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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니스트리 Jul 26. 2022

누군가의 배려가 채운 공허

“여기 어쩌다 한 번씩 온 것 같은데, 오늘 유독 붐비고 자리가 없네요?”


“그러게요, 이러다가 서서 먹는 거 아니에요?”


지난 주말에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밀크티와 케이크를 사서 들고, 빈자리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던 그곳은 잠실에 위치한 대형 쇼핑몰의 티(tea) 전문점이었다. 지나치게 덥고 습한 날씨 탓에, 밖에 나가지 않고 전철역과 연결된 해당 쇼핑몰의 실내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는데, 문제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점과, 과거에 한번 와서 꽤 만족스러웠던 기억을 가지고 있던 그 카페가 사실 공간에 비해 자리가 많지 않다는 점이었다. 메뉴를 주문하는 카운터 앞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줄을 보고 다른 카페를 기웃거려도 봤지만, 결국 다시 돌아온 것은 다른 곳의 상황이 이곳보다 더 낫다고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항상 사람이 들고 나고, 또 자리 회전이 빠른 곳이니 우선 줄을 서 메뉴를 주문하고 자리를 찾아보기로 했다.


줄을 선 시간에도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그간의 근황과 안부, 그리고 이런저런 사담을 이어갔다. 그러면서도 주위에 빈자리가 혹 보이지 않는지 두리번거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줄은 점점 줄어 우리 차례가 다 되어 가는데 자리는 여전히 눈에 띄지 않았다. 마치 놀이공원에서, 놀이기구 탑승 대기줄을 세워두고 화장실에 다녀온다던 엄마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지만, 어느새 내가 탑승할 순서가 거의 다 돼 혼자 타게 될까 발을 동동 굴렀던 그 기억 속 장면 같았다. 결국 우리는, 차와 케이크가 올려진 쟁반을 든 채 정처 없는 유목민처럼 떠도는 상황이 되었다. 사람이 많다고 돈을 적게 내는 것도 아닌데, 종이컵에 담긴 음료 한잔과 손바닥 반만큼도 안 되는 케이크, 그리고 작은 싸구려 플라스틱 포크가 그 가치보다 더없이 무겁게 느껴졌다. 방문객의 밀도가 높아지는 만큼 고객 한 명의 가치는 떨어지는 셈이다. 유목민들은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며 떠돌고, 자리에 가까스로 앉았을 정착민들은 그들의 자유를 온전히 최대한 길게 누리며 그들의 자원(커피)이 이미 오래전 동났음에도 통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어느 한 편 좌석에 한 커플 방문객이 마스크를 착용하려는 모습이 보여 자연스레 그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스크. 최근 몇 년 새 팬데믹으로 모두의 필수품이 되었고, 최근에는 밖에선 쓰지 않아도 된다는 반가운 정부 방침이 있었지만 여전히 실내에선 착용해야 해 필수품인 그 물건은, 무언가를 먹고 마시는 과정 중에는 착용할 수 없어 대체로 카페나 식당의 좌석에선 벗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니, 마스크를 다시 쓴다는 것은 먹고 마시고, 또 대화하는 시간이 끝나 카페 밖으로 이동한다는 의미이므로, 빈자리를 찾던 우리는 그리로 자연스레 향하게 된 것이다. 그래도 아직 자리를 뜨지 않은 분들께 혹 실례가 될까 싶어 그로부터 두어 걸음쯤 떨어진 곳에서 잠시 기다리게 되었다. 자리를 찾느라 흐름이 끊겨 대략 어색한 이 상황의 종료이자 평화의 시작은 곧 이어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들이 자리를 뜨려는 그때, 예상치도 못한 어떤 이의 손이 쑥 하고 나타났다. 그리고 거의 던져지듯 테이블 위에 떨궈진 핸드폰. 그렇게 자리의 점유는 우리가 아닌 불현듯 나타난 팔과 핸드폰의 주인이 스리슬쩍 하게 되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눈 깜짝할 새'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싶었다. 나와 지인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고 할 말을 잃은 채 다시 그 자리를 봤다. 분명 그 자리는 수 초 전까지 누군가 앉아 있었고, 그들은 곧 자리를 떠날 예정이었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초 근접한 거리에 서 있었으며, 눈은 계속 자리를 주시하고 있었다. 주위에 우리 말고는 그 자리에 더 가까이 있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원래 앉아있던 두 사람 중 마지막 사람이 일어서던 그 찰나에, (우리는 당연히 그들이 자리를 완전히 비운 다음에 가서 앉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매우 발 빠르게 이동해 핸드폰을 먼저 내던진 그가 자리를 선점했던 것이다. 그가 동행으로부터 받았을 칭찬보다 더 따가웠을 우리의 눈총은 이미 관심 밖인 듯했다. 이미 녹기 시작한 밀크티의 얼음과는 달리 점점 더 차갑게 식고 있는 마음 때문인지 황당함이 분노로 이어질 뻔했으나, 그렇게 눈도 마주치지 않고 스윽 들어와 자리를 선점한 그들에게 딱히 뭐라 할 말도, 또 언쟁을 일으킬 명분도 떠오르지 않아 그대로 다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손에 거의 다 쥔 것을 빼앗긴 것보다 더 아쉽고 분한 일이 있을까? 아쉬움이 아닌 분노였던 이유는 아마도, 우리는 타인에게 지키려 했던 일상 속 ‘매너’ 혹은 '배려'라는 것으로부터의 배신감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그들에게 따가운 눈길을 보낸 사람은 우리 말고도 더 있었다.


일행이 나를 이끌고 한쪽을 가리킨다. 그쪽을 바라보니 다른 커플 일행이 우리를 눈짓으로 부르고 있었다. 그들은 분명 눈으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 곧 일어나요, 이 자리로 오세요’


그 고마운 남녀 중 한 여성분은, 우리가 조금 전 빼앗긴 그 자리를 바라보며 좌우로 고개를 젓고 씁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우리의 기다림, 거의 비워진 자리, 그리고 누군가의 뻔뻔한 새치기 전 과정을 지켜본 듯했다. 그들은 우리를 콕 집듯 가리켜 자신들의 자리로 이끌었고, 그 배려심 넘치는 양보로 지친 다리를 쉼과 동시에 마음의 위로를 받았다. 허공에서 쑤욱 나타난 팔과 거기 달린 손이 던진 핸드폰의 주인으로부터 받았던 불쾌함이 다소 가시는 그런 위로를 건네곤, 감사하다는 말에 화답하며 자리를 뜬 고마운 사람들.


예전에 부모님 세대의 어른들을 만나면 공공질서에 대해 경험담을 들려주시곤 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주로 있었던 일인데, 빈자리가 있어 앉으려는데 멀리서 가방이 날아와 나보다 먼저 자리에 도착해 있더라고. 원래 내 것을 빼앗긴 기분이어서 무척 화가 났다고. 그리고 그런 이야기 끝에는 늘, “삶이 어렵고 여유가 없었어서 그래. 요샌 그런 일 거의 없지? 풍족한 시대에 태어나 사는 걸 감사하게 여겨”라고 덧붙였다. 틀린 말 하나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번 일을 겪고는 과거 어른들이 했던 이야기가 조금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그래, 그 말이 틀리지 않아’라는 공감이라서가 아니라, ‘요즘도 딱히 사람들의 마음에 여유가 있지는 않는 것 같다’라는 씁쓸한 생각 때문이랄까. 풍족하든 아니든, 몰염치가 성행하는 시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닌 듯하다.


그래도 이번 에피소드를 적는 곳이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 즉 한 번의 허전함을 누군가의 배려가 채운 기울지 않은 노트 위라서 다행이다. 건물의 큰 문을 빠져나가며, 뒤에 올 사람이 혹 세게 닫히는 문에 피해를 입진 않을까 잠시 문손잡이를 잡은 손을 놓지 않는 누군가의 배려가 작은 위로 같은 감사함이라서 또 다행인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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