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를 틀별하게 만드는 작은 요소들 이야기
우리는 대체로 전문가가 아니지만 자의 혹은 타의적으로 이벤트를 기획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곤 한다. 연인과 친구들끼리, 혹은 가족들과 하는 이벤트는 늘 있다. 특별한 콘텐츠를 만드는 것과 달리 이벤트는 이렇게 일상 속에 있으며 기획이라는 거창한 이름 없이 자주 그 일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 무대가 동호회, 커뮤니티, 혹은 사회라 불리는 직장으로 확장되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그 일을 맡지 않게 된다. 그나마 동호인들끼리의 이벤트라면 그 성패의 기대치가 높지 않겠지만 회사는 다르다. 급여 근로자의 입장에서 업무의 일환으로 해야 하는 이벤트라면 잘해봐야 본전, 못하면 티 나는 것이 당연하다. 성패 판단의 기준도 그 목적만큼이나 다양한 이벤트는 간단해 보이지만 챙겨야 할 것이 너무 많은 골칫거리이기도 하다.
그리고 에디터는 또 한 명의 이벤트 비전문가다. 직무상 다양한 상황에서 그 일을 맡았던 기회들에 실패도, 예상치 못한 성공도 겪다 보니 ‘아, 사람들은 이러이러한 것들에 꽤 즐거워하는구나,’ 혹은 ‘아, 이런 일은 이렇게 하면 안 되겠구나’등 노하우도 얻게 됐다. 그리고 회사에선 그냥 주어진 일을 로봇처럼 하는 것이 싫어서, 삶에선 그 자리에서 함께 즐겁기 위해 감성을 ‘조금’ 더하게 됐다. 같은 일에 의미를 더하는 이런 ‘작은’ 이벤트 요소들은 부족한 예산에 크게 얽매이지 않아 좋다. 어찌 보면 손편지 같고 달리 보면 손 그림 같은 그것.
이 글은, 전문가는 아니지만 여러 사정상 이벤트를 기획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참고할만한,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굳이 하지 않는 약간의 감성을 제안한다. 그것을 ‘작은 기획'이라 부르고 결과는 큰 공감, 혹은 오랜 기억이라 하겠다.
회사 동료 중 누군가는 집에 부모님을 초대하여 식사를 함께할 때 조금 색다른 요소를 가미했다. 바로 ‘메뉴판’을 만들어 아이패드로 손님 (아마도 부모님)에게 보여드린 것이다. 식탁과 요리, 테이블 위의 꽃 같은 홈파티 요소들은 그것 자체로 훌륭하지만 이 작은 시도는 그 자리를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회사의 어느 이벤트에서 몇 가지 요소들로 카페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준비물은 포토샵으로 작업된 이미지와 USB 메모리, 회사에 비치된 회의용 TV가 전부였다.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이 요소들이 특별할 수 있었던 건, 그것이 일반적이지 않은 곳에서만 존재하는 ‘상대적 특별함' 때문일 것이다. 생일자 얼굴로 만든 이벤트 포스터나 집에 설치하는 현수막 등의 인쇄물도 효과가 크지만, 앞서 예를 든 두 가지 사례 모두 디지털 기기를 활용해 생산에 지출한 비용이 '시간'과 '진정성(혹은 관심)'뿐이었다는 것이 바로 이 '작은 기획'의 출발점으로 의미가 있다.
이벤트 속 작은 요소, 혹은 작은 이벤트를 뜻하는 '작은 기획'의 출발은 바로 회사에서 진행했던 ‘식목일 나무 옆에서 사진 찍기’ 이벤트였다. 어쩌다 좋은 카메라를 빌려 쓸 일이 있었고, 장난처럼 몇몇 동료들을 찍었는데 반응이 좋아 시작된 이 작은 이벤트의 구상은 월요일, 시행은 목요일이었다. 사진은 수단이었고 만나서 즐기는 것이 목적이었다. 비용 없이 진행했던 이 이벤트는 <당신은 당신 생각보다 더욱 아름답다 - 식목일에 나무 대신 추억 심기>라는 다소 거창한 제목으로 홍보되었다. 없는 조명은 자연채광과 회의용 TV를 이용했고, 팀 혹은 개인단위로 참여한 사람들과 대화하며 자유로운 표정을 유도했다.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팀 혹은 개인 단위로 참여한 이 이벤트는 총 2시간 여로 짧고 담백하게 마무리 되었다. 많은 참여자들의 자연스러운 미소가 담긴 사진은 큰 선물이었다.
물론 이런 심플한 이벤트도 시작부터 그냥 뚝딱 이루어졌던 것은 아니다. 회사에 알려지며 사진 동호회의 참여, 전사적 행사로의 발전 등 여러 제안 등으로 탁상에서 덩치가 커져 최초 취지와는 거리가 멀어져 좌초될 위기도 있었다. 경험해보니, 아무리 괜찮은 아이디어라도 작은 기획은 작게, 딱 그만큼의 기대만 가지고 진행하는 것이 더 큰 고민으로 이어지는 것보다 결과가 나아보였다.
이벤트를 기획하며 느끼는 것은, 누군가와 함께하는 어느 시간과 공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는 큰 것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진정성 있는 기획, 그리고 시도가 전부인 작은 기획에서 기획자는 오로지 함께하는 이들과의 즐거운 경험에 집중한다.
작은 변화가 모여 삶을 이룬다는 점에서 이벤트는 우리가 기억하면 이벤트, 아니면 그냥 일상이다. 그 일이 그저 잊혀지는 시간 사이 공백이 되지 않으려면, 잘 담긴 의미와 구전될 소재, 약간의 재미가 필요하다. 이런 작은 기획의 이벤트들은 사실 조직원 스스로 자의적으로 만들어나갈 때 돋보인다. 누군가의 생일, 기념일, 조직의 특별한 날, 혹은 그냥 모임 등에 더하는 약간의 요소들로부터 우리는 더 즐거울 수 있다.
크리에이터스라는 동호회를 운영하며, 그 출발점에서 고민했던 ‘어떻게 동호회의 당위성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답으로 ’정신 나간 콘텐츠의 현실화 과정’을 설명한 적이 있다. 조금 특이한 생각(기획)이 현실화되는 시작점은 다른 특이하거나 착한 사람의 공감이다. 만약 공감하는 사람이 없다면 몰래 한다. 막상 열리고 나면 많은 이들의 기쁨을 유발할 수 있지만 부작용도 있다. 대부분의 의사결정권자들은 이 ‘서프라이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공식적 이벤트에서는 이벤트 속 ‘작은 기획’이 유용하다.
그렇게 아이디어가 구체화되면 일정을 잡는다. 회사 내부에서 직원들과 하는 이벤트의 경우엔 장소는 회사의 어느 공간, 시간은 점심시간이 무난하므로 이 과정이 조금 수월하다. 하지만 외부에서 진행하는 이벤트의 경우, 장소의 대관과 시간 설정은 홍보 이후 변경이 어려우므로 신중한 결정이 필요하다. 이렇게 시간과 장소가 정해지면 큰 주제를 중심으로 대략의 일정과 순서(agenda)를 정한다. 이 모든 것이 갖춰졌다면, 이벤트 속 작은 기획의 요소들을 챙겨볼 차례다.
요소 1. 홍보 카피
이벤트 제목을 정하고 전체적인 틀이 갖춰졌다면 이를 홍보하기 위해 콘텐츠를 정한다. 홍보물이 제작되었다면 일정에 맞춰 이메일, 문자메시지, SNS 게재 등의 방식으로 적극적으로 홍보를 진행한다. 그 전에, 홍보문구를 최대한 매력적으로 정해본다. 몇 줄의 문구와 일정, 그리고 참여자가 흥미를 끌만한 예시 사진 몇 장을 첨부해 보낸다면 그럴듯한 이벤트 알림이 된다.
핀터레스트(pinterest)나 비핸스(behance) 등에서 디자인을 참고해 간단한 포스터를 만들거나, 이벤트페이지 전문 클라우드 서비스 스플래시댓(Splashthat)등을 활용해 그럴듯한 이벤트 페이지를 만들어 홍보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마음을 건드리는 단어의 조합인 매력적인 홍보카피로 마지막 점을 찍는다.
홍보카피로 디지털 버전 홍보물이 구성되면 알림을 시작한다. 가장 흔한 수단은 이메일인데, 이메일 제목이 너무 일반적이면 사람들이 거르거나 버릴 수 있다. 이 특별한 이벤트가 그냥 스킵(skip)되는 것이 제목 때문이라면 너무 억울하니 꼭 열어보도록 제목을 흥미 있게, 혹은 궁금하게 구성해보자. 즐거움의 기준은 다양하므로, 어느 것이 더 매력적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일반적인 제목 형태
[이벤트 알림] 커피코너 with 스캇 러셀 | 14:00-15:00, Universe (24F)
궁금증을 유발하는 제목 형태
외국사람과의 동문스답 @Universe (24F, 14:00 - 15:00)
요소 2. 인쇄물
디지털 홍보 콘텐츠가 정해졌다면 출력물, 즉 실제 눈에 보이는 홍보물을 만드는 것도 좋다. 출력물을 접한 예상 참가자는 이 이벤트를 ‘실제 일어날 일’로 인식하며 기대감을 갖게 되고, 이벤트가 열릴 장소에서는 좋은 장식으로 활용될 수 있다. 일례로, 최근 다니는 회사에서 진행했던 어느 이벤트 전 해당 건물 곳곳에 포스터를 부착했었는데, 회사 이사 전 오랜 추억이 깃든 건물에서의 마지막 이벤트라는 점에서 특별했던 기획이었다. 단순한 구성이지만 참여자들의 흥미를 이끌어 낼 수 있었고, 포스터 문구 속 의외의 숨겨진 요소들을 찾아 역으로 제보하는 자발적 참여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아래 이벤트 포스터는 예전에 다니던 회사의 사회적 활동(CSR) 팀에서 제작해 배포한 것이다. 모두가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헌혈을 하고 싶어 지게 만드는 매력적인 카피였다고 생각한다.
요소 3. 인물 하이라이트
누군가가 주인공인 이벤트의 경우 그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 것도 좋은 이벤트 요소가 된다. 예전에 근무했던 회사에선 비정기적으로 글로벌 임원이 방문해 직원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는데, 이때 그들의 얼굴이 나온 멋진 포스터를 제작하거나 빔프로젝터를 활용해 그들의 이름을 활용한 가상 브랜드(virtual brand)로 게스트를 ‘특별’하게 했다. 참여자들은 흥미가 생겨 참여도가 높아지고, 원래 모르던 게스트가 친숙하게 느껴져 함께 사진을 찍고 이를 SNS에 공유하는 등 적극적 참여와 확산을 유도하는 효과가 있었다. 물론 해당 게스트 본인은 말할 것도 없었다.
특정인을 돋보이게 하는 가상 브랜드 전략은 다양한 곳에서 활용 가능하다. 실제 국내 모 회사의 주류 브랜드 ‘처음처럼’에선 이 ‘~처럼’이라는 조사의 친밀함을 이용해 <oo처럼> 이벤트를 전 국민 연말 행사 아이템으로 만들며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B사의 바나나우유의 경우 일명 ‘채워 바나나’ 이벤트로 특정인을 특별하게 만들어 대중의 참여와 매출,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대표적은 성공 사례다. 그런 사례는 우리 집 거실, 회사의 라운지 어디라도 달라지지 않는다. 큰 시장, 넓은 대중의 영역이 축소되었을 뿐만 아니라 더 깊은 ‘공감’이라는 좋은 재료도 있으므로, 작은 기획이 더 빛날 수 있다.
요소 4. 디자인 도구들
우리는 이미 여러 제작물들은 대부분 커스텀이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 작은 문구부터 디자인까지. 개인이 어느 정도 관심과 재능이 있다면 그 영역은 더 넓게 확장 가능하지만 디자인 아니더라도 문구 정도만 잘 고민해도 주위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대부분의 커스텀이 가능하지만 용기 있게 조금 다른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드는 것에는 두 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바로 관심과, 진정성.
웹 기반 도구들은, 이 둘을 갖춘 모두를 크리에이터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활용도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인터넷 세상인 요즈음엔 개인이 그럴듯한 형태의 이벤트 페이지와 홍보물을 만들 수 있는 도구들이 많으며, 사업적 목적이 아니라면 대부분 기본 기능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스플래시댓(Splashthat)'과 '캠페인모니터(Campaign Montor)'가 있다. 스플래시댓은 코딩 지식이 없어도 쉽게 이벤트 페이지를 만들 수 있으며 캠페인모니터는 멋진 이메일 홍보 양식을 제공한다. 둘을 함께 사용하면 더 좋다. 하지만 캠페인모니터는 약간의 html 코딩 절차가 필요한데, 일반이 들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Younghwi Cho 님의 '문돌이도 간지 나는...' 라는 글에서 잘 소개하고 있다.
https://brunch.co.kr/@andrewyhc/43
요소 5. 0원 인테리어
이벤트를 준비하다 보면 예산이 부족한 상황은 다반사다. 작은 기획은 최소한의(때로는 0원의) 예산으로 참여자들을 만족시킬 필요가 있을 때 유용하다. 콘텐츠로 채워진 많은 이벤트들은 사실 예산은 없어도 된다. 오히려 소규모로 진행하는 요가 클래스, 미술 강의, 플라워 클래스 등 배움의 요소가 있는 이벤트는 참여자들이 비용을 부담하기도 한다.
예전에 잠시 몸담았던 S 회사의 경우 다행히도 사람들이 모였을 때 허전하지 않을 아주 좋은 아이템인(무려 라떼가 나오는) 커피머신, 그리고 이동식 가구와 미디어 장비가 갖춰진 다목적 공간이 있어 이런 작은 기획을 실천하기에 아주 좋았다. 하지만 이벤트 기획자의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늘 이렇게 ‘재능 나눔’이나 ‘배움’ 같은 콘텐츠 자체가 목적인 이벤트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궁금증을 유발하는 사전 홍보는 적절하게 배포하고, 친한 동료들을 이용(?)해 여기저기 입소문이 나게 하고 행사 당일 현장을 준비한다. 이때 매우 유용한 것이 스탠드형 TV 스크린과 빔프로젝터다. 요즈음 TV 스크린은 대부분 USB 메모리 단자가 있어 이 곳에 이미지를 저장해 TV로 볼 수 있다. 노트북을 연결할 수도 있으므로 적절히 디자인만 잘하면 훌륭한 사인보드 역할을 한다.
빔프로젝트는 전면 하얀 벽 혹은 슬라이드 스크린에 대형으로 분사돼 기본 조명이 전부인 현장이라도 금세 카페처럼 변하게 할 수 있다. 역시 배경의 디자인이 중요한데, 행사 자체의 브랜드보다는 참여자 혹은 게스트의 시그니쳐 버전 배경 이미지를 제작하는 게 좋다.
또한 사람은 귀로도 분위기를 인지한다. 스피커를 노트북에 연결해 행사 시작 전부터 BGM(배경음악)을 틀어둔다. 재즈, 모던 힙합, 발라드 음악 믹스 등을 너무 시끄럽지 않게 음량을 조절한다. 행사 시작 준비시간 동안 사람들이 편안하게 기다릴 수 있고, 행사 자체의 기대심도 유발할 수 있는 좋은 장치다. 음악은 cafe music, 카페 음악, 재즈카페 등 키워드를 이용해 검색하면 좋은 메들리를 찾을 수 있다. 이 경우에도 빔프로젝터는 빛을 발한다 (원래도 그렇듯). 유튜브에서 파티 영상이나 댄스가수 M/V를 찾아 벽에 영사한다. 음악과 반드시 싱크가 맞을 필요는 없다. 불을 끄면, 금세 그 공간은 모던 바(bar)로 변한다.
요소 6. 테마파크 먹거리
충분치 않은 예산의 작은 기획에서 먹거리는 자주 발생하는 고민의 축이다. 예산이 충분할 때에는 케이터링, 예산이 부족할 때에는 셀프쇼핑이 정답이지만 요즈음엔 배달음식도 다양해 케이터링과 셀프쇼핑 중간지점 정도에 피자나 치킨이 자리한다. 회사에서 하는 행사이고 식사를 겸하지 않는다면 대체로 아주 적은 예산만이 주어진다. 특히 행사 성격이 간담회 형태라면 음료나 과자 정도만 준비해도 예산이 초과되기도 하는데 이는 사람이 얼마나 참여할지 몰라 예상보다 많이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하는 시간을 쪼개 회사의 행사에 참여해야 하는 자율 참석 이벤트의 경우 이 간식만큼 모객에 효과적인 유도체가 없으므로 신경이 쓰이는 것은 당연하다. 여러 자율 참석 행사들의 참여 동기에 물리적인 요소 외 콘텐츠가 있다면, 이 먹거리 또한 콘텐츠가 되는 셈이다.
에디터가 겪어본 중 가장 가성비 좋은 먹거리는 바로 ‘스낵’이었다. 이 가성비라는 개념에는 기획자의 노동력도 포함된다. 전문 케이터링이 가장 비싸지만 노동은 가장 적게 든다. 행사장 분위기도 좋아지고 참여자들의 만족도도 높지만 상대적 비용이 비싸 자주 이용하진 못한다. 비용을 아껴야 한다면 마트에서 직접 구매해 배송을 요청할 수도 있다. 가장 저렴하지만 구매, 배송, 현장 설치까지 기획자의 정신-노동력은 가장 많이 든다. 그래서 시도해본 것이 놀이공원이나 영화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에서 흔하게 접하지는 못하는 라이브 팝콘 기계였다.
갑자기 확정된 일정, 이로 인해 부족한 예산,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많은 직원들의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는 부담까지 기획자의 3중고였던 이 기획에는 ‘좀 특별한 간식’을 준비하라는 상사의 주문이 더해졌다. 그러다가, 아주 사소하지만 특별한 ‘팝콘’이라는 콘텐츠를 우연한 기회에 떠올렸고, 그 냄새를 활용해보고자 했다. 이왕이면 게스트를 특별하게 만드는 가상 브랜드까지 입혀 조금 더 특별한 ‘작은 기획’으로. 전체 예산은 300명 기준 20-30만 원 선이었다. 간식으로도 좋고 주식으로도 배부른 팝콘은 그런 기획자에게 오아시스와 같았다. 어차피 큰 기대 없이 작게 도박을 걸어봤는데 의외의 대-박.
그렇게 시작한 특별한 먹거리는 소프트 아이스크림으로 다시 한번 히트를 쳤고 역시 적은 예산으로 이벤트를 빛나게 하는 일등 공신이 되었다. 새로 온 회사에선 예산이 충분했지만 이런 특별한 먹거리, 일상에서 흔히 접하지 않지만 제공은 간편한 추로스, 팝콘, 나쵸 앤 치즈 등과 쇼케이스 냉장고 등으로 더욱 풍성하게 확장할 수 있었다.
주의:
소프트 아이스크림 기계는 문어발식 콘센트 사용금지
팝콘은 미리 튀겨놔야 수요를 감당할 수 있음
요소 7. 마무리 (wrap-up)
이벤트를 마치고, 그 자리에서 나온 최고의 결과물인 사진과 해당 이벤트의 후기를 정리해 간략한 이메일 메시지로 공유하면 비로소 이벤트가 마무리된다. 보통 회사에서 동료들과 진행한 이벤트의 경우가 보통이지만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한 이벤트도 이 과정을 더한다면 더욱 특별해진다. 여행은 출발 전, 여행 중, 그리고 돌아와서의 기록이 완성하는 것이라 하듯 이벤트도 그렇다. 그냥 모바일로 찍은 사진을 카카오톡에 올리는 것보다 구글 드라이브를 활용해 이미지 갤러리를 만들고 이를 링크로 공유하는 것이 좋겠다.
전술하였듯, 어쩌다 회사에서 필요한 이벤트 마케팅을 하게 되면서 애초에 성격이 그렇게 생겨먹은 탓에 조금씩 어떠한 요소를 가미하게 된 것이 이모양이 된 원인인 것 같다. 종종 할 일 없는 사람 취급을 감수하고라도, 어차피 해야 하는 것을 늘 그런 방식 말고 아주 조금 다르게 하려던 기획을 직접 챙기는 일이 많아졌고, 신기하게도 없는 예산에 기획한 여러 크고 작은 이벤트들이 ‘은근히 재밌는데?’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작은 기획을 회사에서 동호인들과의 모임으로, 그리고 집으로 옮겨가며 시도해 보고 공감을 얻자 큰 행사에서도 그런 아이디어를 적용할 용기(?)가 생겼다. 그러자 비판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어차피 회사 일인데 뭘 그렇게까지나…
그 일을 맡아 재미난(작은) 기획이 생각난 순간, 그 일은 회사 일이 아니라 내 일이 된다. 내일 그 이벤트는 나를 포함한 모두에게 또 하나의 추억이 될 것이므로.
컴퓨터 용어 중 이벤트 로그(event log)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PC에 좋든 나쁘든 어떠한 터닝포인트, 즉 변화들을 열람할 수 있는 일종의 기록장을 말한다. 이처럼 이벤트(event)는 ‘행사’의 의미 외에 일상적이지 않은 어떤 사건이나 사고를 가리키기도 한다. 삶 속 이벤트는 다름’이고 ‘변화’다. 그리고 사람들은 어떤 일을 기념하기 위해, 또는 즐거움의 동력을 얻기 위해 이벤트를 기획하고 실현한다. 그 기획의 기본은 바로 사람과 공간, 본질은 변화이고 결과물은 공감이다. 그러므로 변화와 사람, 공간, 공감은 이벤트에서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작은 기획의 현실화는 ‘얽매이지 않음’에서 출발한다. 음악, 사진, 인터뷰, 우리만 이해하는 우스운 광고 카피 등 회사라는 어떤 큰 틀에서 조금 벗어나 얼마든지 시도해볼 수 있는 이 기획은 여러 수단을 동원해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과정이 필수다. 성공한 많은 광고 카피들이 우연한 발견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실제 진행 해 보니, 많은 설명보다는 명료한 몇 문장, 단어, 글자 등 직관적인 것이 기록되고 회자되었다. 그것이 무엇이든 사람은 조금 ‘다른’ 것을 기억하므로, 반드시 매우 특별할 필요는 없다.
너는 참 이런 거 잘해
기획자에게 이런 말 한마디는 얼마나 큰 칭찬인지 모른다. 그야말로 고래도 춤추게 하는 이런 달콤한 동기부여. 하지만 무엇이든 쓸데없이 의미를 담는 것에 집착하고 무엇보다 스스로 즐겁자고 한 그런 진정성 있는 이런 일들의 최고의 보상은 모두의 공감뿐이다. 이유 없이 쓴 이벤트는 이런 커피 같은 매력이 있다.
사실 주어진 이벤트는 늘 하는 ‘일’처럼 그냥 그렇게 하면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최자들은 어떤 이벤트가 그렇게 진행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항상 기획자에게 ‘이번엔 특별하게’를 주문한다. 커다란 규모의 행사에서는 이 ‘변화’라는 것은 실패의 확률을 동반하게 된다. 그래서 규모가 큰 이벤트일수록 새로운 시도의 허용범위는 좁다. 업계 매뉴얼이라 불리는 경험자들의 조언을 참고하여 진행하는 것이 정석이다. 따라서 그런 규모의 행사일수록 원래의 틀은 비틀지 않으며 내부의 요소들을 작게 바꿔나간다면 의외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규모가 크지 않거나 게릴라성으로 진행할 땐 새로운 시도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조건이 붙는다. 너무 큰 비용이 들지 않아야 하고, 실패해도 질책이나 죄책에서 자유로운 정도의 가벼운 목적인 것이 좋다. 이벤트를 이벤트로 만드는 것에는 일상에 조금의 변화를 주는 것이다. 그 방법은 사실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 곳에선 이렇게, 저곳에선 저렇게 하고 있는 것들을 엮고 잇는 과정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