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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니스트리 May 18. 2022

익숙함과 익숙하지 않음의 조화

'때로는 글을 쓰는 것 보다 몸을 움직이는 일이 더 편할 때가 있다. 선과 점으로 만든 가장 절묘한 발명품인 문자를 일정한 규칙과 형식에 따라 의식적으로 배열하는 일에도 에너지가 필요한데, 대체로는 잘 풀리지 않고 골치 아프게 마련이라, 단순히 이정표를 보고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길 위를 달리는 자전거가 그래서 좋다. 여기에 성취감까지 목적에 더해지면 더할 나위 없는데, 안 가본 곳이라던지 안 달려본 길, 또는 예전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난코스를 공략하는 등의 모험이 그렇다.


해를 넘기며 이유를 알 수 없는 컨디션 난조가 이어졌다. 처음엔 몸살이 오나 싶더니, 귀에 염증이 생기는 외이도염을 겪으며 수시로 오르는 열과 귀 통증을 가라앉히려 먹는 항생제에 무기력함이 이어졌고, 거기에 목부터 어깨로부터 이어지는 통증이 심해 거의 한 달 동안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회사는 나가면서도 집에 오면 약 먹고 침대에 누워 자는 나날이 이어지다, 몸은 자연히 나아져 안장에 올라 페달을 밟아 나가니 그 새 더 쌀쌀해진 공기에 얼굴은 시려도 오히려 가슴을 펴고 바람을 한껏 안을 수 있으니 정체된 공기에 답답한 사무실에서 어쩌다 즐기는 (남이 사준)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시원함은 비할 바가 아니다.


채 끝나지 않은 재미있는 이야기의 전개가 궁금한 것처럼, 아직 덜 추울 때 하고 싶던 약간의 모험이 가미된 자전거 여행을 다시 하고 싶어졌다. 지난 한 해 나의 자전거 여행의 여러 기념할만한 일들을 꼽자면, 친구와 밤 새 거미줄 가득한 자전거길을 달려 충주에 다녀온 일과, 하루 만에 부산에 가는 400km 랜도너를 20시간 안에 완주한 일, 그리고 집에서 가평까지 왕복 약 270km 코스 완주와 제주도 한 바퀴 180km를 시계 반대방향으로 일주한 일 등이다. 많이 달렸고, 많은 추억을 남겼다. 어떤 길은 함께 달렸고, 많은 거리를 혼자 여행했다. 올 해는 어떤 즐거운 이야기가 도로 위에 쓰일까?'


... 이런 글을 연 초에 적었었는데, 사이버 공간이라 다행히 먼지는 쌓이지 않은 글을 서랍에서 꺼내 세상에 내보내려 하니 요즘 달렸던 도로의 기억은 애초에 마음먹었던 모험과는 다소 달라 보인다. 커피를 닮은 자전거 모임을 시작했고, 서로 몰랐던 사람들과 많은 길을 함께 달렸다. 서로 익숙하지 않은 이들과는 다소 익숙한 길을 가는 것이 조금은 마음이 편하다. 익숙하지 않음으로부터의 설렘은 사람이든 길이든, 한 곳에만 있어도 충분하다. 그렇게 조금씩 어느 한쪽이라도 익숙해지면, 함께 새로운 길을 만들어갈 때가 아마도 오지 않을까?


'새로운 길은 혼자 헤매자'는 마음으로, 새로운 사람들과의 여행에서는 아직 더 멀리, 더 높이, 더 새로운 길은 가지 못했다. 대신, 새로운 모임에서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과 달리는 익숙한 길에서의 이야깃거리는 한동안 계속 쌓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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