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의역설>을읽고
재미있는 책을 읽고, 인상 깊은 부분과 생각을 글로 남겨본다.
신문에, tv에 '규제의 역설'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자주 들린다.
우리 사회에서 규제는 선한 의도로 시작한다.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해,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해 실시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결과가 안 좋은 경우들이 많다. 왜 그럴까?
책에서 나오는 다양한 규제의 역설 사례를 보면서 다양한 규제를 뒤집어서 생각해보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생겼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고 4년 뒤인 1793년, 급진파를 대표하는 자코뱅당의 로베스피에르가 정권을 잡았다. 그는 순수하고 정의감에 넘치는 사람이었다. 개인의 사익이 아니라 진심으로 국민들을 위해 일할 각오와 또 그럴 능력이 있었다. 로베스피에르는 국민들의 삶을 걱정하고 그들의 삶이 개선될 수 있도록 여러 조치들을 취했는데, 우유 값 인상 금지도 그중 하나였다.
우유 값을 싸게 책정하고 그 가격보다 비싸게 우유를 파는 사람들을 처벌했다. 정부 지침을 어기는 사람에게는 가차 없이 사형이나 징역 등의 처벌을 내리곤 했다. 그런 정부가 강력한 조치로 우유 가격을 묶어 놓았으니 누구나 다 쉽게 우유를 사 먹을 수 있어야 했다.
그런데 가격은 싸졌지만 시장에서 우유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정부가 정한 가격에 우유를 팔면 적자가 나니까 목장 주인들이 시장에 우유를 내놓지 않았던 것이다. 목장 주인들이 우유 생산을 기피하면서 시장에서는 우유를 찾기가 어려워졌다. 서양에서는 우유의 쓰임새가 많다. 여러 이유로 우유를 찾는 사람들이 생기자 암시장에서 우유가 거래되기 시작했다. 이제 국민들은 암시장에서 이전보다 훨씬 비싼 가격으로 우유를 사 먹게 되었다.
로베스피에르의 해결책은 이전과 똑같았다. 사료가 비싸서 문제라면 사료 값을 낮추면 된다. 혁명 정부는 젖소가 먹는 목초 사료 가격을 낮게 정하고, 이 가격보다 더 비싸게 판매하는 사람은 강력히 처벌했다. 우유 값과 마찬가지로 사료 가격도 공식적으로는 낮아졌다. 사료 가격이 낮아졌으니 이제 목장 주인들은 우유를 싸게 팔아도 충분히 이익이 날 수 있다. 그런데 시장에서 사료가 사라져 버렸다. 목초 사료를 만들던 사람들이 더 이상 사료를 만들지 않으려 했다. 혁명 정부가 정한 가격으로 팔면 손해를 볼뿐이니 굳이 일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렇게 사료가 귀해지면서 젖소가 먹을 것이 없어졌다. 젖소가 굶기 시작했고 젖소가 굶으니 우유가 나오지 않았다.
이전에는 비싼 가격이라도 우유가 암시장을 통해 유통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로 우유 자체가 사라져 버렸다. 우유를 구하기가 더 어려워지고, 암시장에서는 우유 값이 계속 폭등했다. 우유 값 폭등에 따라 빵과 치즈 가격도 올랐다. 빵과 치즈는 프랑스 사람들이 매일 먹는 주식이다.
매일 먹는 음식 값이 폭등하면 어떻게 될까? 결국 국민들은 로베스피에르를 쫓아낸다. 길로틴 처형장으로 향하는 로베스피에르를 두고 군중들은 우리에게서 빵과 우유를 빼앗아 간 자라고 비난했다. 국민들이 저렴한 가격에 우유를 살 수 있게 하려던 로베스피에르의 착한 정책이 오히려 국민들의 생활을 어렵게 만들었고 결국 본인까지 죽음으로 내몰고 말았다. 규제의 역설이 전하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다.
베네수엘라에서는 기업이 자기가 판매하는 상품의 가격을 결정할 때 원가 대비 30% 이상 마진을 올리면 안 된다. 원가에서 30% 이상 이윤을 붙여서 가격을 매기면 기업주가 구속된다. 감옥에 갈 뿐만 아니라, 국가가 사업체를 몰수해 국유화시킨다.
‘마진 30% 룰’은 지금의 마두로 정권이 들어서면서 만든 정책이다. 분명 좋은 의도로 시작했다. 상품 가격을 낮게 해서 일반 국민들이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물건을 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면서 일반 국민들을 희생해 폭리를 취하는 기업주를 막으려고 했다.
기업들이 30% 정도 이익을 챙기면 괜찮지 않을까?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기업이 생산한 모든 물건이 전부 다 팔린다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생산하는 족족 다 팔리고 거기서 30% 이익이 남았다면 굉장히 높은 수익이다. 하지만 팔리지 않는 물건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시스템에서 기업은 절대 이윤을 낼 수 없다. 자기가 생산한 모든 제품이 팔리다는 보증이 없는 한 손실만 날뿐이다. 그런데 30% 마진을 올리면 구속되고 기업이 몰수된다. 기업가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다. 더 이상 기업활동을 하면 안 된다.
상품 하나하나가 아니라 기업 전체의 이윤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생산하는 옷 중 일정 비율만 팔릴 것으로 예상해서 가격을 정했는데 히트상품이 되어 모두 팔리면 기업가는 감옥에 가야 한다.
특히 유통기한이 문제가 되는 농수산물에서 이 정책의 문제점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공산품은 당장 안 팔려도 보관할 수 있다. 하지만 농수산물은 며칠 사이에 팔리지 않으면 폐기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품은 절대 원가에 가까운 가격에 팔 수 없다. 훨씬 비싼 가격에 팔아야 전체적으로 이윤이 난다.
베네수엘라 기업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3년 정도 사이에 무려 80%의 기업체가 없어졌다. 목축업자들은 소고기를 생산해도 베네수엘라에 내놓지 않고 몰래 외국에 팔았다. 소고기가 생산이 되더라도 베네수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유다.
30% 마진 룰은 소비자가 싼 가격으로 물건을 살 수 있도록 한 규제 정책이다. 하지만 시장에서 물건 자체가 사라지면서 소비자들은 물건을 살 수가 없게 되었다. 가끔 구할 수 있는 상품은 이전보다 훨씬 더 높은 가격이 붙었다. 국민을 위한 규제가 국민의 삶을 망친 대표적 규제다.
루마니아는 공산주의 국가였다. 1990년대 공산주의가 무너져 내리기 전, 루마니아 정부는 전 국민들이 자기 집을 가지고 자기 집에서 살게 하는 정책을 시행한다. 루마니아 정부는 국민들에게 국유화한 모든 주택을 싼 가격에 판매했다. 국민들은 저렴한 가격에 집을 구할 수 있었고, 결국 전 국민의 96%가 자기 집을 소유하게 되었다. 모든 국민들이 자기 집 걱정을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국민 모두 자기 집을 소유한다면 어떻게 될까? 건축업자들이 더 이상 집을 짓지 않는다. 집을 지어도 국민 모두가 집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집을 살 사람이 없다. 자기 집 있는 사람이 새 집에서 살고 싶어서 이사를 하려고 해도 기존에 자기 집이 팔리지 않는다. 따라서 나라의 토목과 건설 사업이 멈춘다. 경제 성장도 제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보다 더 문제는 A가 다른 도시에서 직장을 구하려고 가정해보자. 직장을 구할 수 있는데 거주할 수 있는 집이 없다. 모든 사람들이 집을 갖고 있고, 모든 집이 이미 사람이 살고 있다. 빈집이 없다.
돈이 많은 사람이 집을 여러 채 사서 전세나 월세를 주면 되지 않을까? 그러나 전세나 월세를 살려고 하는 사람은 집이 없는 사람들이다. 집이 없는 사람들이 많아야 전세나 월세를 살고자 하는 사람도 많고, 집주인도 소득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루마니아에서는 모든 국민이 집을 갖고 있다. 전세나 월세를 살 사람이 없다. 자기 집 이외에 집을 더 지어서 세를 주겠다는 생각은 바보 같은 생각이다.
결국 다른 도시로 이동하려는 생각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냥 기존에 자기가 살던 도시에서 자기 집에서 살아야 한다. 학생들의 경우 진학을 하며 다른 도시로 갈 수 있다. 이때는 기숙사 생활을 한다. 기숙사를 나오면 자기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기숙사를 제외하면 외지에 살 수 있는 집이 없다.
더 큰 문제는 아이들이 커서 독립을 할 때 발생한다. 최소한 결혼을 하면 새로 집을 구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구할 수 있는 집이 없다. 새 집을 지을래도 이제 막 결혼하는 젊은이들에겐 그만한 돈이 없다.
새 집을 지을 수도 없고, 빈집도 없다. 그래서 결국 자기 부모 집에 계속 산다.
그래서 루마니아는 계속 대가족이 되어간다. 세계적으로 혼자 사는 1인 가정이 늘어나지만, 루마니아는 예외다. 결혼을 해도 독립하지 않는다. 아이가 태어나도 독립하지 않는다. 독립하고 싶어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냥 모든 식구들이 계속 그 집에서 살아야 한다.
또한 루마니아의 거의 대부분의 집들이 노후화를 겪고 있다. 보통 집을 수리하는 것은 이사 갈 때이지만 루마니아는 이사 갈 일이 없다. 따라서 노후화된 집들이 너무 많다.
루마니아의 젊은이들은 자기가 태어난 집에서 죽을 때까지 살 수밖에 없다. 명목상으로는 이동의 자유, 거주의 자유가 있지만 실제로는 없다. 모든 사람이 자기 집을 가진 사회는 변화가 이루어질 수 없는 정체된 사회다.
책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규제의 역설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세 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선의를 가지고 규제를 만들지만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별로 고려하지 않는다. 개인 입장에서는 의도가 중요하다. 착한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 가는 보통 결과보다는 의도가 무엇인가가 중요하다. 결과가 안 좋아도 의도가 좋았다면 보통 좋은 사람으로 여긴다. 하지만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 영역에서는 의도가 아니라 결과로 평가되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 하더라도 결과가 나쁘다면, 사회적 수준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없다.
규제를 만들 때는 그 결과가 어떨 것인가를 제대로 파악하고 만들어야 한다. 선의로 만드는 것, 좋은 의도로 만드는 것, 좋은 사회를 위해서 만드는 것, 꼭 필요해서 만드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 결과가 좋게 나오는지 여부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환자가 배가 아프다고 진통제를 주고, 이가 아프다고 하면 진통제를 주는 의사가 있다고 하자. 환자는 더 이상 배도 이도 아프지 않다. 이 의사가 좋은 의사인가? 이 사람을 우리는 의사로 인정하지 않는다. 배가 아프다고 하면 왜 배가 아픈지 진단하고 이유를 치유해야 한다. 아프다고 하는 증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아픈 원인을 찾아서 없애주어야 한다.
증상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원인을 치유해야 한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런데 이 상식이 정부나 지자체의 규제에서는 잘 들어맞지 않는다. 많은 규제들이 근본적 원인을 치유하기보다는 증상을 치유하고자 한다. 우버, 타다 때문에 택시기사가 힘들다고 하면 택시기사를 돕는 규제가 나온다. 임차인이 월세가 높아 힘들다고 하면, 월세 상승을 규제하는 법을 만든다. 1회 용품이 많다고 하면 바로 1회 용품을 규제한다. 증상에 바로바로 대처하는 규제는 진통제와 같다. 결국 규제의 역설을 불러일으킨다.
규제도 인간이 하는 일이다. 처음부터 아무 문제없이 굴러갈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 시도를 해보고 문제가 생기면 바로 그만두고 다른 방안을 찾아보면 된다. 그런데 규제에는 결과가 어떻든 끝까지 가겠다는 식의 고집이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규제를 만든 사람과 집단이 자기 자존심과 정체성을 걸고 그 규제를 고수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규제를 했는데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심화되었으면, 그다음에는 규제를 하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현실은 같은 방식의 규제를 더 강화한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는 식의 규제가 더 만들어진다.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규제는 증가하지만, 이런 식의 규제에서는 실제 세상이 나아질 수가 없다.
'오기의 규제'라는 말이 뇌리에 꽂힌다. 좋은 규제들, 의도에 맞게 결과가 시행된 규제들도 있다. 하지만 규제의 역설이 일어나는 것이 몇 개만 있다면 그 긍정적 의미와 효과는 퇴색된다.
진통제로 당장 아픈 곳의 고통을 멈출 수 있다. 하지만 원인에 맞는 처방을 하지 않은 치료는 결국 곪아 터지게 되어있다.
규제를 파악할 때는 선한 의도보다는 그 결과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