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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insing Oct 11. 2018

One Short Day

#51. 뮤지컬 위키드와 혼자서 보낸 시카고의 크리스마스 당일

크리스마스 이브날 아침에 일어나니 온통 눈이었다. 


미국 중북부의 추위는 매우매우 혹독한 것이었다. 


이렇게 눈이 오고, 바다와 같이 생긴 호수에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이곳은 온통 다 얼어붙는다는 것이었다. 


결국 주말 이후에는 영하 17-18도를 일주일 동안 유지할 예정이라는 것이었고, 내가 빌린 차는 그냥 꽁꽁 얼어붙은 채로 도망갈 기회만을 보는 남편과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 벌써 8년 전, 당시 가장 유명했던 뮤지컬을 보자고 생각을 했었다. 그날은 런던의 피카딜리에서는 약간 떨어진 Apollo Victoria 라는 극장에서 이 뮤지컬을 봤다. 뮤지컬에 반해서 CD를 사서는 백번도 넘게 들었던 기억이 난다. 


2009년 11월말의 일이었으니 징그럽게도 8년 전의 일이다. 지금보다 훨씬 쌩쌩하던 때로 기억한다. ^^

▼ 물론 그 이후에도 미국 출장이 있을 때마다 뮤지컬을 볼 기회가 있었고, 위키드는 그때마다 고려의 대상이었지만 이번에는 특별히 시카고에 위키드가 와 있었다. 


사실 미국 사람들도 뉴욕에 살지 않으면 쉽게 뮤지컬을 볼 수 있는 건 아닌데 시카고는 그나마 멋진 공연 문화가 있는듯 했고, 우연히 시카고에 와 있다고 해서 주저 없이 표를 산다.

▼ 시카고에서 뮤지컬 위키드를 공연하고 있는 극장은 Oriental Theatre인데 우리 말로 하면 동양극장이 되어 버린다. ^^


그런데 극장 안의 여러가지 장식들을 보면 동양극장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점이 있는 극장이었다.

▼ 오늘은 시카고 동양극장의 특별 링크에 설치된 에머럴드 시티를 보게 됐다. 

▼ 그간 너무나도 좋은 넘버들을 들으면서 즐겼던 뮤지컬 위키드지만 사실 뮤지컬 위키드는 멋진 곡들만큼이나 철학적인 내용들이 담긴 뮤지컬이다.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성선, 성악설을 포함해서 보이는 것이 모든 것인 사람들과 내면이 중요한 사람들의 차이, 그리고 겉으로 뭔가를 이룬 사람들과 속으로 뭔가를 이룬 사람들의 극명한 대조를 보이는 극이다. 


사실 극중에 나오는 불행히도 초록색 피부를 가진 엘파바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혐오의 대상이 되지만 능력, 실익, 사랑을 모두 차지하는 것은 그 혐오의 대상인 엘파바다.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글린다라는 캐릭터는 누구나가 아름답고 사랑스런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녀는 능력도 실익도 사랑도 차지하지 못하고 그저 얼굴마담이나 하는 캐릭터다. 


우리의 인생은 뮤지컬이 그리는 것처럼 극명하게 둘을 나누지는 못하겠지만 살다 보면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렇지 않은가? 


겉으로는 번지르르 하지만 실속이 없는 사람도 있고, 겉으로는 굉장히 그저 그래 보이지만 실속이 있는 사람... 


그저 우리가 입밖으로 말하지 못할뿐.. 속으로는 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가? 


뮤지컬 위키드는 그런 대조적인 인물들이 어떻게 조화롭게 세상을 살아가느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 정말 어느 한곡 버릴 수 없을 정도로 좋은 곡만으로 가득한 뮤지컬 위키드의 CD이지만 그 중에도 엘파바와 글린다가 에머럴드 시티에 갔을 때 부르는 'One Short Day'나 이제는 가수라면 꼭 한번은 불러야 그 능력을 인정하는 'Defying Gravity'도 참으로 좋은 곡이다. 


https://youtu.be/O8Wzr-yJ3A4

▼ 그렇게 크리스마스 이브는 지나갔다. 


차창밖에는 아직도 부슬부슬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하루밤이 지나고.. ^^


▼ 크리스마스 당일의 미국은 거의 모든 가게가 다 문을 닫은 분위기였다. 심지어는 동네 맥도날드 중에도 쉬는 곳이 있었다. 


여기 상황이 그러하니 저항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빨리 깨달았다. 


그래서 아침 일찍 그간 출장 중에 해결하지 못했던 빨래를 해결할 요량으로 빨래방을 찾았다. 


그런데 놀라웠던 것은 세탁하는데 3.25달러를 내면 드라이어는 10분당 25센트만 내면 된다는 것 그래서 결국 약 4달러면 그 많은 빨래도 문제없이 한다는 계산이었다. 


어이!!! 싱가포르의 빨래방은 듣고 있나??? 


미국 시카고 지역의 빨래방은 4달러면 빨래 전부와 드라이까지 해결이 된다네!!!


싱가포르에서는 거의 같은 작업을 하는데 8달러를 낸 기억이 나서... ^^

▼ 대부분의 가게가 닫혀 있는 크리스마스 당일이었지만 눈 온 후라서 그런지 하늘은 높고 푸르렀고, 눈이 온 풍경은 별 생각없이 천진하게 바라보기에는 한없이 좋은 것이었다. 

▼ 그래도 열려 있는 스타벅스를 찾아 커피를 한잔 한다. 좋은 맛이다. 

▼ 빼끔이 나를 쳐다보며 당장이라도 도망갈 남편과도 같은 얼굴을 하던 나의 렌트카는 어느새 약간 여기저기 흉터를 가진 전사와도 같은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 하루 종일 호텔에 처박혀 일을 하다가, 영화를 보다가, 자다가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문득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


중국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근면하지 않았던가?


그러면 혹시?


예상은 적중했다. 내가 있는 곳에서 약 20마일 떨어진 곳에 '한국식 중국음식점 아서원'이 오늘도 영업을 하고 있었던 것!!!


그래.. 나는 크리스마스 당일날 빨래하고 눈이나 구경하다가 짬뽕 먹음서 속을 푼다. ^^

너희 크리스마스는 어땠느냐? 


뭐 어떠면 어떻냐? 이제 크리스마스도 가고 새해가 밝으니 그 준비를 해야 할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그래 이제 노는 것도 그만하고 내년 준비하자. 


난 벌써부터 서울로 돌아가 알싸한 날씨에 나의 후각을 낚아채는 듯한 신김치의 냄새를 맡으면서 배불리 김치찌개를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제 Don't stop me now.. ^^


By 켄 크리스마스 당일 in 시카고


https://youtu.be/oin0djnH0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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