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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insing May 27. 2018

In Chabahar …

#23. 이란 남동부로 떠난 출장 속의 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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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PN을 설치하고 유튜브로 JTBC를 본다. 
참담하고 암담하고 짜증 나는 뉴스만이 가득한 유튜브를 보면서 
짜증을 내며 끈다. 보면 볼수록 슬슬 같은 얘기만이 계속 반복된다.

게다가 1박 2일 여정으로 온 출장 속의 출장은 비행기 문제로 2박 3일로 일정이 늘어났다.

'아.. 그래.. 이럴 때 페르시아 시나 한번 읽어 봐야겠다'라는 생각을 한다.


“Come to the orchard in Spring.
There is light and wine, and sweethearts
in the pomegranate flowers.

If you do not come, these do not matter.
If you do come, these do not matter.”

― Jalaluddin Rumi

봄이 오면 과수원으로 놀러 오세요.
이곳에는 촛불과 술과 꽃이 있답니다.

당신이 안 오신다면 이것들이 다 무슨 소용인가요?
당신이 오신다면 이것들이 또 다 무슨 소용인가요?

― 잘라루딘 루미


▼ 약간의 의역을 가미한 오래된 페르시아 시의 번역이다. 
페르시아의 시성 (詩聖)으로 불리는 루미의 아름다운 시다. 

봄의 과수원에 그가 오지 않는다면 준비해 둔 촛불과 꽃이 다 무슨 소용이겠냐면서 아쉬워하지만 반대로 만약 그가 온다면 그 모든 것이 또 다 무슨 소용이겠냐면서 상대방을 칭송하는 멋진 시다.


▼ 아무도 아직 손대지 않은 사업을 찾기 위해서는 약간 오지로 가야 하는 것이 사업의 정석이기는 하다. 

그런 이유로 이란 남서부의 한 미개척 도시로 향한다. 

하루에 테헤란에서 이곳으로 가는 비행기는 단 1편만 있고, 얼핏 보기에는 메말라있는 도시다. 


이제는 이란 에어에도 여성 승무원이 탑승하기에 이르렀다. 

10여 년 전에는 스투어드만 가득한 비행기였는데 이젠 더 이상 그렇지 않다. 


도시에 도착해서 이제 막 조성되기 시작하는 공장 부지를 방문하고, 항만 관계자들을 만난다. 

어딜 가나 미개척 도시의 개발 담당자는 같은 얘기를 반복한다. 


"이곳에 오시는 것은 대박의 지름길입니다.
주당 50달러일 때 애플사의 주식을 사는 것과도 같죠."


그렇지만 그들의 얘기가 어느 정도는 허풍이라는 사실을 닳고 닳은 사람들은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나도 연신 "녜녜, 그렇죠. 그렇죠."하며 그들의 기분을 맞춰 주지만 나에게 더 중요한 것은 상부에 보고할 엑셀에 표시되는 숫자다. 그 이외는 모두 그저 일상적인 대화일 뿐이다. ㅠ


▼ 이곳은 파키스탄과의 접경이어서 파키스탄의 전통 의상을 입은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이들은 파키스탄이나 타지키스탄, 중국 등지에 살면서 페르시아어로 소통하는 발루치족들이다. 

그들 중 파키스탄에 살면서 국경을 넘어 이란으로 넘어온 사람들인데 그들은 파키스탄의 전통의상을 입고 있으며 심성이 매우 착하다. 

오랜 시간 동안 쿠르드족들과 같이 나라가 없이 파키스탄,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이란, 중국 등지를 전전하면서 생활한다고 한다. 

그들은 정말 어쩌다가 보는 동양인인 나를 보고 묻는다.

 

"치니? (중국인인가?)"
"나~ 코레이~ (아닙니다. 한국인입니다.)"
"아~~ 코레이!!! 어쩌구 저쩌구.. (아, 한국인이구나.. 한국은 말이야 어쩌구 저쩌구)"


난 그저 빙긋 웃으면서 땡큐라고 말하면서 사진 한 장 찍어도 되느냐고 하니 세명의 발루치인은 쪼르륵 옆으로 나란히 선다. 


그들은 연신 웃으면서 한국의 좋은 점을 늘어놓는다. 삼성 폰을 쓴다는 둥 LG TV를 본다는 것이 대체적인 대화의 내용이다.


▼ 일하러 다니면서 잠깐 동안 구경하는 것이 전부이지만 이곳은 인도양의 저편을 내다볼 수 있는 아름다운 해변이 있는 곳이다. 

한때 꽤나 놀아본 경험이 좀 있는 이곳 사람들은 바닷가 근처에 작은 집을 만드는데도 매우 좋은 센스를 가지고 있다. 꽤나 있어 보이는 집이다. 


낮에 본 바다 위의 집을 보러 밤에 잠시 나와 산책을 한다. 이어폰에서는 We just don't care라는 곡이 흐른다.

Let's go to the park. I wanna kiss you underneath the stars...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을 거 (We just don't care)라면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의 목소리를 들으며 인도양에서 부는 밤바람을 맞는다. 

상쾌한 인도양의 바람이 내 안에 있는 상념을 모두 걷어 내는 듯하다. 

좋은 기분이다.


비록 1박 2일의 여정을 마친 시점에 테헤란으로 가는 단 1편의 비행기가 갑자기 없어져서 하는 수 없이 2박 3일의 일정으로 변경이 됐고, 먹을 것이라고는 양고기 케밥과 새우튀김 밖에 없는 이곳에서 고생고생을 하다가 테헤란으로 가서는 라면에 밥을 먹고서야 휴우... 한숨을 쉬긴 했어도...

따뜻하고 선선한 인도양의 바람을 즐기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현지에서의 진정한 고생을 잠시 잊어 본다. 

By 켄 in 인도양이 보이는 남쪽 마을 ('16년 11월 3일)

https://youtu.be/P13vAUj7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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