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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니스트리 Jun 18. 2019

원대한 꿈속에서 길을 잃을 때

꿈이 있는 직장인의 목표를 향한 첫걸음

아침 8시에 출근해 공유 오피스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9시에 나와 나의 본업인 회사로 이동한다. 회사 출근 시간은 10시. 이때부터 본격적인 나의 월급 벌이 직장인의 생활이 시작된다. 저녁 7시에 퇴근을 하면 김밥 한 줄을 사들고 다시 공유 오피스로 출근한다. 신도시로 떠나는 강남역의 마지막 버스 시간 11시 30분까지 약 4시간 동안 해야 할 일들을 한다. 지난 1월부터 약 3개월간 매일의 일상이었다.


앞서 작성한 시리즈 '꿈이 있는 직장인의 저녁이 있는 삶'에서 소개한 어느 겨울 나의 모습이며, 누군가의 사업 파트너로서 제품 출시를 돕던 시기였다. 평일 퇴근 후는 시간, 공유 오피스는 공간이며 늘 이 두 가지가 없어 나태함과 휴식으로 채운 저녁과 휴일을 끝내는 방법은 비용을 들여서라도 매일 이용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에 스스로 얽매이는 것이었고, 이 굴레 속 자유로운 도전을 지인들도 응원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처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누군가 물었다. "지금 하는 일의 비전이 뭐예요?"


잠시 생각하다 답했다. "비전은 잘 모르겠고, 고민한 제품의 가치가 시장에 잘 전달돼 첫 매출 올리는 것만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자 그가 되묻는다. "궁극적으로 원하는 사업의 철학이나 비전이 없어요?" 그제야 그가 다소 원대한 무언가를 묻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에겐 당연히 꿈도 있고 비전도 있다. 하지만 바라보고 걷는 대상이 별이 아닌 별무리라는 것이 무언가를 특정하기 힘든 이유랄까? 아직 꿈을 명확히 가질 만큼 성숙하지 못했고 생각도 실력도 자라는 중이라는 핑계는 타인의 시선에서 이해할 수 있을까? 지금 시점에선 비전을 잠시 서랍에 넣어뒀다는 표현이 맞겠다. 적어도 그가 묻는 것이 그것이라면.




질문을 한 지인도 꿈이 있고 하고자 하는 일에 비전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물질적 성취만이 아니다. 그는 지식을 좋아해 끊임없이 배우고 결국엔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한 사업가가 되기를 희망하며 열심히 그 길을 걷고 있다. 그에게 이어서 답했다.


꿈에 발목 잡히지 않으려 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다. 2011년, 싱가포르에서 마케팅 서비스 세일즈를 하던 중 국내 기업 몇 곳으로부터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성과를 올리게 되었고, 이 계기로 싱가포르 토종기업인 모 회사의 한계를 극복하고 좀 더 현지화하여 개선된 서비스로 사업체를 만들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정해진 목표에 따라 처음 시작한 일은 현실적인 무언가가 아니라 고객이 누릴 가치와 같은 비전 수립이었다. 결과적으로 그 꿈은 어찌 되었을까? 비전에서 머물러있던 사업 단계는 여전히 멈춰있다. 물론 그 사이 많은 변화의 시기가 있었다곤 해도 시작해본 일과 시작도 못해본 일은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다.


그 뒤에도 여러 형태의 사업 구상은 이어졌다. 아이디어 공유 플랫폼, 인생 스튜디오, 기상천외한 제품 개발 등 다양한 형태와 이름의 비즈니스 가안(draft)은 노트에 쌓여갔다. 그중 어느 한 아이템이라도 구체화하고자 하면 먼저 생각하던 것은 대중에게 어떤 가치를 전달할까 하는 다소 큰 개념이었다. (마케팅 플랜 첫 번째 페이지는 대체로 '미션'과 '비전'으로 시작한다.) 그 과정 중 스스로에 대해 깨달은 것이 있다면, 나 자신은 그렇게 원대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주위의 많은 오해와 달리 감성 보단 이성, 감정 보단 합리가 더 편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많은 일들이 바로 그 '비전 수립' 단계에 머물러 있었으므로 자본도 시간도 별로 없는 직장인에겐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했던 질문이 ‘평소 누군가에게 어떤 도움(help)을 주고 있었는지’였으며, 그 도움을 주도(drive)로 바꾸어 동기를 만드는 것이 필요했다. 그것은 브랜딩과 마케팅 영역이었고, 제조나 유통, 커뮤니티 플랫폼 등 다양한 사업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콘텐츠, 브랜딩, 카피라이팅 등에 조언을 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내게 조언 혹은 약간의 도움을 원했던 이유는 명확하다. 이러한 마케팅 유관 활동을 서비스로 이용하려면 사실 영세 사업자의 경우 감당하기 힘든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 조언을 하던 수준에서 벗어나 브랜드 패키지를 제공하는 유통 수익모델을 제안했으며, 이 것이 받아들여져 꿈을 위해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다.

'움직일 기회'라는 의미의 '동기'는 다른 수많은 기회와 달리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어찌 보면 가장 현실적 기회를 가리킨다. 원대한 꿈을 묻던 과거에서 벗어나, 최근 제조업으로 사업을 시작한 지인에게 브랜드 개선과 채널 판매 수익금 분배를 제안하는 것이 그 사업의 중요한 가치를 정하자는 미션을 부여하는 것보다 좀 더 현실적인 움직임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겪고 경험이 쌓이면서 매출이 발생해 어느 정도 현금 유동성이 생기면 투자를 통해 차별화와 확장도 가능할 것이다. 바로 전 직장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작게 시작하고 빠르게 망하는' 스탠퍼드 D스쿨의 디자인씽킹(Design Thinking) 방법론에서 배운 다음 단계로의 이동법이다.


또한, 어느 일이 현실화되는 과정에서 선후(先後)는 정해진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글을 쓰고 편집해야만 정기 간행물인 매거진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매거진의 형태와 제목을 짓고 담길 소재를 구상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활동을 계획하고 저작하게 되었듯, 때론 그릇을 먼저 꺼내어 요리를 구상하는 것이 고민의 고리를 끊어내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글을 쓸 때, 종종 제목이 먼저 떠오르고 스토리가 이어지기도 한다.




스스로에게 있어 이번 여정의 처음은 이루고자 하는 것을 명확히 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과 지식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작게 시작하는 것, 바로 스몰 스텝(small step)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질문을 했으나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한 지인에게 예를 들어 설명했다. 잠시 몸담았던 소프트뱅크 그룹 손정의 회장의 기업 철학은 '정보기술(IT)로 인류를 행복하게'인데, 처음 그가 사업을 시작할 때 이 것을 먼저 정했는지는 알 수 없는 것이고, 큼직한 그 무엇인가는 나중에 또렷해지기도 하니, 지금 내가 하려는 일에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식의 철학 혹은 비전은 나중에 생각해 보겠다고.


참고로 손정의 회장의 창업 아이템은 '소프트웨어 패키지 유통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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