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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니스트리 Aug 28. 2020

두 바퀴의 구름, 그 사이 하늘

양평군 옥천면 사나사 계곡 자전거 여행기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중에 그대를 만나
꿈을 꾸듯 서롤 알아보고
주는 것 만으로 벅찼던 내가 또 사랑을 받고
그 모든 건 기적이었음을


참 좋아하는 이선희 씨의 <그중에 그대를 만나>라는 노래 가사 속 '별'은 정말 많은 개체수를 의미하지만, 사실 우리는 세상에 얼마나 많은 종류의 별이 있고, 또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저 다양성만을 참고하자면, 자전거도 별을 닮았다. 사람이 만든 발명품 중 우리의 힘만으로 가장 멀리 이동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도구인 자전거는, 크게 나누면 서너 가지, 세분하자면 수십 가지가 넘는 종류가 있다. 이를 감히 별의 다양성에 빗댄 이유는, 그걸 타는 사람들 또한 각기 자전거로부터 다른 목적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 중에, 기적과 같이 당신이 만약 로드 자전거를 만나게 된다면, 달릴 수 있는 의지로 당신은 길을 따라 어디든 더 빠르게, 그리고 더 멀리 갈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로드 자전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앞선 노래 가사처럼 꿈을 꾸듯 서롤 알아보았기 때문이었다. 처음 로드 자전거에 올랐을 때, 이전에 타던 생활형 자전거에 비할 바 없는 시원한 주행에 엉덩이의 불편함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았고, 더 좋은 길을 따라, 경치 좋은 곳으로, 더 빠르게 이동하는 여행이 좋아졌다. 올여름 어느 주말에 양평으로 향했던 여행이 딱 그랬다. 한강과 남한강을 잇는 자전거 도로는 평지 위주에, 간혹 더위를 식혀주는 터널이 있어 많은 이들이 즐겨 찾는 힐링 라이딩 코스로 손꼽힌다.




광나루 자전거공원에서 이른 아침 출발해 팔당대교를 건너 동쪽으로 달린다. 시원하게 강변 자전거길이 이어진다. 아무리 평지라 해도 모두에게 쉬운 코스는 아니다. 거리가 멀수록 페이스와 휴식의 횟수가 중요하다. 이번 여정의 리더는 '무정차' 고속 라이딩을 원했으나, 이 제안은 아침도 거르고 나온 허기진 영혼들에 의해 거부되었다. 자전거인들이 서울 동부를 여행할 때 들르는 일종의 관문 역할을 하는 '양수역'은 보급의 성지이다. 이 곳에서 잠시 허기를 달래고, 다시 동쪽으로 약 한 시간을 달려 양평군 옥천면 용문산(龍門山)에 위치한 사나사(舍那寺) 인근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다.


오늘 점심으로 예약했던 가든 식당에 자전거를 가지런히 세워 두고 각자 준비한 슬리퍼로 신발을 갈아 신는다. 맑은 물이 넘치는 계곡은 바로 근처에 있다. 뜨거워진 발을 식히고 머리에 물을 뿌릴 생각에 벌써 감격스럽다. 50여 일간 이어졌던 기록적 장맛비 외에 특별히 물구경을 하지 못했던 다리 굵은 어른들은, 물 만난 메기처럼 들떠 첨벙첨벙 물에 걸어 들어간다. 이내 비 현실적 온도의 차가운 상급수에 머리를 담그고 나니 뜨거웠던 머릿속 열이 식으며 뇌수(腦水)에 대류가 발생한다. 아찔함이 상쾌함으로 바뀐다. 담금질의 느낌이 이런 것일까 싶다.



대부분의 라이딩 여정의 끝은 편의점인데, 이번 목적지의 숲 속 계곡 넘치는 물은 지나친 호사가 아닐까 싶다가도, 가장 친환경적인 교통수단으로 내 힘 써서 왔으니 자연이 주는 이 정도 보상은 누릴 자격이 충분하단 생각이 들었다. 오늘 하루가 영화 같다면, 이어지는 챕터의 BGM(배경음악) 속 노래 가사는 우리 모두를 아이처럼 설레게 만들었던 계곡 여행과 닮았다.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고
자신한 내가 어제 같은데
그대라는 인연을 놓지 못하는
내 모습, 어린아이가 됐소


자전거라는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하는 이유가 그곳에 있었다.




"이렇게 좋은 풍경을 왜 예전엔 보질 못했지?"


같은 길에서, 달리는 행위에서 벗어나 여유로운 여행을 하던 어떤 이가 말한다. 나에게도 이번 여행은, 최근에 집착하던 기록의 굴레에서 벗어나 고마운 이의 초대로 우연한 기회에 하게 된 힐링 라이딩이었다. 주말 반나절에 할 수 있었던 라이더들의 작은 축제와도 같았던 이 이야기의 지은이는,


'두 바퀴의 구름과 그 사이의 하늘, 그리고 맑은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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