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체크인 #1
현재 베를린의 하늘은 맑고 기온은 섭씨 23도 안팎으로 너무 덥지도 서늘하지도 않은 적당한 가을 날씨다. 이전까지 기억에 베를린은 조금 흐린 이미지였다. 20여 년 전, 해가 짧은 겨울에 독일을 들렀을 때 분단 극복과 화합을 기념하는 베를린 장벽 공원에 전시된 콘크리트 조각들을 조금 흐린 하늘을 배경으로 마주한 것이 첫인상이었기 때문이다. 이곳에 도착하기 전 두어 달 계속 흐리고 비가 왔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칫 잘못하면 두 번의 흐린 기억이 베를린을 계속 덮고 있을 뻔했다.
‘장벽이 무너뜨리니 화합의 미래가 보였다. 마음의 장벽을 무너뜨리니 갇혀 있던 내가 보인다’
복잡한 국제정세나 정치적 셈법은 잘 모르겠지만, 많은 이들은 무너져간 베를린 장벽을 도약의 계기로 기억한다. 동독과 서독은 첨예한 대립을 무디게 갈아 미래를 연마했고 그 결과 두 번의 전쟁, 두 번의 패배, 한 번의 분단을 겪고도 유럽은 물론 세계의 경제에 큰 영향을 끼치는 부유한 나라가 되었다.
아직 많은 이들을 경험한 것은 아니나 독일 사람들은 친절한 편이 아닌 듯하다. 민족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합리적이며 때론 약간의 권위의식마저 느껴진다. 실제로 베를린 행사장에서 만난 현지 거주 한국인에게 공항에서 경험한 공무원의 원칙주의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이렇게 말한다.
오자마자 바로 독일을 경험하셨네요!
현대 건축 디자인의 시초라 불리는 독일 바우하우스의 역사를 전하는 박물관 ‘바우하우스 아카이브(Baushaus Archiv)’는 베를린에 위치해 있다. 브란덴부르크문 서쪽, 티어가르텐 남쪽에 위치한 바우하우스 아카이브는 공사현장을 일부 개방하고 방문객들을 위한 사이트뷰 포인트를 설치해 뒀다. 방문객들은 이곳에서 재미있는 홀로그램 망원경을 통해 바우하우스 재건의 역사적 현장을 볼 수 있다. 바우하우스의 일부 잔해도 전시해 뒀다. 바우하우스 아카이브 전체를 둘러보는 건 아쉽게도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었지만, 전망대 속 갤러리를 통해 독일이 과거를 대하는 방식을 다시 한번 알 수 있었다. 독일인들은 역사를 기억하고, 그 변화의 과정도 외면하지 않는다.
슈프레강변을 걷다가 사람들이 모여 한 곳을 주시하고 있어 잠시 멈춰 그들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수 분 후에 레이저 영화쇼를 한다고 안내 문구가 나오고 있었다. 잠시 기다리자 거대한 현대식 건물은 곧 영사 스크린이 되었다. 흑백 다큐멘터리 영화는 영어 자막이 있었고 독일어를 하지 못해도 장면을 단서로 1차와 2차 세계대전 후 독일 재건의 과정을 이야기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용 중에는 나치의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었고, 관람객 대부분은 남녀노소의 현지인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독일인들은 자신들의 치부일수도 있는 전쟁의 과거사를 숨기지 않고 아이들에게 가르친다고 했다.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들이 저지른 일들을 반성하고 피해자들에게 사죄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도.
여전히 그들은 잊지 않고, 인류에게도 인류에 속한 스스로에게도 더 나은 미래를 만들도록 도약의 디딤돌을 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