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맥베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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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참 궁금한 것이 많아진다.
특히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는 아주 심각하게 궁금하다.
내가 지금과 같이 살 것인지? 아니면 뭔가 특별하거나 좋은 일이 생겨서 급격하게 자신의 인생이 바뀔지 항상 궁금하다.
그래서 내가 아는 많은 어른들은 자신의 미래를 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
점집에 간다… ㅡㅡ"
▼ 내가 아는 한 친척분의 아드님은 의사였다.
생기기도 잘 생겨서 당시 뉴스 앵커우먼과 선을 보고도 심드렁하게 생각할 정도로 멋진 분이었다.
그 친척분도 점집을 좋아하셔서 이곳저곳 유명한 곳을 찾아다니셨다는데 하루는 어떤 점집에 가서 의외의 일을 당하셨다고 한다.
(대화는 경상도 사투리로 진행됐다.)
친척분: 우리 아~ 어떻습니꺼?
점쟁이: (골똘히 생각을 하면서) 이 아~가 살았습니꺼?
친척분: 살았냐니요? 의산데요?
점쟁이: 거 참 이상하네... 야~는 살아 있는 아~가 아닙니데이...
친척분: 이 미~친 할배가 노망이 났나? 지금 머라카노??
친척분은 점쟁이와 고래고래 싸움을 하시고 집으로 돌아오셨는데 얼마 후 그 잘 생겼던 의사 아드님은 술에 만취한 상태에 운전을 하시다가 교각을 들이받고는 돌아가셨다.
▼ '응답하라 1988' 11화를 보니 거기에는 세 가지 예언이 나온다.
아들 정봉이의 후기 대학 합격을 바라는 엄마에게는 아들에게 대운이 찾아온다고 했고, 공부를 안 하는 덕선이는 이름이 좋지 않아 이름을 바꿔야 대학에 간다고 했다.
과부로 선우와 진주를 데리고 사는 엄마에게는 곧 아들이 하나 더 생길 거라는 예언을 했다.
드라마를 보면서 참 인간이란 항상 다를 바 없이 뭔가를 궁금해하고, 자신이 궁지에 몰리면 몰릴수록 미래를 볼 수 있다고 자부하는 능력자들을 만나려 한다.
▼ 얼마 전에 '맥베스 (마이클 패스벤더, 마리옹 꼬띠아르 주연, '15년작)'라는 영화를 봤다.
맥베스의 무대는 11세기 스코틀랜드인데 전쟁이 승리한 맥베스에게 안갯속에서 나타난 세 마녀는 그가 곧 코더의 영주가 될 것이고, 스코틀랜드의 왕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맥베스는 흥분하고, 맥베스의 부인 또한 그를 부추겨 당시 왕인 던컨을 살해하고, 자신이 왕이 된다.
그렇지만 죄책감과 불안감에 불면증에 시달리다가 결국은 던컨 왕의 측근 맥더프에게 살해당하게 된다는 알만한 사람은 아는 뻔한 내용이다.
그런데 11세기 스코틀랜드 건 20세기 서울이건 상관없이 예언을 하는 능력자들은 뭔가 희미한 빠져나갈 여지를 남긴다는 것이다.
맥베스에서는 버넘의 숲이 움직이지 않는 한, 또 여자의 배에서 태어난 사람에는 맥베스가 결코 패하지 않는다고 했다.
20세기 서울에서는 정봉이에게는 대운! 이 찾아온다 했고, 덕선이라는 이름이 좋지 않으니 이름을 수연이라고 불러야 하고, 덕선이라는 이름을 부르면 대학의 레벨이 낮아진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이미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나이가 지난 선우 엄마 선영에게는 아들이 생긴다고 말한다.
맥베스에서 세마녀는 희미한 빠져나갈 여지를 남겼는데 던컨 왕의 아들 말캄은 버넘 숲의 나뭇가지를 들고 맥베스를 치러 왔다.
맥더프도 여자에게서 태어났지만 제왕절개라는 방법 세상에 나온 사람으로 그가 맥베스를 친다.
정봉이에게 올 대운은 후기 대학에 들어가는 대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 친구가 생기는 대운이었다. 덕선이가 어찌 될지는 아직 모른다.
이미 나이가 찬 선영은 자신의 집에 저녁을 먹으러 들어오는 봉황당 사장의 아들 택이를 보며 예언자의 말을 되새긴다.
▼ 점쟁이와 고래고래 싸움을 하신 친척분은 아드님이 돌아가시고 망연자실했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그 점쟁이를 찾아갔다고 한다.
그러곤 물으셨단다.
친척분: 우리 아~ 어떻습니꺼?
점쟁이: (골똘히 생각을 하면서) 이 아~가 살았습니꺼?
친척분: ……
세상에는 능력자가 있기는 또 있는 모양이다.
결국 점쟁이에게 사정 설명을 하니 점쟁이는 이런 경우 영혼결혼식을 시키는 것이 좋다고 말했고, 친척분은 영혼결혼식으로 아드님의 영혼을 달랬다고 한다.
그런 거 보면 우리의 미래, 우리의 운명이란 것은 결코 섣불리 알 수도, 알 필요도 없는 것 아닐까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보다는 훨씬 나은 능력을 지닌 능력자들이 들여본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 미래의 일부이거나 희미한 빠져나갈 여지를 내포한 우리의 미래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혹여 진정한 능력자를 만난다고 하더라도 내 친척분처럼 아마도 그 능력자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싸우기가 쉽지 않을까 싶다.
(선우 엄마 선영이처럼 금방 자신이 낳게 될 (갖게 될) 아들의 모습을 육안으로 확인하는 운이 좋은 사람도 있겠지만 말이다.)
▼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괜연한 호기심을 발휘하여 능력자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할 일을 해놓고서는 느긋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마치 카메라가 자신을 촬영하는지 상관하지 않고, 열심히 춤을 추는 어느 야구장의 관객과 같이 말이다.
어차피 알 수 없는 걸 알려고 악다구니를 써봐야 피곤할 따름이다.
https://youtu.be/1oSR8Gqn4qU
By 켄 in 연희동 ('16년 1월 6일 수요일)
*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영화 '맥베스' (제작사 See-Saw Films 외 5개사, 배급사 판씨네마(주)) 및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제작/배급사 CJ E&M) 에 있으며 이미지의 출처는 네이버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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