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eninsing Jul 12. 2017

테헤란 북동부로 떠난 출장 3부

#26. 그리고… November rain

[이전 글]




"So if you want to love me
then darlin' don't refrain
Or I'll just end up walkin'
In the cold November rain"

by Guns 'N Roses


어젯밤부터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 비가 아침에는 본격적이 되려나 보다. 


와서 진행하던 논의가 잘 진행되서인지 다시 북부로 이동해서 현장에 계신 분들과 논의를 해야 할 일이 생겨 새벽같이 짐을 준비해서 길을 나선다. 

사실 북부 카스피해 연안의 도시에 있는 생산거점을 방문하는 건데 차로만 5시간은 걸리는 거리다. 우선 가서 현장 상황을 보고, 시간이 남으면 잠시 근처를 둘러보자는 생각으로 나선다. 


▼ 여기서 말하는 비란 우리가 여름 때 보는 꽤나 강하게 1시간 이상 오는 비를 의미한다. 

어디선가 이란 북부의 평균 강우량이 연간 150-200mm이라는 내용이 기억난다. 

그래서 그 많은 작물들도 재배를 하는 것일 게다. 

한참을 달려 날이 밝아 오자 당연히 배가 고파 왔다. 
유명한 한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 아침을 먹는다. 

이 휴게소의 오너는 미국에서 공부를 한 매우 영향력 있는 비즈니스맨이다. 

그래서인지 이 휴게소에는 Egg Station (에그 스테이션)도 있다. 

사실 호텔에도 에그 스테이션이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은데 말이다.
 


아침에 그렇게나 많이 내리던 비는 잠시 그치고, 맑은 하늘이 앞에 펼쳐진다. 

아침에 비가 오는데 라슈트라는 곳에 가면 비가 더 올 것이라는 드라이버에게 라슈트에 가면 날씨가 맑아질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었는데 드라이버를 쿡 찌르며 내가 뭐라고 했느냐면서 한바탕 웃는다. 

하늘에는 길게 연기가 올라가는 듯한 구름이 떠 있다. 
아침을 먹고 출발을 하며 다시 그 구름을 보니 바람에 흩날려 곧바로 오르던 연기 같은 구름이 서서히 옆으로 눕는다. 


▼ 이쪽 지방을 잘 아는 드라이버와 같이 왔기 때문에 금방 지난번에 왔던 바람의 마을 만지르에 도착했다. 가을이 되어 루드바 사피드강의 물은 줄었지만 여전히 바람의 마을에는 많은 바람이 불고 있었다. 

이곳에는 대규모 토목공사가 진행되고 있어서 가끔 도로가 통제된다. 
회색 후드티에 검은색 점퍼를 입은 우리의 드라이버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들의 논의에 끼어들어서 상황을 파악한다. 

우리는 만지르에서 부는 카스피해로부터의 바람을 맞으며 믹스 커피를 한잔 한다. 

가을을 맞이한 이곳 만지르도 슬슬 산에 단풍이 들기 시작한다. 


▼ 먼 길을 달려 우리가 방문해야 할 공장에 도착하여 전체 공장의 프로젝트 매니저와의 면담을 기다린다. 

키가 작은 60대 노인께서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설마 이란 북부에서 회색 눈 색깔을 가진 이탈리아인을 만나리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 그는 내 앞에 서 있었다. 

V 씨는 밀라노 출신으로 이탈리아에서 같은 산업에 20여 년 종사하다가 그 후 20여 년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프로젝트 매니저를 하시는 분이었다. 

V 씨의 와이프는 밀라노에서 제약회사에서 아직도 일하고 있다고 한다. 그 두 사람의 아들은 20대로 결혼은 하지 않고 밀라노에서 빈둥거리고 있다는 것이 V 씨의 설명이었다. 

회색빛 눈의 그를 보면서 참 부럽다는 생각을 한다. 


60대인데 아직도 이렇게 활발하게 일을 하고 있다니...

그래서 그에게 물었다. 지금까지 아직도 일을 할 수 있는 비결이 무어냐고

그가 대답했다.


"미스따르 껜.. 첫 번째는 정직함이고,
두 번째는 나는 내 일을 좋아합니다."


역시 예전에 본 엠씨스퀘어 광고 카피인 "그냥 열심히 하는 거지 뭐."와 비슷한 말씀이다. 

V 씨는 이렇게 활발하게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6주에 한 번은 밀라노로 아내를 만나러 가고, 'Bahman'이라는 이란 담배를 피우는데 이 담배는 10갑에 4유로인 최저가 담배다.

그는 말한다.

"미스따르 껜.. 내 나이가 되면 담배를 피우는 것과 맛난 커피를 마시는 것은 큰 낙이오. 

나는 그냥 싼 Bahman을 피웁니다. 제일 싸고 피울만해서 피우는 거예요. 

그러나 커피는 오... 그건 이탈리아 커피여야 해요."

▼ 그와 함께 35헥타르에 달하는 공장 부지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각 공정을 실사한다. 

그의 설명에 대해 나는 반문을 하고 내 말이 맞으면 그는 이탈리아어로 'Exacto (바로 그거요)'라고 말을 하거나 'Si, si, si (맞아 맞아 맞아)'라고 맞장구를 친다. 

그러면서 이란 여인들에 대한 얘기를 한다.

이탈리아인이 어떻게 그 얘기를 빼먹을 수 있겠는가? ㅎㅎㅎ

V 씨와 공장을 두시간여 둘러보면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다. 

자신의 일을 즐겁게 하고, 정직하게 일한다면 다 될 것이라는 V 씨의 말은 사실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단순한 진리를 놓고 우리는 다시 파랑새를 찾아 나서는 여정을 나서는 우를 쉽게 범하지 않는가?

60대에도 그렇게 즐겁게 소년과 같이 일을 하는 그를 보면서 그간 딱딱하게 굳어 있던 나의 머리도 왠지 조금은 말랑해진 것 같다고 생각해 본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뜻하지 않았던 분을 뵙게 되니..
이런 게 운명인 거다.

▼ 시간은 오후 2시가 넘었고, V 씨는 점심을 먹고 가라고 하신다. 그러나 그에게 정중히 인사를 드리고는 공장을 떠난다. 

이곳까지 왔으니 당연히 반달 안잘리의 늪지 한번 더 봐야 하지 않겠는가? ^^

보트를 타러 가기 전에 우선 일행을 근처 유명 레스토랑으로 모셔 늦은 점심을 먹게 한다. 천천히 늦은 점심을 먹은 후 서둘러 늪지로 나가는 보트를 타러 나간다. 

비는 하루 종일 스프레이를 뿌리듯 조금씩 내리고 있었는데 보트를 타러 가는 길에 후두둑 후두둑 소리를 내며 빗줄기가 강해진다. 

드라이버가 말한다. 

라슈트라는 도시 이름이 '비의 마을'이라는 뜻이라 비가 오기 시작하면 꼭 온다는 거였다. 


아침의 내 엉터리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 비가 오더라도 그게 무슨 대수란 말인가?
비도 그저 자.연.일 뿐인데... ^^

선착장에서 준비해주는 우비를 입고, 보트에 몸을 싣는다.  
여전히 이곳에는 느긋하게 전통적인 낚시를 하는 어부들이 있었다. 

늪지 구석구석을 누빈다. 가을철이 돼서 이제 연꽃은 더 이상 없단다. 
대신 11월부터 3월 사이에는 여러 곳에서 철새들이 날아와 이곳은 천혜의 새둥지가 되어 버린다. 


▼ 어딘가로부터 수많은 새들이 날아와 나뭇가지 사이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가만히 보니 백 마리 아니 수백 마리는 될 것 같은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고된 하루의 일과를 정리하며 쉬고 있었다. 

탄성을 지르며 저 새를 보라고 외치니 보트를 몰던 가이드가 벌떡 일어나더니 보트에 있는 줄을 가지고 물을 철썩 내리친다. 

나뭇가지에서 쉬고 있던 새들은 놀라 퍼드득 날아오른다. 

이렇게 많은 새들이 있는 걸 보는 건 아마도 두 번째쯤 되는 일인 듯하다. 

조용한 늪지에서 소란을 피워 새들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 해는 뉘엿뉘엿 져가고 있었고, 이제 반달 안잘리 항을 뒤로하고 다시 떠나온 선착장으로 가야 할 시간이 됐다. 서둘러서 서둘러서 이곳에 왔지만 역시 이곳에는 사람을 힐링하는 힘이 어딘가 숨어 있는 듯하다. 

다시 온 것이지만 참 잘 왔다 싶다. 

항구 위를 덮은 커다란 구름을 비를 맞으며 바라본다. 

항만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항구의 불빛을 보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듯하다. 

어떤 이들은 물담배를 피우며 우리에게 손을 흔든다. 

어떤 이들은 이란 고유의 보드게임을 하고 있다. 

다들 평화롭게 오늘을 마무리하고 있다. 


이제 배는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이제 다시 숙소로 떠나야 할 시간이다. 

선착장 위에는 턱수염이 난 페르시아 (Persian with beard)인 모습을 한 구름이 떠 있다. 이번 출장 중 두 번째로 보는 사람을 닮은 구름이다.


▼ 이제 항구의 불빛은 밤을 맞이하여 점점 그 밝기가 강해진다.  

아직 하늘에서는 후둑후둑 비가 쏟아져 내리고, 그건 11월에 내리는 11월의 비 (November Rain)다.


"So never mind the darkness
We still can find a way
'Cause nothin' lasts forever
Even cold November rain"

그러니 어둠은 신경 쓰지 말아요
우린 아직 길을 찾을 수 있어요
왜냐면 영원한 건 아무것도 없죠
11월의 차가운 비도 영원하진 않아요

by Guns 'N Roses


Guns 'N Roses의 'November Rain'이란 곡을 다시 들어보면서 느끼는 건 'Nothing lasts forever (무엇도 영원하지 않다)'라는 말의 상대성이다.

'무엇도 영원하지 않다'는 말은 어떤 개념에도 모두 적용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정반대가 되는 두 개념에도 영원하지 않다는 개념은 적용된다. 

말하자면 권력을 가진 상태가 영원하지 않다면 권력을 가지지 않은 상태도 영원하지 않다는 뜻이 되는 거 아닌가? ^^

November Rain을 들으며
이 곡에서 말하는 영원함의 상대성을 생각하면서
반달 안잘리의 항구의 불빛을 보면서
11월에 내리는 11월의 비 (November Rain)를 맞는다. 

그리고는 이제는 왠지 뭔가 더 잘 알게 된 것과 같은 착각에 빠진다. 

이제 숙소로 돌아가 짐을 싸서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 속이 풀리는 뭔가를 좀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반달 안잘리 항에는 아직 11월의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By 켄 in 반달 안잘리

https://youtu.be/8SbUC-UaAxE



[다음 글]


매거진의 이전글 In Chabahar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