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번화가를 거닐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사주 카페' 간판을 보고 한 편의 기억 조각을 꺼냈다.
"예전에 여기 어딘가에서 같이 사주 봤던 것 기억나? 그때 그분이 '자네는 부잣집 며느리가 되어 평생 미용실 사우나나 다니며 살 팔자'라고 했잖아"
대기업에 다니는 커리어 우먼으로 참 열심히 삶을 개척하며 살아가는 친구는 '그래서 내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도 말라고 했었지!' 라며 웃는다.
그때를 선명히 기억한다. 당시 이제 4-5년 차 젊은 직장인이었던 둘은 종종 만나 인생 고민을 나누곤 했다. 직장, 자기 계발, 결혼, 노후 준비... 어느 것 하나 시원히 풀어갈 힌트가 보이지 않아 참 힘들다며 넋두리로 시간을 보내다가, 그럼 사주나 볼까 하고 찾았던 사주 카페였다. 친구는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새 차를 뽑으면 막걸리 붇고 절하고, 굿판은 쉽게 벌이면서도 교회에서 하는 기도는 영 마뜩잖게 생각하거든, 그게 참 아이러니해"
친구는 그로부터 몇 년 사이 종교를 갖게 됐고, 그곳에서 답과 위안을 얻는다 했다.
"나이 마흔을 앞두고 보니 '불혹'이라는 게 참 야속하더라. 공자님은 마흔을 그렇게 정의해 이리저리 혹하고 쉬이 흔들리는 걸 부끄러워 인정하지 못하게 한 셈이잖아"
갑자기 소환된 현자(賢子)껜 죄송스러우나 종교도 없고, 털어놓을 마땅한 사람도 용기도 없어 스스로 삭이기만 오랜 고민이 많아 나이가 들수록 쌓인 마음의 적체를 해소하지 못함을 실감하게 돼 푸념한 것이었다.
친구는 종교를 그래서 갖게 된 듯하다. 묻지도 않았는데 하는 자기 이야기가 TMI(to much information, 환영받지 못하는 관심 밖의 이야기)가 되는 사회 풍조에서, 적어도 내 고민 넋두리 들어줄 누군가가 그곳에는 있었다고 했다. 그게 신이든, 사람이든.
친구는 그럼에도 나를 포함한 누구에게도 종교를 애써 권하지 않는다. 그래서 부담 없이 만나며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최근 실패한 사랑 이야기도 했다.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 후련은 해졌다. 이전까진 마치 고장 난 장(腸)처럼 시도 때도 없이 들쑥날쑥 드는 잡념에 힘이 들 때마다, '그래도 장은 화장실이라도 있지 내 머릿속 변덕은 어디서 고쳐야 하나'며 자괴하던 요즘이었다.
불혹에 더는 혹하지 않고 생각의 중심을 잡기는 커녕, 더 소심해지며 이리저리 흔들리는 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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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오늘 들렀던 한 카페 (사진은 내용과 관련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