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우기의 베트남은 구름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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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출장을 다니면 뭔가 대단한 것을 하고 다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해외에 있는 사람들과 만나서 사업에 대한 얘기를 할 뿐이고, 그 사람들은 우리가 아는 장사치랑 별로 다를 바가 없는 현지의 장사치다.
사업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느끼한 소스가 듬뿍 발린 현지 음식이나 매우 고가의 음식을 먹는 경우도 있지만 새벽 3시부터 준비해서 출발하고, 밤 10시나 되어서 호텔에 도착하면 현지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호텔 앞의 편의점으로 가서 진열대에 있는 한국 라면을 하나 사서는 방으로 올라와 밥 한 공기만 방으로 올려달라고 부탁한다.
베트남 동으로 12,000동이라고 하니 미화 50센트, 약 600원이다.
공깃밥은 600원 ^^
라면이 있고, 공깃밥이 있으니 그다음은 설명하지 않겠다.
▼ 보통 때의 나였다면 잠을 언제 잤건 밤에 무엇을 했건 무엇을 먹었건 아침 7시면 벌떡 일어나서 현지 지사의 출근시간에 맞춰 현지 지사로 출근했을 거다.
늘 선배님들이 하시던 말씀이다. 적어도 과장 때까지는 들었던 말이니 입사하고 거의 10여 년 간 선배들에게 줄곧 듣던 그 얘기..
근데 새벽 3시부터 움직여서 밤 10시에나 호텔에 와서는 라면에 밥을 먹고 잔 나로서 아침 7시에 깨서 현지 지사로 가는 건 무리였던 모양이다.
눈을 뜨니 8시가 조금 넘었고, 현지 지사의 한 대리가 부랴부랴 출장 온 부장을 찾으며 차를 보냈으니 타고 움직이라는 문자를 보내 놓은 상태였다.
어슬렁 일어나 옷을 챙겨 입고는 아침을 먹고 1층에 내려가니 약 5분 후 차가 도착했다. 나이스 타이밍이다. ^^
사실 이번 호찌민 출장은 널럴한 출장이었어야 했는데 도착하면서 꼬이기 시작했다.
호찌민 남부 4시간 거리에 위치한 한 거래선이 나를 보러 호찌민으로 오겠다고 해놓고는 갑자기 아파서 오지 못한다는 소식을 전한 거다.
그를 만나지 못한다면 내가 이란에서 여기까지 올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오늘은 호찌민 남부 4시간 거리에 있는 그 거래선을 만나러 내.가. 움직인 것이다.
때때로 비가 오려고 하면서 구름 색깔이 검게 변하기도 하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쨍하게 맑아 온다.
▼ 강 위에 걸려 있는 큰 구름들이 멋지게 보이고, 하늘을 캔버스 삼아 붓질을 하신 조물주의 작품이 정말 근사해 보인다.
▼ 비가 오니 우의를 입은 오토바이족들이 무리를 지어 신호를 대기한다.
자연현상의 변화에 무리를 짓는 사람들을 보면 사람이란 영락없이 동물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비를 몰고 오는 더 큰 먹구름을 보면서 길을 가다 보니 거래선 앞에 도착했다.
▼ 마치 신들린 것처럼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니콜로 파가니니처럼 아주 능수능란하게 마치 이란 이외에도 중동 전역을 돌고 온 것과 같은 말투로 이란 시장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는다.
듣는 이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눈을 크게 뜨며 놀라면서 자신이 아는 얘기를 나에게 늘어놓는다.
나는 맞는 얘기라면서 그가 하는 얘기를 노트에 받아 적는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사업이 만들어진다.
벌써 이런 일을 만 21년 했고, 올해로 22년째 이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웃기기도 하고, 징그럽기도 하다.
만 21년 동안 일을 하면서 현란한 바이올린 솜씨를 뽐내거나 왕 앞에서 자신의 피아노 능력을
보여주거나 능란한 언변으로 거래선과 논의하는 것이 대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실 무엇이 대수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상대방과의 신뢰관계 속에서 차분하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면서 조금씩 사업의 모습을 만들어 나가는 자세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지만 '베니스의 사육제'를 연주하는 파가니니처럼 강렬한 열정만은 그대로 두고 싶다.
▼ 다른 나라에서는 보지 못한 330ml짜리 긴 콜라 (생각할수록 이상하게 생겼다)를 마시면서 얘기를 마친다.
이제 다시 호찌민으로 4시간을 가야 오늘을 마무리 지을 수 있다.
▼ 벌써 해가 뉘엿뉘엿 지려고 하고 있었다. 같이 출장을 간 현지 직원에게 말했다.
"아니, 그 냥반이 약속만 지켰으면 호찌민에서 점심 먹고, 짝퉁시장에 갔다 와서는
호텔에서 발마사지 받으면서 편히 쉬었을 거 아니에요?"
"그러게나 말이에요."
"우리 호찌민 도착 시간이 몇 시에요?"
"밤 9시 넘을 거예요."
그런 대화를 하면서 보기에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구름 풍경이다.
경치한테 약간은 미안해야 할 대화…
▼ 그렇게 호찌민 남부 출장을 마무리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밥 생각은 별로 나지 않아서 오늘 미팅 내용을 정리해서 보고서를 작성한다.
그리고는 이번 출장 마지막 보고서를 회사로 송부한다.
마지막 보고서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생생하고, 튼실한 내용이 담겨 있다.
그리고 마지막 보고서라고 하기에는 내가 생각해도 너무나도 잘 된 보고서다.
그렇게 보고서를 마무리하고는 송부 버튼을 누른다.
다시 혼자가 된 느낌이지만 이제 빨리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그래서 내일 일찍 일어나서 다시 내일의 일정을 시작할 테니 말이다.
그렇게 이번 출장을 마무리한다.
By 켄 sleepless in 호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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