스템의 주인공인 소수의 기업가를 움츠러들게 만든다는 것이다.
최근에 읽은 홍성국의 <수축 사회>에서도 내가 느끼기에는 비슷한 부분이 나온다.
수축 사회의 5가지 특징 중
원칙이 없다: 이기주의
수축 사회의 유일한 이데올로기는 오직 생존이다. ‘국가 vs 국가’, ‘보수 vs 진보’, ‘대기업 vs 중소기업’이 벌이는 전투는 이제 원칙이 없다. 자기 조직의 생존에만 집착하느라 패배자를 돌볼 의지나 여유가 없다. 원칙이 약화되면 사회의 중심 이데올로기가 없어진다. 이때 사람들은 불안정해지고 정부도 정책 방향을 잡기가 어렵다. 사회의 안정성이 낮아지면서 갈등만 양산하고 때로는 민주주의가 후퇴한다.
눈앞만 바라본다: 미래 실종
수축 사회에서 패배는 곧 자신의 존재를 상실하는 것이기 때문에 눈앞에서 벌어지는 제로섬 전투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미래를 체계적으로 준비하기 어렵다. 또한 평온한 시기와 달리 도덕, 예의 공생 같은 정신적 가치가 약화되면서 오직 승리에만 집착한다.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규범이 부재한 일종의 무정부 상태가 되는 것이다.
눈앞의 승리에 급급해 고군분투할 경우 부분적인 전투에서는 이길 수 있겠지만, 전체 흐름과 미래 변화를 감안한 전략이 없다면 궁극적으로 패배하고 말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양극화, 갈등 등의 전면적, 입체적 전투 중이다. 아버지 세대와 우리 세대끼리, 임대인과 임차인이, 여당과 야당이, 종교적 갈등이. 사회 어느 곳에서도 전투가 일어나지 않는 곳은 없다. 말 그대로 수축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제로섬 전투 중이다.
슘페터는 인간의 심리적 분개심이 자본주의의 몰락을 가져온다고 하고 있다. 홍성국은 수축 사회로 진입한 한국이 이기심과 제로섬 전투 때문에 어려운 횡보를 걸을 것이라고 예견한다.
책을 읽고 내가 관심 있는 우리 사회의 부동산 분야를 살펴보면 심리적 분개심과 제로섬 전투가 어우러져 사회 갈등이 엄청나게 심해지고 있다.
http://www.inews24.com/view/1317411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부동산 문제로 인해 가정불화와 관련된 글이 수없이 올라오고 있다. 한 무주택자는 "3년 전 와이프가 아파트 구매를 권유했지만, 리스크를 감내할 자신이 없어 전세를 연장했다"며 "부동산 기사만 볼 때마다 스트레스에 견딜 수 없고, 부부관계 역시 소원해졌다"라고 말했다.
근로의욕이 떨어졌다는 것은 물론, 극단적인 글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 다른 무주택자는 "아파트 가격이 이렇게 폭등했는데, 월급으로 내 집 마련은 불가능하다"며 "집을 이미 구매한 주변 친구들을 보면서 굳이 이렇게 일을 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날 통화에서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과 우울감은 심리적 취약층부터 번지기 시작할 것"이라며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극단적인 사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정책이 효과를 거두려면 사람들의 심리까지 고려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위 기사에서 보듯이 우리 사회의 갈등은 주택문제로 극으로 치닫고 있다. 특히 이념, 정치와 뗄 수 없는 부동산 문제에서 너무나도 심각하다.
몇 년 전만 해도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전세와 매매를 선택해 얼마든지 안정적 주거 공간을 영유할 수 있었다. 전세와 매매가가 안정되어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에는 뭐하러 굳이 집을 사나? 전세로 평생 살면 되는데.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많았다. 그만큼 전세 가격이 안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 유행했던 사회 문화는 'YOLO(You Only Live Once)'였다.
내가 생각할 때 부동산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인간의 심리를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이념으로 정책을 펴고 실행하면 안 된다.
홍성국(현 민주당 국회의원)의 <수축 사회>에서는 경제 문제는 좌우를 고려하지 않고 정책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그 예시로 프랑스 마크롱의 '핀셋 이데올로기'를 든다.
프랑스의 마크롱은 복지 확대와 신자유주의적 구조 개혁을 동시에 시행하면서 효율성과 효과성을 함께 추구하고 있다.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된다면 그는 무엇이든지 한다고 한다. 경제에 합리적이고 유효하다면 좌파 정책이든 우파 정책이든 어떤 정책이든지 수용한다는 것이다. 서민의 삶에 필요하다면 좌우에 상관없이 그 정책을 핀셋으로 뽑아내 사용한다.
이데올로기를 버리고 프랑스 전체를 대상으로 전투에 나서면서 지지율은 떨어지고 있지만, 마크롱은 핀셋 이데올로기 정책을 고수한다. 우선 일방적 이데올로기의 오류에서 벗어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또한 심리를 고려하지 않은 정책은 국민들의 원성을 산다. 최근 발표된 전세 대책은 내 집에 살고 싶은 사람들의 심리를 고려했다고 보기에는 조금 갸우뚱해진다. 무려 11만 가구를 공공임대로 내놓는다고 한다. 중산층도 타깃으로 공공임대에 들어가서 30년간 사는 평생 주택을 공급한다고 한다.
https://imnews.imbc.com/replay/2020/nwtoday/article/5979261_32531.html
다들 생각하는 바가 다르고 매우 민감한 부분이지만, 개인적인 의견으로 내가 여기서 느낀 점은 인간의 심리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간은 소유하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한국인의 내 집 마련에 대한 심리는 욕심이 아니라 본능이라고 생각한다. 내 집 소유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내 집에서 안정적으로 몇십 년간 살고 싶은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임대료를 내면서 스스로 원해서 몇십 년간 임대아파트에서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 주변 청약을 기다리는 무주택자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고는 이 생각에 확신을 하게 되었다.
"대책 원문을 읽다가 열 받아서 더 이상 읽지 않았다. 누가 임대주택에 들어가고 싶어서 들어가겠냐. 왜 좋은 입지의 주택 공급 대책은 없이 임대만 늘리는 거냐."
맞다. 핵심은 공급이다. 과천은 지정타 공급과 다양한 신축의 입주물량이 합해져 공급 심리가 많아져 오히려 전세가가 안정적으로 내려갔다고 한다. 공급이 많으면 자연스럽게 시장이 가격을 찾게 되는 이상적인 현상인 것이다.
문득, 계속 이러다가 슘페터가 예견한 한국 자본주의의 몰락이 오는 것이 아닌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많은 이들이 가치 전복을 통해 이데올로기 전체가 바뀌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우리나라의 신자유주의는 이미 많이 그 색을 잃어가는 중인 것 같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복지와 분배가 트렌드인 듯하다. 슘페터가 말한 자본주의 몰락이 아예 가치 전복이 아니라, 물이 점점 빠지듯 그 색을 점점 잃어가는 자본주의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책을 다 읽고 갑자기 생각이 들어 쓴 글이라 두서없다. 그렇지만 앞으로 한국 부동산과 경제가 그리고 한국 정치가 어떻게 될지 매우 궁금해진다. 또한 내 마음속 예상대로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많은 사람들이 상처 받지 않고, 행복한 주거생활을 영위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