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토너에게 흔한 질환 '족저근막염'에 대하여
나는 순발력이 좋은 편이 아니다. 조심성도 부족해 자주 다치기도 한다. 운동 센스도 그다지 뛰어난 편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팀을 이뤄하는 구기종목에는 소질도 흥미도 없다. 경쟁이 목적인 스포츠는 더더욱. 아마도 비 경쟁적이라서 일까? 혼자서도 할 수 있고, 함께 하더라도 경쟁의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운 운동이 좋았는지 모르겠다. 그것들이 대체로 심한 정도의 인내심을 요한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피트니스나 홈 트레이닝과 달리, 그런 이유로 걸음을 떼면 목표까지는 어찌어찌 도달하는 마라톤은 나에게 매우 매력적인 운동이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운동화 신고 집 밖으로 나가 달릴 수 있으므로 시작도 쉽다. 그렇게 일주일에 세 번씩 달리고, 간혹 정기적으로 모이는 동호인들과 대회도 참가하며 서서히 기록이 나아지고 건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 나는 한동안 달리지 못하고 있다. 마라토너들의 흔한 질병, 족저근막염이 재발했기 때문이다. 부어라 마셔라, 바쁜 연말을 보내다 1월 중순이 되어 문득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몇 주 만에 밖으로 나가 달리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달릴만한 것이 기분도 상쾌해지고 괜찮았다. 날도 많이 춥지 않았다. 슬슬 열이 오르고 상쾌하게 달린 지 20분 정도 지났을 때, 퇴보된 관절 주변 근육들에서 조금의 위화감이 들었다. 30분이 지나자 근육 뒤에 숨어 눈치만 살피던 관절들이 아우성을 치기 시작하고, 이를 무시하며 더 먼 거리로 달려가자 어느새, 뒤꿈치부터 시작한 발바닥 통증이 발 전체로 번지기 시작한다. 우리 민요 <아리랑>에서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이 10리도 못 가서' 앓게 되는 발병의 정체, 마라토너들의 흔한 질환인 '족저근막염'이 재발한 것이다.
족저근막염(足底筋膜炎, Plantar Fasciitis)은 단어 의미 그대로 발아래 뼈를 감싸는 막, 즉 피하 지방과 근육, 인대 등에 생기는 염증을 의미한다. 족저근막염은 마라톤, 트라이애슬론, 등산 등 주로 발에 많은 하중이 실리고 오랫동안 압박되는 운동에서 자주 발생한다. 오래 사용하다 보니, 발바닥에 붙어있는 쿠션인 '지방층'이 줄어들고 돌출된 근육과 뼈에 직접적 마찰이 많아지며 염증이 생기는 질환으로, 발 뒤꿈치와 발바닥 움푹 파인 곳에 주로 증세가 나타나게 된다. 오래 사용하지 않아도,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 운동을 하거나, 잘못된 자세로 운동해 한쪽 발에 과한 하중이 실리는 경우, 혹은 체중이 늘어 평소보다 더 많은 압력이 발바닥에 가해지는 경우에도 족저근막염 증세를 보일 수 있다.
발을 땅에 디딜 때, 그리고 엄지발가락이 젖혀질 때 주로 통증이 느껴진다. 쿡쿡 쑤시듯 아프기도 하고 일반적 염증처럼 불쾌하게 지끈 거리기도 한다. 발의 바닥은 숨을 쉬는 코처럼, 일상에 늘 사용되기에 완쾌가 더디다. 발병 초기에는, 쉬다가 첫걸음을 디딜 때 통증이 극심하다. 중기 이후에는 서거나 앉거나 전반적으로 통증은 비슷한 수준으로 느껴지며, 염증이 광범위하게 퍼져 발바닥 전체에 걸쳐 증상이 일어나게 되고, 상시 극심한 통증이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증세가 있다고 모두 족저근막염은 아니다. 일시적 근육(인대) 파열, 류머티즘 관절염, 통풍, 기타 면역계 질환일 수 있으므로, 본인이 평소 많이 걷지 않거나 상술한 운동을 즐겨하지 않는데도 이러한 통증이 계속된다면 병원 방문이 필요하다.
진단은 대체로 간단하다. 환자의 평소 활동과 증상으로 의사가 판단하는 문진이 대표적이며, 경우에 따라 X-RAY 촬영을 하기도 한다. X-RAY 정도는 큰 비용이 들지 않으므로 권한다고 의사에게 따지지 말고 그냥 찍어보는 것이 좋겠다. 회복과 치료는 80-90% 환자 본인의 몫이다. 병원에서 진통제와 소염제를 처방할 수 있지만, 족저근막염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없어진 지방층을 회복시키고 염증을 완화하는 '휴식'이다. 스트레칭은 서서히 시행하는 것이 좋으며, 운동 목적의 가벼운 걷기나 달리기는 평소 앉거나 설 때 통증이 확연히 줄어들고 있다면 시도해볼 만하다. 최근 양한방 동시 치료가 효과가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전기자극, 침, 온열 요법 등과 휴식, 약물 치료를 병행한다면 증상의 조기 완화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빠른 회복을 원한다면 술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 최근에는 러닝화의 기능이 향상되어 이러한 질환의 발병률을 다소 줄여주고 있다. 직장인이 일상에 신는 구두는 바닥이 딱딱해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젤 패드 등을 사용해보는 것도 추천한다.
마라톤이나 트라이애슬론, 등산 등 스포츠맨들이 극한의 성취감을 느끼기 가장 좋은 계절은 언제일까? 대부분의 큰 대회가 봄과 가을에 몰려있지만 의외로 겨울에 달리는 것은 색다른 묘미가 있다. 출발이 어렵지, 서서히 데워지는 체온의 따스함과 그걸 식혀주는 찬 공기의 소통은 오직 겨울철 문 밖을 나선 용기 있는 러너들만이 누리는 계절의 특혜다. 위험이 큰 만큼 보상인 성취감도 크다. 이 말은 반대로, 위험이 큰 만큼 위험 요소를 사전에 차단하는 노력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말과 같다. 심하면 일상생활까지도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족저근막염은 준비운동과 스트레칭, 발에 잘 맞는 쿠션 좋은 운동화를 신는 것이 예방이고, 영양 공급, 음주 자제, 충분한 휴식, 감량 등이 치료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우리의 민요 '신아리랑'에도 매정하게 떠나는 님에게 '발병'이 날 것이라며 저주하는데, 이 발병이 반드시 족저근막염이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어쨌든 발에 생기는 질환이 매우 성가 신건 그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다. 일상생활도 지장을 받지만, 무엇보다 좋아하는 운동을 회복기간에는 하기 어렵다는 점이 더 그렇다. 이번에 들러 치료를 받았던 한의원에서 침과 전극 치료를 받았다. 이후 통증은 많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뛰는 것은 한두 달 쉬어주려 한다. 그리고 러닝화도 직접 신어보고, 경험자의 조언을 얻어 발에 잘 맞는 것으로 바꿔볼까 한다. 달리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야기처럼,
"... 오늘도 달리지 않으면 나는 영영 달리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달릴 이유는 한 가지지만, 달리지 않을 이유는 수도 없이 많기 때문에".
※표지사진출처: prestigethemansto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