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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니스트리 Apr 15. 2022

달리지 못할 이유가 더 많아서

자전거를 스포츠로 접하다 보면 참 이렇게 정직한 운동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자전거는 분명 우리가 더 빠르게, 더 멀리 가도록 돕지만 어디까지나 '나 스스로'가 동력의 핵심이라, 연습과 경험, 충분한 연료(식사)가 없으면 동력(watt)이 운 좋게 생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자전거 상태가 안 좋아서, 내일은 바람이 불어서, 주위에 같이 갈만한 사람이 없어서 등, 매 번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이유로 인해 안 타다가 결국엔 '너무 힘들 것 같아서'에 도달하는 수도 없는 못 탈 이유를 말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떠오르는 책의 구절이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내가 달리기를 말할 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책에선, 매일 하루 10km씩 빠짐없이 달리는 작가 자신이 그렇게 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은 날씨 때문에, 오늘은 몸이 조금 지쳐서, 오늘은 기분이 별로여서, …’ 등, 달리지 못할 이유는 수도 없이 많지만, 우리가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어서, 아마 오늘 달리지 않는다면 평생 달리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이죠. 그리고 이렇게 덧붙입니다.


“매일 달린다는 것은 나에게 생명선과 같은 것으로, 바쁘다는 핑계로 인해 건너뛰거나 그만둘 수는 없다. 매일 쉬지 않고 써나가며 의식을 집중해하는 것을 신체 시스템에 확실하게 기억시켜 놓아야 한다. 물론 이 작업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만큼의 보답은 있다”


또 어느 작가는 누군가가 질문한 ‘글을 잘 쓰는 방법’에 대해, “먼저 자리에 앉습니다. 그리고 PC를 켭니다. 글 쓰는 도구를 열고, 무슨 말이라도 적습니다”라고 합니다. 이게 무슨 잘 쓰는 방법이냐 하겠지만, 작가의 의도는 ‘이런저런 핑계 대기 전에 그냥 앉아서 해. 쓰지 않으면 잘 쓸 수도 없어’라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달리기에 빗대었지만 사실 어느 운동을 포함해 어떤 좋은 활동이든, 그것들의 습관화와 내재화의 길에는 정말 수도 없이 많은 고비와 고민이 있는 듯합니다. 오늘은 이래서, 내일은 저래서 달리지 못할 이유가 너무 많기 때문에, 우리는 늘 자주 ‘초기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지. 오늘도 우리가 달릴 이유는 정말 몇 안되지만 그것은 잔잔하고 또 강렬할지 모릅니다. 양도 적고 처음엔 써 인상을 찌푸리다가도, 나중에 그 진정한 풍미에 사로잡히면 몇 잔이라도 마시고 싶어 지는 ‘에스프레소’처럼 말이죠.

*초기화: 로드 라이더들이 즐겨 쓰는, '자전거를 시작하는 그 때처럼 체력이 너무 형편없다'는 의미의 속어


물론, 사람마다 추구하는 방향과 목표지점에 따라 그 정도가 조금 다를 순 있지만, 이 만성 초기화 극복이라는 것이 이런 것 같습니다. 바람 조금 불더라도 너무 춥지 않으면, 누가 곁에 없더라도 바람 넣은 자전거만 있으면, 단 30분이라도 시간을 내 반바지에 운동화라도 신고 (헬멧은 쓰고) 안장에 올라 페달을 구르다 보면, 그 전보다 분명 더 나아지는 그런 ‘시작’과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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