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서울에 산다는 것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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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갑작스런 오한의 엄습으로 토요일 하루 종일 집에 누워 있었다.
자다 깨다를 반복했지만 약기운으로 그냥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가만히 계산을 해보니 목요일 밤 라이딩이 아주 치명적인듯 했다.
피곤한 상태에 추위를 느꼈으니 오한이 엄습할만도 했다.
▼ 몸상태를 정리하고 나니 일요일 해가 중천에 떠서 체온만 유지된다면 가볍게 라이딩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자전거를 차에 싣고 잠실대교로 나간다.
눈 앞엔 밤엔 볼 수 없었던 한강의 모습이 있었고 그렇다면 오늘은 밤엔 볼 수 없는 것들을 보자는 생각이 들면서 일전에 영화 '괴물'의 무대였던 원효대교를 관찰하자는 생각을 했던 것이 떠올랐다.
잠실대교를 떠나 반포를 경유해서 원효대교를 보고 마포대교를 건너 서울숲과 뚝섬을 지나 다시 잠실철교를 건너 잠실로 돌아오는 코스를 염두에 두고 달린다.
▼ 동호대교 부근에서 만난 제토베이터 라이더는 여름이 가는 것을 아쉬워 하는듯 열심히 남은 더위 속에서 제토베이터를 붙잡고 있었고, 한낮의 한남대교와 으악새 풀잎 속의 반포대교는 자연의 곡선들과 함께 구조물의 직선을 뽐내고 있었다.
자연은 곡선을 만들고 인간은 직선을 만든다는 말을 들으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직선만큼 필연적인 것이 있을까?하는 생각을 했었다. 우연히 만들어진 직선이 과연 있겠느냐는 말이다.
▼ 반포대교를 지나 자전거는 원효대교 남단에 이르렀다.
영화 '괴물 ('06년작)'의 마지막 장면을 찍은 곳이 바로 이곳인데 지금은 원효대교의 터줏대감과 같은 한화 그룹이 불꽃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시와 공원을 조성해 놓았다.
그러고 보니 벌써 9년전 영화이니 강산이 변할만큼의 시간이 흐른 셈이고, 이런 공원 하나쯤 생겨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시간이 흐른 셈이기도 하다.
▼ 마포대교를 건너며 다시 원효대교를 관찰한다.
그래.. 원효대교는 63빌딩과 함께 찍히는 다리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단어를 자연스레 떠오르게 하는 그런 다리다.
마포대교를 내려와 다시 원효대교 북단으로 간다.
이리 뜯어보고 저리 뜯어봐도 원효대교는 '괴물'이 서식한다고 하기에 너무나도 좋은 요소만을 가진 다리였다.
우선 강변북로가 다리 아래로 지나가고 있어 원효대교 북단은 사실상 강변북로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저렇게 큰 하수구라니.. 이 정도면 '괴물' 서식지로는 딱이다.
▼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원효대교 북단에 있는 하수구가 너무나도 열려 있는 공간이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실제로 '괴물'이 그곳에 서식한다는 것을 정부가 알 수 있었다면 너무나도 파괴하기 쉬운 '열린 공간'이라는 것이다.
영화는 영화일뿐 따지지 말아야 하나? ^^
꼭 굳이 따지자면 그렇다는 말이고 영화의 설정으로는 누구도 쉽게 해낼 수 없는 설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원효대교를 뒤로 동쪽으로 이동하여 한강철교에서 다시 원효대교를 바라본다.
이젠 영화 '괴물'의 원효대교가 아닌 '한강의 기적'의 원효대교가 다시 얼굴을 내민다. 따뜻한 풍경이다.
한강을 따라 다시 달린다. 반포대교 북단을 지나고, 서울숲을 지나 뚝섬을 지난다.
그러고는 다시 잠실철교로 향한다.
두시간이 채 안되는 주행시간이었지만 낮에만 볼 수 있는 한강의 이모저모와 한강 다리들의 민낯을 볼 수 있었던 의미있는 라이딩이었다.
▼ 어느 다리인들 사연 하나 없겠는가? 그렇게 오늘은 원효대교를 살펴보았다.
참고로 원효대교 남단에는 자동차 수리의 장인이 한 분 계신단다. 그분은 엄청나게 싼 비용으로..
이렇게 한강 위의 다리와 얽혀있는 우리는 모르는 이야기들이 수도 없다.
서울에 사는 한..
한강을 밥먹듯 건너 다니는 한..
그런 이야기들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게 내 생각이다.
By 켄 in 한강 ('15년 10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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