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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니스트리 Jul 26. 2022

잊히는 아픔과 오래 남는 흉터

SNS 비판의식, 그리고 개발자 채용 이야기

얼마 전 링크드인에서 한 포스트를 보고 문득 예전 학창 시절의 일이 떠올랐다. 학년은 기억나지 않지만 중학생 때였는데, 칠판 앞에 불려 나가 어떤 문제의 주관식 답을 적도록 시킨 선생님은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글자 하나, 띄어쓰기 하나에 내용 건건이 틀릴 때마다 지적을 하며 회초리로 다리를 툭툭 때려 부끄러워 얼굴이 귓불까지 빨개졌었다. 아마도 당시 정성을 쏟지 않은 준비로 미완성의 답변을 낸 스스로의 탓이 컸겠지만, 그런 식의 망신주기가 과연 학생의 학업 성취와 발전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선생님의 그러한 행위가 부적절했다고 생각할 이유는, 아마도 마이크로 티칭이라는 문제적 교육법이라기보다는 ‘공개적인 지적과 체벌’이라는 불합리하고 불필요한 훈육방식이 아니었을까? 나이가 들어 성인이 되었고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아직도 가끔 그 일이 생각이 난다. 그 일이 떠오르게 하는 건, 그와 비슷한 사례를 접하거나 고압적인 태도의 동료로부터가 아닌, 교실 앞 칠판보다 더 넓고 더 많은 타인이 존재하는, 소셜 네트워킹이라는 오픈된 공간에서 간혹 보는 비판 유형의 포스팅들이다.


최근 보게 된 한 포스팅에서는, 어느 개발자께서 자신이 받은 채용 콜드 메시지(cold message)를 공개하며, 해당 DM을 보낸 채용 담당자가 얼마나 성의 없이 메시지를 보냈는지를 지적하고 있었다. 원문 메시지를 민감할 수 있는 주요 내용을 가려 이미지로 첨부한 형태였다. 최근 개발자 직군의 채용 수요가 많아 채용 시장이 전쟁이라, 아마도 해당 글을 올린 당사자는 다른 직군보다는 콜드 메시지를 더 많이 받고 있었을 것이다. 내용이 흥미로워 살펴보았다. 어떤 불합리함이 이 분이 귀한 시간 내어 직접 이 공간에 확성기를 잡게 했을까?


대체적인 내용은 이렇다. ‘늘 그렇듯, 리크루터나 헤드헌터로부터 많은 수의 메시지를 받고, 그 메시지들이 때로는 정성스럽지 않거나, 본인의 이름과 직무 등 기본적인 정보들이 틀리곤 해서 이젠 그러려니 넘어가고 있는데, 이번에 받은 채용 제안 메시지는 본인의 이름을 두 번이나 틀리고, 포지션이나 근무조건 등이 명시되지 않은 너무 성의 없는 메시지라서 화가 났다’라는 것. 약 300자 정도 되는 꽤 긴 글은 근거를 조목조목 정리해가며 그 메시지와 그것을 보낸 이를 촘촘하게 지적하고 있었다. 근거가 숫자로 정리된 내용은 설득력을 갖게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분들이 ‘좋아요’와 댓글로 공감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문구가 나에게 확성기를 쥐어주었다. 그걸 읽고 나서는, 한동안 한숨이 나올 만큼 좀 기운 빠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 기본조차 못 갖추는 건 아니라 생각해요. 너무 글이 길었으나, 해당 메시지를 보내주신 1촌님, 저는 프런트 엔지니어 OOO입니다”


 한마디가 방점을 찍었지만 전체적인 내용 전부가  메시지 발신인의 ‘기본적인 자세 질책하고 있었다. 댓글들은  발신인이 알바일 것이다, AI 로봇일 것이다, 또는 어느 국가의 소수민족 노동자일 것이다  비난과 조롱의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메시지를 많이 받은 개발자란 직군, 그리고 그동안 쌓이고 쌓였던 분노, 그래서  확성기...라는 것인데, DM 보낸 채용 담당자가 성의가 없어 보일 정도로 실수가 많았고, 그래서 정작 중요한 메시지를 놓쳤을지 모른다고 해도, 그것이 본인에게 어떤 피해를 줬고 분노하게 했는지는 이해되지 않았다. 해당 플랫폼의 메시지 보관함이 유료인 것도 아니고, 맘에  드는 메시지 또는 내용이라면 무시하거나 보낸 이에게 직접 회신하면 그만일 것이다. 만약 나였다면? 하고 가정해 보니 직접 답변으로 (다소 부드러운 말투로) 정정하거나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  이외에는 방법도 떠오르지 않았다.


비판과 비난이 개별 네트워크에서 공개된 SNS로 옮겨오며, 무한에 가깝게 넓어진 무대 위 마이크의 울림과 공감의 크기에 심취되는 대중 심리를 잘 안다. 더는 어떤 불합리에 대해 혼자만 감당하며 삭이지 않아도 되고, 같은 직종과 연령대의 사람들로부터 더 많은 공감을 받을 수 있으니 썩 위로도 된다. 그리고, 나보다 더 힘이 센, 영향력이 큰 존재로부터 당한 부당한 사례들을 공유하고, 공감받고, 위로하고, 위로받고, 어떤 경우에는 더 나은 해결책을 도출하는데 SNS란 무대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공간이라는 것도 틀림이 없다. 디지털 세상의 오픈 커뮤니케이션은 메시지의 가치가 그 지위나 채널 점유자가 아닌, 스토리를 가진 (부지런한) 이들이 골고루 누리도록 재분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도 분명하다.


그 공간을 잘 못 사용하면 분명 그로부터 상처를 받는 이도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많은 사례에서 깨달을 수 있다. 반문을 할 기회도 없이, 자신의 일상인 콜드 메시지에 가득 담았던 따뜻하고 예쁜 말들을 이루던 자음과 모음이 칼날이 되어 날아와 박히는 것을 해당 TA뿐 아닌 우리 모두가 경험할 수 있다. 더 건강한 소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법칙으로 정하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의 인식 개선과 암묵적 질서는 필요하다고 생각 다. 이제는 어떤 불합리함 혹은 부당함을 알리고 개선하는데 우리에게 주어진 이 멋진 공간을 주로 사용하고, 그냥 너그러이 지나가도 우리 삶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개인의 실수에 대한 공개적 조롱은 사적인 대화의 장으로 옮기는 것이 어떨까? 내가 쥔 확성기에 사람이 모여도, 결국 그 외침은 일상에 쉬이 잊히게 마련인 반면 누군가 가슴의 상처와 응어리는 좀 더 오래 남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자면, 어쩌다 피플팀에서 TA분들과 함께 일하며 느끼는 점은, 그들은 환영받지 못하는 방문 판매사원이 아닌 기회를 제안하는 사람들이고, 회사에 부족한 코어 리소스를 지속적으로 영입하는 수혈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모르는 분야도 끊임없이 배우며 채용에 나서는 프로이자, 한 시대 한 국가의 좁은 산업계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라는 점이다. 당장 비 정상적으로 양적 자본적 팽창 중인 플랫폼 산업 때문에 개발 리소스가 부족해지며 엔지니어 채용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그 와중에 어쩔 수 없이 갑과 을 같은 불필요한 가치 쏠림이 생기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같은 테크 분야 리크루터라 해도, 분야를 세분하다 보면 다른 분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제안 자체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산업과 상황의 한계인 것이지, 우리의 동료가 그 직업을 대충 대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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