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터미널(2004) 속 주인공은 출신국의 국권이 사라져 도착한 미국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돌아가자니 여권이 무효화되어 어렵고, 같은 이유로 미국 국경 내 입국도 불가한 상황이다. 이후 그는 공항에서 자생한다. 입출국이 자유로워진 상황에서도 공항에서 생활하는 것을 멈추지 않던 그의 시각으로 영화는 공항과 그 공간을 들고 나는 모든 이들의 흥미로운 생활을 조명한다. 톰 행크스가 열연한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그리고 얼마 전, 파리의 샤를드골 공항에서 오랜 시간 지내던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이 세상을 떴다. 그가 공항에서 살기 시작한 지 18년 만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전 세계를 혼란케 한 2019년부터 한산했던 공항이 수년 만에 다시 활기를 되찾은 모습이다. 그 사이에도 몇 차례 해외에 나갈 일이 있어 찾은 인천공항은 당시엔 원래 이렇게 넓고 조용했나 싶을 정도로 어색한 모습이었다. 점심 무렵의 출국 일정이지만 조금 여유 있게 도착한 공항에서 더는 찾아볼 뉴스도 없어 주위를 둘러보니 터미널 영화 속 풍경이 겹쳐진다. 일 하는 이와 떠나는 이, 그런 떠나는 이들을 배웅하는 가족들까지 모두 저마다의 목적으로 공항에 잠시 머무른다. 그렇다, 공항이 좀 부산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곳이 여느 카페처럼 머물기 위한 목적의 공간이 아니라 어딘가로 떠나기 위한 사람들이 거쳐가는 장소이기 때문인 듯하다. 그런 장소에 18년이나 머물렀으니, 이야깃거리가 될 만도 하다.
오랜 시간 이곳에 사는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더라도 공항에 들르는 사람들은 각자 서로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다. 누군가는 눈시울을 붉히고, 누군가는 들뜬 모습이다. 여행이 피곤했는지 잠시 의자에 앉아 조는 사람도 있고, 찾는 물건이 없는지 짐을 다급히 풀어헤치는 사람도 있다. 들고나는 이들이 남긴 잔상은 머무는 사람들이 치우고 정리한다. 공항은 그렇게 관리된다.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이고, 유기체인 셈이다.
불안은 대체로 과거에 머물러 있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는 등 지난 흔적을 정리하지 못하는 습관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마치 잘 운영되는 공항처럼 들고 나는 것들은 그대로 흘려보내고 지금을 사는 것에 충실한다면 큰 범위에서의 평화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어쩌다 생기는 오류나 오차는 어쩔 수 없더라도 말이다.
사실, 생각 뿐이다. 장애를 겪는 공항 같은 요즘이다.