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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insing May 27. 2018

페르시아 고전을 따라 떠난 길

#16. 한 여름에 떠난 이란 출장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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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태양이 작렬하는
그곳의 햇빛

바다 같은 그곳에 
부는 바람

그 바람 속에 
자란 연꽃

햇빛
바람
연꽃

아... 그리고 사랑
용자의 사랑

인샬라!
이를 거느리는 자
그 많은 어려움
이겨낼지니...

- 페르시아 고전 -

※ 인샬라: 신의 뜻 (의도)대로


▼ 페르시아 고전의 한 구절을 따라 작은 여행을 계획한다. 


사실 카스피해를 보고야 말겠다는 마음이 가장 컸다.


그러나 고전을 따라 테헤란에서 기암괴석의 도시 나자라바드를 지나 밀밭이 계속되는 카즈빈을 지나 세피드루드 강변의 바람 계곡 만지르를 지나 카스피해가 보이는 반달 안잘리로 간다. 


과연 고전에 나온 그대로 카스피해의 바람과 연꽃을 만날 수 있을까 수많은 생각이 내 머리를 스친다.



▼ 테헤란을 떠나니 돌산이 앞을 가로막는다. 이곳부터 약 150㎞는 돌산과 기암괴석의 연속이다. 

뜨거운 햇빛 아래 나자라바드를 지나 카즈빈까지 먼 길을 걸었을 용자의 모습을 생각해 봤다. 

그 많은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그는 걷고 또 걸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가 걸었을 이 길은 평지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 지역은 지형이 높아 하루에 20㎞도 채 걷지 못했을 그런 지역이다. 

그가 직면했을 어려움이 느껴지는 듯했다. 


카즈빈에서 세피드루드 강을 만나는 바람계곡 만지르까지 약 80㎞는 밀밭이 계속된다. 

이란의 북부 밀경작지가 시작된다. 

카즈빈, 이란의 북부 밀경작지


▼ 테헤란에서 카즈빈을 지나 약 250㎞를 달리면 세피드루드라는 강이 나온다.

페르시아어로 세피드루드란 '하얀 강'이라는 뜻이다.

물의 생명력은 대단한 것이어서 이 곳부터는 더 이상 기암괴석이 나오지 않는다. 


이곳부터는 우리의 산과 같은 산이 눈앞에 펼쳐진다. 

세피드루드 강이 모여 큰 물가를 만든 곳에 바람의 도시, 만질 (Manjil) 있다. 


이곳은 바람이 많고, 햇빛이 강해 지중해와 같은 기후를 가지고 있어 만질과 루드바라는 곳은 유명한 올리브, 호두의 생산지이기도 하다.

이곳에 다다랐을 용자는 아마도 앞으로 맞이할 바람과는 조금 다른 바람 계곡 만질의 바람을 맞으며 근처 도시에서 재배된 윤기 있는 작물들을 먹으며 한숨을 돌렸을지도 모른다.  

윈드 터빈이 보이는 곳은 'Manjil and Rudbar Wind Farm'이다
만질 (Manjil)라는 도시에서 보이는 세피드루드 댐


▼ 바람의 계곡 만질을 지나 약 140㎞를 달리면 반달 안잘리라는 도시가 나온다. 


반달은 페르시아어로 항구라는 뜻이니 이곳은 안잘리 항인 셈이다. 

이렇게 300여 ㎞를 달려 카스피해에 도착한다. 


페르시아 고전에서 말하듯 용자가 바다 같은 그곳에서 바람을 만나는 곳이다. 


카스피해가 바다냐 호수냐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고 하나 이곳을 호수라고 하면 세상에서 가장 큰 호수다. 


이곳의 물맛은 짜지도 민물 같지도 않은 그런 어중간한 맛이었다.


말로만 듣던 카스피해를 보고, 그곳의 바람을 맞으며, 그곳 물의 맛을 본다.
이런 만남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다시 페르시아 고전에서 말한 그 연꽃을 찾으러 나선다. 
이곳 반달 안잘리에는 안잘리 늪지대 (Anzali Lagoon)라는 곳이 있어서 이곳은 카스피해와는 별도로 분리된 민물 지대가 있다.

  


광활한 늪지대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고, 매우 당연한 일이지만 이곳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예쁘고 예쁜 새들이 마치 이곳은 태초부터 자신들의 집이라고 말하듯 살고 있었다.

아주 좋은 기분이다.  



▼ 그리고는 세상의 모든 연꽃을 모아놓은 듯한 연꽃 밭이 등장한다. 

연꽃은 거의 수평선이 끝나는 곳까지 펼쳐 있다.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모터를 끈 보트에는 적막만이 흐르고, 그 적막은 그저 기분 좋은 적막일 뿐이다. 

연꽃 밭 위를 이름 모를 예쁜 새가 날아간다. 
이것이 페르시아 고전에서 말하던 그 카스피해의 바람을 받은 연꽃이구나…



그렇게 카스피해로의 긴 여정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그 긴 여정을 지나 작렬하는 햇빛, 카스피해의 바람, 그 바람 속에 자란 연꽃, 그리고 사랑을 지닌 용자가 어려움을 이겨낼 것이라는 페르시아 고전을 생각해 본다.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반달 안잘리에서 테헤란으로 오는 긴 여정을 되돌아왔지만 그 용자가 걸었을 그 길을 걸으며 나도 그 용자가 얻은 것을 얻은 것 같아 좋았다. 

지금에서야 고백을 하자면 앞에서 말한 페르시아 고전은 사실 내가 만들어 낸 작은 이야기일 뿐이다. 

도대체 매일 오후 7-8시까지 미팅을 하고, 숙소로 돌아와서는 12시가 넘어서까지 보고서를 작성하는 출장 일정 속에 어떻게 여행 계획 따위를 세울 수 있다는 말인가?


난 그저 같이 출장 온 분들과 항구를 조사하기 위해 카스피해에 갔을 뿐이었지만 여행을 하면서 보고 느낀 것들이 너무너무 멋져서 작은 고전을 하나 만들었고, 내가 지난 온 여로를 연결해서 하나로 묶은 것이다. 

물론 여행에서 만난 도시나 사물들은 당연히 정말로 내가 여행 중에 만난 것들이다.

비록 내 마음대로 만들어낸 고전이지만 그간 모르고 지냈던 것들을 알게 되었고,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어서 이번 여행은 나에게 소중한 여행이 됐다.

뭐 어떤가? 살다 보면 페르시아 고전 하나쯤 만들 수 있는 것 아닌가?

By 켄 in 테헤란 ('16년 8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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