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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니스트리 Mar 16. 2023

분위기의 맛

"여기 커피 얼마게요?"


- 꽤 비싸지 않아?


"맛은 어때요?"


- 괜찮네, 맛있어


"이거 한 잔에 2900원"


- 오잉? 엄청 싸네!



모처럼 따스한 햇살 눈부신 오후, 집 근처를 찾은 어머니와의 대화다. '해머스ㅇㅇ' 카페는 즐겨 찾는 곳 중 하나다. 비교적 최근에 개발돼 주변 정리가 어느 정도 끝난 동네라 그런지 개인이 만든 스페셜티 카페를 찾기 힘들다. 대신 대중적으로 검증된 프랜차이즈는 여럿 있다.



프랜차이즈 카페가 좋은 것은 적당한 품질의 원두를 대량으로 로스팅해 그 원가를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이 프랜차이즈 카페의 성지인 것은 한국인 특유의 커피 선호도 그 이유가 있다. 한국인은 대체로 '묵직한 바디감에 고소하고 초콜릿 아로마가 가미된 커피'를 선호한다. 산미가 강한 커피는 상대적으로 꺼린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산미가 강하고 향이 독특한 커피는 고급 품종이 대개 그렇다. 한국에선 단일 원두가 아닌 블렌디드(여러 품종을 섞음), 그리고 대량 유통되는 적당한 품질의 커피로도 충분히 대중의 요구를 충족할 수 있다.


'해머스ㅇㅇ'의 커피는 '컴ㅇㅇ커피'나 '메ㅇ커피'에 비해 결코 비싸지 않다. 그리고 맛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컴ㅇㅇ커피나 메ㅇ커피의 경우 '저렴한 패스트 커피'라는 인식이 강한데, 해머스ㅇㅇ커피는 왠지 고급 같다. 가격을 말하자 놀라던 어머니의 눈이 증명한다. 무슨 차이일까?


솔직하기까지 한 해머스미스 (해머스미스 홈페이지)


커피의 품종, 로스팅 방법, 유통 및 보관의 차이도 물론 있을 수 있겠지만, 이러한 조건들이 크게 다르지 않다면 차이를 만드는 열쇠는 '분위기'일 수 있다. 묘하게 '에르ㅇㅇ'을 닮은 브랜드 패키지와 이를 적용한 카페의 실내 인테리어, 그리고 조명 등 장식이 방문자의 오감을 거쳐 맛에 대한 인지에 작용했을 것이다. 방문자가 느끼기에 편안한 분위기와 더불어 친절한 점원을 만났다면 빼 달라고 요청한걸 잊고 시나몬가루를 가득 뿌려 내어 준 카푸치노라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후루룩 마실 수 있을 것만 같다.


언젠가 들른 강남의 한 카페 가베도는 미스터션샤인의 무대 세트를 연상시키는 근대적 인테리어가 인상깊었다. 널찍한 마룻바닥 위 듬성듬성 배치된, 각기 다르지만 묘하게 어울리는 테이블과 의자들은 어딜 앉아도 다른 좌석이 더 좋아보여 몇 번 자리를 옮겨가며 커피보다 분위기를 마셨던 기억이다. 커피 맛도 물론 부족함 없었다.


빛이 완성한 커피 @가베도, 신논현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목구멍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겠어!"


유명하대서 찾아가 길게 줄을 서 기다렸던 은마상가 칼국수집에서, 엉덩이 한쪽만 한 좁은 의자에 걸터앉아 모르는 사람들과 합석해 눈칫밥을 먹던 동료가 허겁지겁 젓가락을 놓으며 했던 말이 떠오른다.


분위기는 맛을 지배한다.



(표지사진: UnsplashClem Onojegh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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