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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니스트리 Aug 24. 2022

강이 굽은 이유

서울에서 문경 이화령까지 자전거로 가기 (2/2)

"어째서 강이 굽이굽이 휘어져 있는지 아시나요? 물이 높은 곳은 피해서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미치오 슈스케의 장편소설 <수상한 중고상점>에서 주인공은 포기의 기로에서 갈등하는 한 여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 여인은 자신이 시작한 일이 너무 힘들어 돌아가고 싶지만, 그렇게 실패의 인생을 산다는 오명과 자책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스스로 명분을 만들어야 하는 고된 갈등 속에서 헤매는 중이었다. 주인공은 이렇게 덧붙인다.


"그래서 강은 이렇게 구부러지면서 뻗어나가지요. 이 강은 특히 더 그렇습니다. 좌우로 심하게 구부러져 있어요. 하지만 정말 아름답지 않나요?"


우리가 달렸던 길을 닮았다.


← 1편 <비라도 왔으면>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지연이 아닌 유연


출발하기 전에 충주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로 복귀할 계획으로 버스 티켓 네 매를 예약했었다. 충주에서 서울로의 상행은 좌석이 여유롭고 편성된 편수도 많아 안심이지만, 그래도 버스에 자전거를 싣는 것을 고려하면 미리 좌석 확보를 해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사실 버스를 굳이 예약할 필요가 없을 만큼 충주에서 서울로 가는 버스의 편수와 여유 좌석은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버스가 많다는 것은 선택의 여지가 많다는 것이고, 또 그만큼 중간에 불필요한 여유로 시간을 낭비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미리 예약한 티켓은 마치 약속의 시간처럼, 동기부여가 되기도 할 터였다. 이런 생각으로 처음 세운 계획대로 좀 타이트하게 시간 관리를 하려 했지만, 예상치 못했던 폭염에 모두 지쳐가기도 했고, 또 크고 작은 변수들 탓에 예상보다 2시간 정도 여유를 두고 버스 예약 시간을 조정하게 되었다. 그 두 시간의 유연한 선택은 좀 더 힘을 내 마지막까지 여정을 마무리하게 하는 동력이 되었다. 그런 휴식이 되었다.



#기분 좋은 에너지


공도만을 타고 갈 수도 있지만 일부러 코스에 새재 자전거길을 넣었다. 새재 자전거길은 충주보에서 수안보를 지나 이화령까지 가는 가장 느리고 먼 길이지만, 문경 팔봉 등 병풍처럼 펼쳐지는 이색적인 풍경과 산세가 아름답고, 차량이 많지 않은 숲으로 난 아스팔트 길이 이어져 그간의 지친 여정의 마무리로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이 길은 곧 만날 이화령 오르막 전 웜업과 힐링 코스로 괜찮겠다고 여겼다. 여기부터는 그동안 보이지 않던 라이더들을 간혹 보게 되었다. 우리와 같은 로드 자전거를 탄 라이더는 별로 없었지만,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큰 무리의 MTB 라이더분들의 호루라기 응원 소리도 들을 수 있어 반가웠다. 묘하게 힘이 나는 느낌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서울에서부터 달려왔다는 사실을 모르겠지만, 우리들의 무대에선 꼭 피날레를 향하는 기나긴 대회 끄트머리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의 응원 누군가의 인사 등, 여행 중 마주친 이들과의 교감은 대체로 기분 좋은 에너지가 된다.



#돌아가긴 뭘 돌아가


소조령 업힐(uphill)을 지나면 대망의 이화령이 나온다. 그전에 마땅한 편의점이나 매점이 없어 물통이 가벼워지는 만큼 늘어난 마음의 무게가 부담이었는데, 소조령을 내려온 직후 마을 초입의 한 슈퍼를 발견해 반가웠다. 일행과 둘러앉아 사온 음료와 아이스크림으로 목을 축이고 있었다.


"그냥 이화령 오르지 말고 돌아갈까"


쉬던 일행이 농담조로 말했다. 그런데 막상 나 조차도 그 말이 썩 말도 안 된다 여기지 않았다. 이미 더위와 오래 달려온 길에 빼앗겨온 힘이 얼마 남지 않았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냥 거기 주저앉아 쉬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가고 싶은 사람들은 다녀오면 된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이곳에서 만나 터미널로 돌아가면 될 테니까. 옆에서 듣고 있던 슈퍼 아주머니가 말한다.


"돌아가긴 뭘 돌아가. 여기서 3킬로, 이화령 4.7킬로, 얼마 안 남았어. 여기까지 왔는데 아깝지. 오르막이 좀 힘들긴 해도 …"


당연한 말씀을 당연하게 하지만, 그로 인해 확실히 목표의식에 자극이 되었다. 그간 이 분은 얼마나 많은 우리와 같은 처지의 라이더들을 보셨을까. 얼마나 많은 포기한다는 우스갯소리를 듣고, 또 얼마나 많은 도전의 눈빛을 보셨을까? 종이컵은 서비스! 를 외치는 아주머니의 센스 넘치는 배려에서, 그 세월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불청객


'함께여도, 혼자여도, 결국 오르막에선 혼자가 된다'


평지는 함께 달릴 수 있어도 언덕길에선 그러기 쉽지 않다. 고도로 훈련된 팀은 가능할지 몰라도 오르막에서는 한번 벌어진 차이를 메꾸기 어려우므로 각자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무리하지 않고 올라가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경쟁을 할 일이 아니므로, 오르막을 오르며 각자의 한계치를 넘나들며 카타르시스를 온몸으로 느끼는 것을 대부분의 라이더들은 목표로 할 것이다. 이화령으로 접어들고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도 이화령은 예뻤다. 봄과 여름, 두 계절의 이화령은 그러나 매력이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매력을 온몸으로 느끼고 힐링하기에 체력이 너무 고갈된 느낌이다. 한 번, 또 한 번의 페달질에 집중하면서, 체력의 두께가 얇아져 더 예민해진 신경세포로 최대한의 숲 속 라이딩을 즐기는 것 외에는 다른 할 일이 없었다. 느리게, 그러나 쓰러지지 않고 이어갈 정도로만 달리다 보니 이미 앞뒤 동행과는 거리가 벌어져 완벽한 혼자가 되었다. 이 자체로 나쁘지 않다, 고 생각했다. 3.몇 킬로미터쯤 남았을 무렵, 옆에서 여유롭게 말을 거는 누군가가 나타나기 전까지.


"앞에 먼저 간 일행 있어요?"


"네, 한 명 있어요"


얼마나 멀리 갔는지를 묻는 말에 사실 쉽게 대답을 하기도 어려운 상황임에도 대답을 했다.


"떨어진 지 오래됐어요, 한 2-300미터쯤?"


"그러면 저랑 같이 올라가시면 되겠네. 반가워요."


그렇게 말하며 숨조차 흐트러짐이 없는 그에 비해 나는 그다지 반색할 기운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의 입에서 끊임없이 말이 흘러나왔다. 조금 전까지 내 숨소리, 페달 구르는 소리, 거기에 어우러지는 나뭇가지 소리와 새 지저귐 소리가 어우러져 고통을 가려주고 있었는데, 옆에 딱 붙어서 끊임없이 내뱉는 아저씨의 말소리는 소음 이상이 아니라고 느껴졌다. 그럼에도, "같이 올라가면 금방이에요. 혼자면 한도 끝도 없지"라며 자신이 썩 친절한, 그리고 실력 있는 라이더라는 것을 애써 강조하며 말을 건네는 그에게 배려해줘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그렇게 십여분을 따라오다가 정상을 몇 백 미터 남기고 바람처럼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향해.

'아무리 그래도, 150km를 달려온 입장과는 다르지'. 아래에서 좀 더 충분히 쉬고 올라갈걸, 하고 잠시 생각도 했다.


'앞에 먼저 간 일행이 있는지'를 물으며 접근했던 이유를 나중에 알게 되고는 그의 행동이 사실은 그의 고약한 취미 때문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뿐만 아니라 이화령 초입부터 만나는 라이더마다 같은 질문을 했고, 앞선 일행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바람처럼 멀어져 또 그 앞선 일행에게 동일한 질문을 했다는 것을 모두로부터 들었기 때문이다. 마치 ‘도장깨기’처럼 고약한 취미인 셈이다. 그런 의도가 아니더라도 이미 최선을 다해 오르고있는 라이더들에게 계속 질문하며 호흡을 흩트리는 것은 실례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들은 그의 말상대로써의 시간을 강요당하는 대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므로, 다음에 만나면 이야기해주고 싶다. 당신에겐 하루에도 몇 번을 오르는 흔한 경험이겠지만, 그 먼 거리에서 찾아온 이화령이 우리에겐 단 몇십 분의 짧은 경험이라고. 그래서 소중하고, 그래서 방해받고 싶지 않은 시간일지 모른다고.


자전거 타는 이에게 혼자 남았어도 외롭지 않은 길이 산길이라고 생각한다. 혼자 충분히 즐길 가치가 있는 공간이고, 떨어져도 결국 한 곳에서 다 같이 모일 수 있으니까. 어느새 정상에 다가가며 느끼는 희열에 더해 반가운 사람들과 나누는 인사 -


"수고하셨습니다"


잔뜩 찡그린 얼굴로 거친 숨과 함께 해도 반가운 그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가방 공동체


그럼에도 이화령에서 만난 아저씨의 팁(tip)은 썩 그럴듯했다. 다시 충주로 돌아갈 것이 아니라, 그대로 내려가 문경이나 점촌에서 버스를 타는 것이 여러모로 나아 보였다. 충주로 돌아가려면 다시 소조령을 거꾸로 올라야 하는데, 현재 체력 상태로 조금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충주행으로 계획한 이유는 애초에 문경행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충주가 훨씬 큰 터미널이라 버스 편수가 많기 때문이었다. 남은 거리 40km 이상. 거기에 조금의 언덕. 대신에 문경은 훨씬 가깝고 점촌으로 가더라도 내리막 위주의 길 2-30km 정도를 달리면 된다. 우리 대부분은 반색했다. 남은 거리가 줄어든다는 것은 이화령의 감동을 진하게 남길 선택지로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찾아보니 점촌 터미널에 원하는 시간대의 버스도 있었다. 그런데 곧 불가능한 계획임이 드러났다.


"저, 제 가방은 …"


일행 중 한 분이 메고 온 가방이 이화령 긴 언덕길에서 부담이 될까 지나온 길 어디쯤 풀숲에 숨겨두고 온 것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반색했던 모두의 얼굴은 우리가 여행 내내 그토록 바라던 그늘처럼 어두워졌다. 나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여기서 점촌이나 문경 멀지 않으니, 그쪽으로 가셔서 복귀하실분은 그렇게 하셔도 돼요"


굳이 충주행으로 고생을 좀 더 사서 할 것이 아니라, 원하는 분들은 내리막만 가면 도달할 버스 정류장으로 가도록 배려한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아무도 동의하지 않았다. 가방을 찾아 원래의 목적지로 가는 것은 모두 함께여야 한다고. 그게 이유였다. 한 사람의 가방은 이제 모두 찾을 미션 아이템이 된 셈이다.


충주 터미널 버스 정류장에서, 이 오랜 여정을 함께 했던 동행들과 나눠 마신 맥주 한 모금의 기가 막힌 청량감은 아마 완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이화령 정상에서 나뉘어 각자의 길로 가는 지나치게 '현명한' 선택을 했었더라면.




돌아오는 버스에서 생각했다. 이 여정이 아무런 제약도 없이 그저 쭉 뻗은 길을 정한 시간에 정한 목표점에 도달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런 과정이 존재는 할까 하고. 솟아 오른 암벽 사이로, 이런저런 장애물들을 피해가며 생겨난 물길이 더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듯, 우리의 과정도 꼭 그걸 닮아 이화령의 기억을 그 이름마따나 '배꽃'처럼 예쁘게 만든 것은 아닐까. 함께 했던 사람들과 함께 만든 그런 이야기들처럼.


집에 돌아오니 전날 배송시킨 야광 조끼와 발광 암밴드가 포장도 뜯지 않은 채 있었다. 심야 라이딩을 위해 준비했던 안전 대책이었다. 이걸 앞뒤로 나눠 입고, 환하게 불을 밝히고 라이딩을 할 계획이었다. 그러지 못했지만, 이 자체로 더할 나위 없는 여행이었음은 분명했다.


1편 <비라도 왔으면>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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