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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니스트리 Apr 03. 2019

무엇이 우리를, 오늘 이 곳에

사내 동호회에서 진정한 커뮤니티로 발전한 우리들의 이야기

나는 마침표보다 느낌표보다 쉼표가 더 좋다.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아 계속 기대할 수 있는 '연속'의 느낌이기 때문이다. 그간 우리들이 함께 해온 일이 가장 생산적인 쉼(,) 이고자 했는데, 모두가 그렇게 여겼는지는 잘 모르겠다.


'크리에이터스'를 향한 마음속 바람(望)은 2018년 초, 겨울의 차가운 바람과 함께 찾아왔다. 이전부터 그곳에서 하던 일이 찍고, 편집하고, 쓰는 것이다 보니 소재를 위해선 사람을 만나야 했는데, 이때 고맙게도 많은 동료들의 도움을 받았다. 당시 하고 싶던 상상 속 일이 현실이 되어가는 성취 중독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함께 상상하고 만들어보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지만, 팀에서는 이성적이거나 경계가 뚜렷한 어떤 형태와는 거리가 먼 나의 말랑한 일들을 썩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목적과 결과에 공감하는 더 많은 주변 분들이 많아 용기를 내어 결과물을 꾸준히 만들며 시간과 의미를 맞바꾸어 갔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은, 회사에는 참 반짝이는 동료들이 많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그림, 누군가는 이야기, 누군가는 음악, 누군가는 여행, 누군가는 열정, 누군가는 외모, 누군가는 따스함, 누군가는 … 참 재미있는 세상이지만 그것을 모르고 사는 현실에서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과 즐거운 경험을 많이 하고 싶었다. 당장 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것이 주는 재미와 의미. 그 무렵 개최한 전사적 행사인 <커피코너>에 커피가 없다는 것이 난센스라 여겨 몇몇 동료들을 모아 회사 커피 기계의 모든 커피 종류를 마셔보고 평가해보자는 이상한 계획에서 발전한 영상 프로젝트 <리얼 커피코너>의 탄생은 열정의 불씨에 풍로(風爐)가 되었다.


보통 혼자 이루기 힘든 이상한 계획이 어떻게 현실이 되냐면, 그걸 공감하는 다른 이상한 사람이 (혹은 착한 사람이) 지지하거나 기꺼이 도움을 주면서이다. 그리고 그 현실이 된 이상한 경험이 미래로 이어지려면, 그것이 '함께 즐거운 것’이어야 한다. 분명 내가 그들과 하려는 일은 함께(同)하며 즐거운(好) 일이었다. 이것이 동호회의 본질이라면 우리도 다른 동호회처럼 정식으로 활동하고 싶어 졌다.


그러한 고민의 시작을 함께 해준 '리얼 커피코너’ 초기 멤버 김태현, 김태현, 오유진 파트너를 시작으로 함께 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싶은 크리에이터들이 모였고, 타 동호회와 달리 우리는 우리만의 결과물을 만들며 회사 브랜드를 알렸지만 정식 동호회가 아니었으므로 예산은 우리 주머니에서, 필요한 도구는 비공식적으로, 알림은 은근히 소셜 채널 공간을 얻어 진행했었다.


좋은 소식은, 마침 사내 동호회 개편 진행 중이라는 것과 우리의 활동을 지지하는 동료들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동호회 설립 요건에 따라 인원을 모집하여 서명을 받고, 활동 계획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승인 담당자의 설득은 쉽지 않았다. 현재에도 활동 중인 '문화 동호회'와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에 대한 답을 추가해 지원서를 작성했다.


기존 동호회와의 차이점은?
기존에는 한 가지 테마와 그 활동이 모임의 목적이었다면 콘텐츠 제작 자체에 목적이 있습니다. 제작을 위해 필요한 여러 활동을 기획하고 참여하므로 회원 전문 분야에 따라 영상, 글, 이미지 디자인 등 다양한 형태의 예술적 활동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콘텐츠’의 개념이 너무 광범위하다?
넓은 콘텐츠의 개념 속에 우리 동호회의 활동은 몇 가지 분야로 압축됩니다. 임직원과 함께할 수 있는 소모임 주최, 경험 공유를 위한 스피치(강연) 개최, 주제 선정을 위한 공감 토론, 외부 이벤트 체험, 영상 편집, 에세이 문학작품 집필 등입니다.
콘텐츠 제작이 목적이라면, 다른 동호회에서 비슷한 활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실제 SNS를 이용하는 현대인들 중 콘텐츠 소비자가 90% 이상, 콘텐츠 생산자는 10% 미만으로 대다수의 관심이 ‘소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기존 동호회의 경우 참여자 대부분이 콘텐츠 소비자이며 콘텐츠 생산이 이루어질 경우 자발적 참여가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한 가지 테마를 목적으로 모인 단체에서 특정인이 콘텐츠 생산을 전담하게 된다면 이는 ‘자발적 참여’라는 핵심 요소의 결여로 지속적인 양질의 콘텐츠 생산이 어려워집니다.


알음알음으로 홍보가 잘 되어 초기 가입 인원은 무려 40명이었지만 세션 마스터들의 재능 공유 활동은 전사적으로 관심 있는 임직원은 모두 참여할 수 있다는 내규를 정하고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더 크리에이터스'가 사내 동호회로 가 승인되며 3개월 기간 한정 필요 예산도 배정받았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들의 이야기는 2017년 6월 킥오프 미팅을 시작으로 도심 속 '시간이 멈춘' 공간 익선동 투어, 사내 임직원 재능 공유로 진행된 <신기한 스토리텔링>, <찰리의 어반 스케치 공장>, <기억의 습작: 마음을 담은 캘리> 등 다양한 창작 활동으로 이어졌다. 어쩌다 여행, 때로는 그림, 오늘은 이야기, 내일은…. 설레는 경험 뒤에는 늘 사진, 글, 영상 콘텐츠가 있었다. 보내는 것과 남기는 것. 우리는 목적에 충실하며 가끔 만나 다음 체험과 제작 일정에 대해 논의했다.


서로 다른 일을 하는, 재능이나 호기심을 가진, 그리고 현재에 머무는 것이 불편했던 우리들. 각자 이야기의 도구가 달랐고 나의 도구는 펜과 카메라였다.



같은 해 가을, 회사와 크리에이터스를 떠나 다른 세상으로 잠시 발걸음을 옮기던 그때 마치 꿈에서 깨듯 새로운 환경에서 나의 펜은 길을 잃고 카메라는 잠을 잤다. 일상에 묻혀 지내던 어느 날, 반가운 이의 송년 모임 초대 연락에 다시 시작된 이유 모를 설렘은 올 해를 마무리하는 자리에 모두와 공유할 기분 좋은 추억 이야기로 이어졌다. 올 해의 활동들을 마무리하는 영상의 시놉시스를 그리며 그간 묵혀뒀던 파일 폴더 속 그 날의 기억들을 다시 꺼내 잇고 붙여보고 싶었다. 하마터면 너무 현실에 몰입할 뻔했다.


그 날 모두와 함께 감상할 올해의 마무리 영상을 만지며, 불과 몇 주가 흘렀을 뿐이지만 참 이 손맛을 잊고 살았구나 싶었다. 야간에 집에서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는 그저 아무것도 안 하고 소파의 일부가 되는 것이 익숙했던 일상에서 돌아와 다시 그 기억 속으로. 손은 힘들었지만 귀는 즐겁고 마음은 행복에 겨운 눈물로 가득 찼다. 그리고 그 날 카메라를 다시 집어 들며, 마치 농부가 농담을 하듯 원래 그러한 내 모습을 되찾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지난 목요일인 11월 29일, 새로운 크리에이터스의 회장님과 여전히 행복한 우리 회원들을 회사에서 마련한 공간에서 만났다. 이 곳은 무엇을 하든 참 정성이다. 그냥 치킨에 피자만 시켜도 될 것을 코스트코 회원제 마트에서 공수한 음식 음료들 덕분에 배부르고, 맘 따습고, 오랜만에 마음껏 웃으며 보낸 밤이었다. (눈물 아주 조금 찔끔.)


그 날 찍은 사진을 보정하려고 다시 꺼내어 한 명 한 명 얼굴과 표정을 살펴본다. 마음이 전해진다. 새로움, 설렘, 따스함, 당황함, 즐거움 등. 영상이나 사진은 그래서 좋다. 한동안 집중해서 작업을 하다 보면 그 시간 그 자리에 함께하던 그 사람들과 긴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된다.


다시 그때로. 추억 속 여행과 이 시간의 동반자.


최근 윅스(Wix) 우리 홈페이지 이벤트 <Book Your Book Here>을 신청하는 한 동료분이 남겨준 글,


"러시아말로 헤어질 때 하는 말이 'До свиданья (다 스비다니아)'인데 이게 뜻이 ‘안녕’이 아니라 ‘다시 만날 때까지’하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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