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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insing May 23. 2018

냉면 집에서 만난 주판

#18. 내 안에 살아 있는 사라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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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을 다녀오면 꼭 해야 하는 것이 출장 보고인데 별 다른 문제 없이 아주 부드럽게 출장 보고를 마친다. 사실 출장 보고는 항상 쉽지 않은 것이 보통인데 이번에는 어찌어찌 잘 지나간 듯하다.


보고를 마치니 배가 고팠고, 이 불타는 여름 뭔가 시원한 것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건 인지상정인지라 냉면을 먹으러 남대문 시장으로 갔다.

남대문 '부원면옥'의 주인장께서 주판으로 뭔가를 계산하고 계시다.


▼ 맛있는 냉면을 먹고 있노라니 이 집 주인장이 계산을 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사실 타닥타닥 주판을 튕기는 소리는 참 듣기가 좋아서 뭔가 일이 제대로 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던가?


나는 그래서 주판 튕기는 소리가 참 좋다.


사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주산 학원이라는 것이 있어서 (보통 주산 부기 학원이었다.) 몇몇 친구들은 거의 천재적인 계산 능력을 자랑하기도 했었다.


국민학교 산수 영역의 문제는 거의 안 보고도 풀 정도로 영민한 아이들 말이다. ^^


나는 영 반대여서 꼭 끝자리에서 숫자를 틀려 문제를 틀리곤 했었다. 


그래서 주산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이 참 신기하기도 했다.


▼ 사실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는 사립이어서 가끔 웅변대회와 함께 암산왕 초청행사 같은 것을 했었다.


암산왕 초청행사란 누군가 기가 막히게 암산을 잘 하는 누군가가 학교 강당에 와서는 무지막지하게 생긴 계산식을 암산으로 푸는 그런 행사였다.


앞에는 16자리 숫자가 10개 정도가 늘어져 있고, 속임수를 막기 위해 그 자리에서 가감승제 부호를 붙이면 암산왕이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눠서 그 자리에서 바로 답을 내는 그런 즉석 퀴즈쇼와 같은 행사였다.


대개 암산왕들은 이런 문제를 풀 때 마치 매트릭스의 네오가 가상공간을 활용하듯 마치 손 앞에 주판이 있는 양 가상의 주판을 튕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1981년에서 82년까지 절찬리에 방영된 어린이 인형극 '짱구탐정'에도 이런 장면이 등장한다.


짱구라는 아이가 거의 아시아 레벨의 천재여서 일본의 한 천재소녀와 암산 실력을 겨루는 장면이다.


※ 관계 자료는 KBS에 부탁을 해야 할 정도로 인터넷엔 짱구탐정과 관련된 자료가 거의 없다. 

혹 누군가는 기억하려나? 이 장면


인기 인형극에도 주산을 하는 소년이 등장할 정도로 주산이 유명했던 시절이었나 보다.


1981년~82년 방영 KBS 연속 인형극 '짱구 탐정'


▼ 일본에서도 70년대 중반까지 주산은 은행원의 필수 기술이었다고 한다. 


일본에도 우리나라만큼의 주산학원이 있었다. 


사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우리나라가 나은 것이 우리는 도구를 가리켜 주판, 주판을 활용한 계산 방법을 주산으로 구분해서 사용하지만 일본은 주판을 소로방이라고 하는데 주산학원을 소로방 주쿠라고 한다. 


직역하자면 주판 학원인데... ㅡㅡ


세상에 주판 학원은 없는 거다. 주산 학원은 있더라도...


※ 중국에서는 주판을 산판 (算板)이라고 하는데 이를 중국어 발음대로 읽으면 쑤안판이다. 

이 쑤안판이라는 발음이 소로방이라고 변했단다. ^^


▼ 지금으로부터 딱 30년 전 이맘때 일본에서 개봉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에도 도라 일가의 도라가 라퓨타로 가는 항로를 계산하는데 주판을 사용한다.


미야자키 하야오 버전의 주판은 아주 귀엽고 둥글둥글하다.

항로를 계산하고 있는 도라와 시타 (출처: 스튜디오 지브리)


▼ 냉면을 먹으면서 주판을 보면서 우리 주위에서 조금씩 모습을 잃어가는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항상 말하는 것이지만 어떤 것이건 우리의 마음속에 살아남아 있다면 그것은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이다.


주판은 그렇게 내 마음속에, 그리고 기억 속에 아직 살아남아 있다. ^^


By 켄 in 세종대로 (2016년 8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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