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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니스트리 Aug 31. 2021

프리솔로-완벽한 자유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전거로 하루 만에 가기(1/3) - 준비

이튿날, 동트는걸 내 방 창 밖으로 바라보며 이 글을 쓸 수 있음에 감사하다.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벗어날 수 없게 만드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최근의 복잡한 상황에 더 꼬여만 가는 심경을 더는 풀어낼 수 없을 때, 그 것을 정리하려면 일단 그 상황에서 멀어질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탈출구가 아스팔트의 길 위라 생각했고, 이번 부산행은 그렇게 단순한 의미로 시작되었다. 이번 모노드라마의 캐스팅으로는 나와 내 자전거면 충분했다.


이번 여행을 계획하며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무엇을 어떻게 준비할것인가보다 어떤 마음과 의미를 갖느냐 하는 좀 더 내적인 부분이었다. 우선 성공을 확신할 수 없었고, 자칫 위험한 여정이 될 수 있어 좀 더 확실한 명분과 가치가 없다면 시작하면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출발 일주일 전부터 에필로그를 적다 보니 어느 정도 그 것들은 정리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번 여행은 처음 내가 찾고자 했던 그 의미와 같기도, 또 다르기도 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약 400km의 거리를 24시간 안에 완주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번 도전에서 과연 나는 내 육체를, 내 장비를, 내가 처할 불확실한 상황을 무한히 신뢰할 수 있었을까? 다리와 정신은 좋다 나쁘다 할 것이지만, 항상 같은 자리에서 버티고 견디는 것은 결국 배터리 없는 순수한 나의 자전거와 그것을 지지하고 받쳐주는 길일 것이다. 서울에서 경기도 동남권으로, 그리고 영남으로 이어지는 국도를 잇는 이 길은 사실 자전거를 타는 이들에게는 아주 새롭지는 않은, 많은 이들의 버킷리스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시도하는 이에게만 성공이 허락된 이 도전은 매 번의 시도마다 각자의 세계에선 늘 처음이고, 또한 마지막인 특별한 경험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무박부산


보통 주말에 자전거를 타러 나가면 30-40킬로는 기본이고, 많은 라이더들이 60-80km 중장거리 라이딩을 기는 것을 볼 수 있다. 100킬로미터가 넘는다면 서울을 벗어나 경기도나 강원도 일부 도시까지 닿는다. 그렇게 내가 닿을  있는 최대한 거리의 끝자락에 스스로의 힘만으로 가면, 평소 보지 못한 풍경과 나의 가능성을 동시에 보게 된다. 상쾌하고 기분 좋은  경험에 취하면 라이더는  멀리,  높이 가는 것을 기꺼이 계획한다.


이런 라이더들 사이에서, 부산까지 가는 자전거 코스가 국토종주란 이름으로 나름 인기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 처음 로드 자전거를 시작할 당시에는 미니벨로, MTB, 로드 가릴  없이 종주 수첩을 지니고 서해 아라 갑문에서 시작해 남한강 섬진강 낙동강 자전거길을 지나 부산 입성하는 라이더들이 더러 회자되었다. 며칠이 걸리든 완주는 영예로운 일이었다. 그리고 해를 거듭할수록  종주 기간이 2 3, 1 2 등으로 줄더니, 급기야 몇 년 사이 '무박'이라는 수식어를 접했다. 무박. 24시간 동안 잠도 자지 않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400km 거리를 완주하는 것으로, 자전거로  일이 가능할까 싶었지만 주변의  여럿이  가능성을 입증해 여 흥미롭다 여겼다. 하지만 400km 어느 정도 거리인지  년간 자전거를 타본 나로서도 실감이 어려웠다. 다른 이들의 후기를 살펴보고,  평소 자전거 타는 거리와 피로를 대입해 유추해 니 보통 체력과 정신력으론 힘든 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400킬로는  시간에 20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달려 20시간동안 가야  거리이다. 보통 생활형 자전거를 타고 빠르게 달리면 18 - 20km/h 초반이 나온다.  시간에 20킬로미터씩 20시간동안 간다는 계산은 먹고, 쉬고, 화장실 가고,  헤매고, 혹시 모를 자전거의 트러블이나 돌발 상황  모든 부수적 시간을 배제한 것이다. 그러므로, 조금  빠르게 달려야 쉬는 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자전거 전용 도로가 아닌 국도를 달리고, 때론 비포장 도로가 나올 수도 있고, 속도와 체력의 가장  적인 언덕길이 곳곳에 있는 우리나라 지형과 같은  다른 어려움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프리솔로


클라이밍은 언덕이나 바위를 중력을 거슬러 오르는 행위를 뜻하며, 클라이머는 클라이밍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프리솔로’ 란, 아무런 안전장비 없이 맨몸으로 하는 암벽 타기의 가장 위험한 형태다. 많은 스포츠 클라이머가 있지만 프리솔로잉을 실제로 시도하는 선수는 드물다. 실수는 곧 낙하로 이어지고, 낙하는 곧 생명을 잃게 될 수도 있는 위험 천만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완벽했더라도 운이 나빴다면 그대로 끝이다. 나와, 나를 지탱할 손과, 자연 모두를 무한히 신뢰해야 시도 정도를 할 수 있는 일이며, 또 삶과 죽음과 같은 모든 개념을 초월해야(개의치 않아야) 수백 미터 낭떠러지 위에서 두근대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프리솔로는 이런 의미에서 삶의 모든 속박을 벗어던진 육체와 정신의 ‘완벽한 자유’를 의미하기도 한다.


비록 스포츠 종목은 달라도 나는 이번 부산행 프로젝트를 프리솔로로 완성하고자 했다. 로드 자전거는 바퀴가 얇아 속도는 빠르지만 그만큼 작은 틈새나 장애물에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험이 늘 존재하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에 예행연습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으며, 오로지 길과 나, 그리고 자전거를 무한히 신뢰해야 이 외로운 도전이 환호의 결실로 맺게 됨이 닮았기 때문이다. 오로지 혼자 결심했고, 혼자 준비했고, 혼자 달려야 했던 했던 이유는 애초에 이 여행을 시작했던 이유와 같다. '무언가에 집중해 고민들을 떨쳐버릴 그런 나만의 휴식'이 그 땐 절실했다.


얼마 전 강행했던 심야 충주행은 어찌 보면 이 필연과도 같은 도전의 전조곡 같은 느낌이었다. 막연히 그리던 어느 설레는 모험과 비슷한 모양의 예행연습. 한 밤 자연 속에 건설된 다듬어지지 않은 자전거도로 위를 달리며, 주위의 적막은 가장 큰 두려움의 비명소리보다 더 피부를 자극했다. 달리는 동안 얼굴과 몸을 간지럽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자연의 부산물들은 좁은 시야에 빠르게 스치는 잔상의 실체였을 것이다. 그 여정의 끝은 계획한 대로 정한 시간에 맞춰 버스를 탔고, 해 뜨고 한참 지난 낮에 무사히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이번엔 많은 것을 내려놓고 떠나는 나만의 여행, 혼자 시도하는 자전거의 프리솔로이다. 그 예행연습 때처럼 또다시 밝은 햇빛을 집에 무사히 돌아와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랐을 뿐이다. 완벽한 자유를 잠시라도 느낄 수 있다면 그건 보상일 것이다.




어느 영화 대사 속 말마따나, 준비하며 설레는 것도, 여행하며 즐거운 것도, 사진을 정리하며 그리운 것도 모두 여행을 이루는 것들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어느 여행이든 너무 철저하지 않게, 조금은 느슨한 여행의 계획이 여러 불확실한 우연을 통해 어쩌다 의외의 선물 같은 순간을 맞이하게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그런 말랑한 감성적 즉흥의 요행은 바라지 않기로 했다. 아주 철저하게는 아니더라도, 나중에 아쉽지 않을 필수 준비사항은 적다 보니 생각보다 꽤 많았다.


우선,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따라갈 수 있도록 내비게이션에 gpx 파일을 넣어 루트를 생성했다. 최근에 카카오 내비가 자전거 내비게이션 기능을 제공하는데 꽤 유용하다는 평이다. 다음은 가장 중요한 장비, 자전거를 점검한다.


사이클링 컴퓨터 앱(app)을 통해 분석한 전체 경로


자전거 점검은 우선 타이어, 구동계, 그리고 다른 파츠들 순서로 전반적으로 한다. 시간이 충분했다면 인근 자전거 샵에 가서 점검하는 것이 좋았겠으나, 비교적 최근 교체한 자전거라 소모품 상태도 아직 새 제품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어 불필요해 보였다. 그래도 타이어를 비롯해 자전거를 닦아주는 것은 중요하다. 오염물이 묻은 상태에서는 혹시라도 문제가 될만한 요소들을 발견하기 어려우므로, 출발 전 구석 구석 잘 닦아준다. 디그리셔를 이용해 체인의 묵은 기름때를 어느 정도 없애고, 오일을 새로 발라준다.


안전


누군가 나에게 자전거를 타면서 가장 필수적으로 먼저 챙겨야 할 것을 묻는다면 어김없이 헬멧과 후미등이라 답할 것이다. 이번엔 야간 주행이 두 번 포함된 장거리이므로, 헬멧은 밝은 색으로 챙기고 후미등 세 개, 전조등 두 개를 챙겼다. 나를 운전자에게 알려야 그들도 조금이라도 날 비켜 갈 수 있을 테니까. 정확히 통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낮에도 후미등을 점멸하면 도로에서 경적으로 위협하는 차가 많이 줄어든다고 전해지고 있다.


고글은 야간용과 주간용, 두 개를 챙겼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주간과 야간에 빛의 양에 따라 투과율이 변하는 변색 고글을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외에도 혹시 모를 고장이나 펑크에 대비해 간단히 수리할 수 있는 툴도 챙긴다. 챙기면서도, 되도록 이 물건들은 사용할 일이 없기를 바랐다.


펑크를 대비하는 것이 기본이다


편의


작은 수건과 손수건, 물티슈 등은 유용하다. 콧물이 많이 나 한동안 달리다 보면 땀과 콧물로 얼굴이 엉망이 되곤 한다. 여행용 휴지는 오히려 번거롭고 쓰레기 처리도 곤란하므로, 손수건 한두 장과 어쩌다 쉬는 시간에 사용할 물티슈를 챙긴다.


날씨도 대비한다. 밤낮 기온의 차이로 인한 체온 손실을 방지하기 위한 팔 토시는 유용하다. 아직 기모 안감 소재의 긴팔 자전거 옷은 필요치 않을 것 같은 날씨다. 비가 오거나, 산속에서 갑자기 기온이 떨어질 수 있으므로 접어서 작게 보관할 수 있는 바람막이도 챙긴다. 아직 8월의 한여름이므로, 한 낮 햇빛에 화상을 입지 않도록 고체형 썬스틱도 챙기고, 고글도 야간용 주간용 두 종류를 챙겼다. 새들백(안장에 매다는 자전거 여행용 가방)의 용량이 적지 않아 모두 넣어도 충분했다.


칼로리


칼로리는 태운다(calories burning)는 표현을 쓴다. 몸에서 칼로리를 에너지로 바꿔 페달에 얹힌 나의 다리를 돌려줄 것이다. 오르막에서 더 급속도로 타는 이 칼로리는 오로지 먹어서 채울 수밖에 없다. 농축된 형태의 에너지를 젤 형태로 흡수할 수 있는 에너지 젤과 캔디 형태의 포도당, 만약 오랜 시간 보급 지를 찾지 못할 경우를 대비한 양갱과 초코바 등도 여럿 챙긴다. 물통 두 개에 가득 물을 채우고, 그걸 뒷주머니, 보조가방, 그리고 안장 뒤에 매달린 투어 가방에 나눠 넣는다. 달리면서 먹게 될 수도 있다. 괜히 목에 걸려 기침하다가 넘어질 수 있으니, 달리면서는 물과 에너지 젤만 섭취할 것이다.


굶어 죽을 일은 없도록


배터리


초 연결 시대. 자전거 한 대를 타면서 연결된 디지털 기기를 세다 보면 생각보다 많아 놀라게 된다. 자전거는 나의 두 다리로 미는 철저한 기계식이지만 분석, 기록, 안전을 위한 장비들은 디지털이다. 사이클링 컴퓨터(cycling computer)가 대표적이며, 심박수를 체크하는 센서, 자전거에 부착하는 속도와 케이 덴스 센서, 파워미터 등이 이 것과 연결해 데이터를 전송한다. 사이클링 컴퓨터는 작은 몸집 대비 많은 일을 하므로 가장 유용한 디지털 장비이다. 이 또한 충전이 필요하다.


안전을 위한 전조등과 후미등 모두 배터리 충전식이다. 때때로 라이딩 순간을 촬영해 소중한 추억으로 남길 액션캠도 배터리를 쓴다. 스마트폰은 말할 것도 없다. 자전거 자체는 나의 힘만을 태우지만, 이를 도울 많은 장비들은 모두 전기가 필요하다. 전기는 라이더가 만들 수 없지만, 부족함 없도록 준비는 가능하다. 모두 충전을 끝내도 장거리 여행에선 부족할 것을 알기에, 보조배터리와 케이블을 여분으로 챙긴다. 필요하다면, 달리면서도 선을 연결해 실시간으로 전원을 공급해 차질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여기에 더해 전조등과 후미등처럼 필수 용품은 여러 개 챙긴다.


배터리들의 완충과 함께, 나의 출발에 대한 의지도 충전 완료.


기록


올 해가 되며 생긴 목표가 있었다. 많은 것을 경험하기보다 원래 하던 활동을 좀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그 경험을 글로, 영상으로 남기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선 휴대용 카메라가 필요했다. 휴대전화도 있지만 한계가 있다. 자전거에도 단단히 고정되고, 비와 바람 먼지로부터도 안전하며, 가볍고 또 그 목적에 가장 충실한 장비는 바로 액션캠이다. 사고 싶은 모델은 가격이 비싸다는 단점이 있어 그간 미루고 미뤄왔는데, 이번에 부산행을 결심하며 큰 마음을 먹고 구매했다. 이제, 액션캠을 달고 도로를 달리며 눈앞의 풍경, 지나는 풍음, 그리고 내 기억에서 사라질 모든 장면을 사각 제한된 화면에 담아 되짚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영상은 글로 후기를 적는 데에도 도움이 될 거라 믿는다. 장면을 보며 회상하기에 사진도 좋겠으나, 안전을 위해 주행 중 휴대폰을 이용해 사진을 찍는 일은 최소화하려 한다.


안전을 위한 전조등과, 기록을 위한 촬영장비, 그리고 보조배터리


챙긴 것들 중 작은 위생백은 내가 지난 곳에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함이고, 카메라는 내가 지나온 흔적을 잘 담아오기 위함이다.



이렇게 안전, 편의, 칼로리, 배터리, 기록을 위한 도구를 챙기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일의 마무리를 짓는다. 이 글을 시작하는 머리말을 쓰는 일이 그것이다. 프리솔로란 개념을 연결시키고, 이런 일은 인생의 잠깐이지만 또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들 수도 있다는 경각심과 신중함을 함께 일깨운다. 빠르게 실행한다 해도 지나치게 즉흥적이고 들뜬 가벼운 시도가 아니길 바랐다. 자칫 나를 비롯한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는 이벤트가 되지 않도록 하는 일은 실행보다 더 중요했다. 그렇게 이번 도전의 의미와 지향하는 가치를 글로 정리하며 마음가짐을 새로 하고, 또 앞으로 써 내려갈 이야기가 처음 생각한 이 여행의 종착지로 잘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전거로 하루 만에 가기' 두 번째 이야기 <별 볼일 없던 밤>에서는 3번 국도를 타고 성남에서 충주, 문경으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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